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소오강호 2013. 5. 1. 18:22

看羊島飛鴻洪在朝鮮鏡城府南九十里。其縱長六十餘里。278_158b其深六百餘尺。中有島曰看羊。洲渚平衍。無草樹之傅焉。沙潔如鋪練。抵北海僅一舍。

蘓武傳云匈奴徙武北海上。湖之名以鴈書也。島因牧羝而稱焉。然其俗鹵樸。不能載之書策。故或有疑之者。而司馬氏匈奴傳曰。匈奴東接濊貊朝鮮。則今關北固匈奴界也。遼東志所謂木郞古。卽其墟云。
新知錄云蘇武牧羝處則陝西鎭番衛也。山因以蘓武名。王昭君墓則山西大同府也。西地多白草。此塚獨靑。苟然則陝西距北海甚遠。漢書278_158c何得稱北海乎。此又可異也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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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양도 비홍홍(기러기가 난다?)은 조선 경성부 남쪽 90리에 있다.  중간에 섬이 있어 간양도라고 한다. 초목이 없고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고 북해를 가까스로 막고 있다.

소무전에는 훈족이 북해위로 이동했다. 호인들이 말하기를 안서라고 한다. 섬은 양을 기르기떄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마씨의 훈족전에는 훈족은 동으로 예맥조선과 접한다고 하는데  지금 조선 관북이 옛 훈족경계이다. 요동지에는 목랑고라고했는데 모두 같은 곳이다.

신지록에는 소무가 양을 기른곳이 섬서성 진번위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무산이 있다. 왕소군묘는 산서성 대동부에 있다. 서쪽에는 풀이 많다. 섬서는 북해와 아득히 먼데 한서에는 북해라고 했다.(중략)

 

비슷한 기록이 조선후기에 다른 문집에도 실려있다. 조선의 지리개념은 조선국길주서쪽이 고구려 현도이고 그 다음이 훈족의 땅인데 조선이 점령하여 6진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떄 일본군이 쓴 기록에는 길주에서 올량합과 조선군연합군과 붙었다고도 하는데 당시 올량합은 바이칼호에서 베이징까지 왕래하던 유목민족으로 지금도 몽골서부에 올량합부족이라고 자칭하는 부족이 살고 있다. 원래 동몽골에 살았으나 윤관장군에게 패한뒤 서쪽으로 밀려났고 원나라때 바이칼에서 베이징까지 왕래하며 살게되었다. 조선개국시 올량합부족은 추장이 와서 조회하고 충성맹세를 하고 조선의 변방을 지키게 되었고 선조때 임진왜란에 조선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후금이 올량합을 공격하자 조선군이 올량합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청나라의 기록도 있다. 즉 조선은 옜 훈족경계에서 오히려 더 서쪽으로 진격했다는것이다.

지금 바보같은 학자도 훈족의 경계를 베이징에서 약간 동쪽으로 추측하지  북한 함경도지방으로 추측하는 사람은 없다.  

위의 글은 조선의 어떤 지명유래에 관한 기록으로 간양도라는 지명이 원래 훈족이 양을 기르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즉 한나라때 훈족이 양을 기르던 섬서성 진번위지역이 원래는 옛 고조선의 땅이었음을 알수 있다. 훈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동호를 쳐서 땅을 뺴앗았는데 그때문에 훈족선우에게 시집간 왕손군묘가 산서성 서북부에 있는 것이다. 위의 글대로라면 동호는 고조선의 속국인 것이다.(한나라때 기록을 살펴보면 북해가 지금 산서성서쪽에서 감숙 섬서성위의 황하를 말하는 것이다.훈족이 황하를 따라 동진한 것을 설명하는것이 바로 위의 북해를 따라서 이동했다는 기록이다.)

진번은 조선의 서쪽경계로 한나라때 기록을 살펴보면 대략 산서성서부일대로 나온다. 그런데 청나라고지도와 무수히 많은 고지도에 진번이 음산의 서쪽끝에 지금 감숙성의 서부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원래 고조선의 영역이 감숙성서부였고 그 너머 서쪽에 훈족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훈족이 강성해지고 고조선이 쇠약해지면서 고조선의 진번역시 산서성 서부로 이동하게 된것이다.

 

 

당나라기록에 기련에서 거란(고란)과 고구려와 접경하고 있다고 했다. 호태왕비문에는 더 나아가 기련남쪽의 토욕혼을 정벌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후 돌궐이 발흥해서 고구려가 산서성까지 밀렸다가 수나라와 당나라때 고구려가 동돌궐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서돌궐에는 사신을 보내 동맹을 제의한다.

고구려 말기 고구려는 전성기영역의 상당부분을 수복해서 기련산까지 진격한 것이다. 그곳은 바로 고조선의 서쪽영토 진번을 약간 넘어선 것이다.

옛기록에 보면 유연이 전성기에 옛 고조선의 서쪽변경까지 차지했다라고 되어 있다.  고구려시대인데 굳이 고조선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무래도 진번근처까지 유연이 차지한것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발해는 위구르서부지방에 진격했다는 중국기록이 있다. 그러면 발해는 고구려의 지명을 그대로 썻을 것이다. 반면 고려는 서쪽변경이 고구려에 비해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작아졌기 때문에 고구려 발해의 지명을 고려땅안에 집어넣어 왕조의 정통성을 살리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웅주라는 명칭도 원래는 황하서편에 있는데 고려는 새로 점령한 여진족의 땅에 웅주를 설치한다.

 

고려와 조선의 기록을 보면 발해의 땅에 대한 지리기록이 많다. 실제 발해의 땅이 아니지만 지명을 옮겨서  그곳이 옜날 발해의 땅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는 발해 서경 중경 상경 동경땅이 모두 있다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