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소오강호 2012. 9. 12. 18:09

 

 

  懷州雄 隋河內郡。武德二年,於濟源西南柏崖城置懷州,領大基、河陽、集城、長泉四縣。其年,於濟源立西濟州,于武德縣立北義州,修武縣東北故濁鹿城立陟州,置總管府,管懷、西濟、北義、陟四州。三年,懷州又置太行、忠義、紫陵、谷只、溫五縣。四年,移懷州於今治野王城。其年,又于溫縣置平州,以溫縣屬之

구당서

회주는 수나라 하내군이다.619년 무덕현에 북의주를 세우고 수무현동북 옛 탁록성에 척주를 세웠다. 621년 회주를  이동해서 야왕성에 설치했다. 같은해에 온현에 평주를 설치했다.

 

與蚩尤戰於涿鹿之野, 【集解】服虔曰 : 「涿鹿, 山名, 在涿郡.」 張晏曰 : 「涿鹿在上谷.」 【索隱】或作「濁鹿」, 古今字異耳. 案, 地理志, 上谷有涿鹿縣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사기(史記)

치우와 황제는 탁록의 벌판에서 싸웠다. 탁록은 산이름으로 탁군에 있다. 탁록은 상곡에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혹은 한자를 바꿔서 탁록이라 한다. 지리지에도 상곡에 탁록현이 있다고 한다.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된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구려가 왜 반격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주가 온현즉 낙양의 동북쪽 황하건너편에 설치된 것을 보면 고구려가 바보같이 가만있지는 않았음을 알수 있다. 왜 평주가 뜬금없이 온현에 설치되었겠는가?

땅을 다 잃었기 떄문에 어쩔수 없이 다른곳에 평주를 설치한 것이다. 이를 교치라고 한다. 삼국지시대에 각 군벌들이 특정땅의 주인이라 자칭하면서 태수혹은 자사를 마음대로 임명했는데 실제 그 땅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내세우기 위해 관청과 태수혹은 자사를 둔 것이다. 이때부터 한족들은 땅을 잃어도 관청을 무조건 설치했다. 물론 다른 곳에 (우리나라 이북5도청처럼)

 

다른 증거도 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내린 교서에 조,위의 땅에서부터 징벌하겠다라는 식의 글이 있다. 만일 조국과 위국이 땅이 고구려땅이 아니라 당나라땅이라면 당태종은 똘아이이다. 지땅을 지가 징벌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베이징서쪽의 탁록이란 곳은 후대에 옮겨진 곳이고 실제 치우가 싸운 곳이 황하근처임을 알수 있다. 황하는 우리민족에게 먼곳이 아니다. 고구려초기에 이미 태원을 점령했고 고구려 전성기에 남조의 송나라와 국경을 맞대었고 발해가 발해군을 점령하고 등주를 점령하며 근처에 갔었고 요나라는 아예 건너서 개봉을 포위하고 금나라는 회수까지 진격했다. 전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