대고구려국을 꿈꾸며

소오강호 2011. 9. 15. 10:20

의정부(議政府)에서 이조(吏曹)의 첩정(帖呈)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대군(大君) 이하로부터 참외(參外)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관제(官制)가 이미 갖추어졌으나, 오직 종실(宗室)의 딸만은 다만 군주(郡主)·현주(縣主)라 칭하여 차등의 분별이 없습니다. 삼가 한(漢) 나라 제도를 상고하여 보면, 황녀(皇女)는 현주(縣主)라 칭하고 여러 딸은 향정 옹주(鄕亭翁主)라 칭하였으며, 당(唐)나라 제도에는 태자(太子)의 딸은 군주(郡主)라 하고 친왕(親王)의 딸은 현주(縣主)라 하였습니다. 지금 예전 제도에 의하여 정궁(正宮)의 딸은 공주(公主)라 칭하고, 빈(嬪)·잉(媵)·궁인(宮人)의 딸은 군주(郡主)라 칭하고, 세자 궁인의 딸과 대군 정실의 딸은 현주(縣主)라 칭하고, 여러 군의 정실의 딸과 대군의 아들의 딸은 향주(鄕主)라 칭하고, 그 나머지 종실의 딸은 모두 정주(亭主)라 칭하고, 국가에 장(莊)·소(所)·부곡(部曲)의 호가 있는데, 장·소·부곡을 정(亭)으로 칭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세종 22년 경신(1440,정통 5) > 4월15일 (병술)

 

 

공주의 남자에 나온 수양대군의 딸 세령을 주변에서 아가씨라고 부르던데 잘못되었다.

현주(縣主)마마라고 불러야 한다.

 

 

 

의친왕의 왕자인 황손 이석의 딸 이홍

향주(鄕主)마마라고 불러야 한다. 만일 의친왕이 살아 있을 적에 아들인 황손 이석이 대군에 책봉되었다면 현주마마라고 불러야 되지만 불행히도 황실이 망하면서 책봉이 되지 못했기에 향주마마가 될수 밖에 없다.

 

 

 

의친왕의 딸 이해원

전례에 의해 친왕(親王)의 딸은 현주(縣主)라 불러야 한다.

 

이해원현주마마 이렇게 불러야 옳다. 이분이 살아남은 고종황제의 자손들중 제일 연장자로 들었다. 황실의 전통에는 제일 웃어른이 다음 황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이분을 여왕으로 옹립하고 이분이 돌아가시면 여왕옹립을 주도했던 사람들 중 한명이 지명을 받고 황위를 계승하려 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정부를 상대로 황실재산 반환소송을 할것이라나. 원래 태조이성계와 태조 왕건은 엄청난 부자였다. 태조이성계의 사병이 무려 5천명이 넘었다. 왕건역시 수천명의 사병을 거느린 대귀족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아마도 이건희 정몽구를 합한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왕건의 시대에는 수천명의 사병을 거느린 대귀족이자 대부호가 여러명 있었다. 반면 태조이성계의 시대에는 태조이성계보다 더 부자인 사람은 기록에 없는 듯하다.

만일 태조이성계가 왕건의 재산을 왕씨에게 주었더라면 고종의 자손들도 재산을 뺏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자신이 행한대로 돌려받기 때문이다.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은 원래 후주의 장수였다. 후주에 어린 왕이 등극하자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조광윤을 황제로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조광윤은 전왕조의 후손인 시씨 일족들을 잘대해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보통 전왕조의 성씨들을 학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광윤은 자비를 베푼 것이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은 원래 수나라황실과 친척즉 사촌관계였다. 그래서 수나라의 양씨들은 학살을 면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자비를 베푼 것은 정말 드문일이라 하겠다.  

예,즐감..감사, 꾸벅!
친왕의 딸은 군주입니다. 중국의 황실제도도 나라 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송, 명, 청의 경우 황제의 딸은 공주, 태자와 친왕의 딸은 군주, 군왕의 딸은 현주로 봉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비록 명의 제후국을 자처했으나 묘호를 사용하는 등 실제로는 황제국의 용어도 일부 사용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공주입니다. 원래 친왕의 딸은 군주로 봉해야 맞지만 조선에서는 군주가 아닌 공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