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소오강호 2013. 5. 6. 17:20

 

 

 

청나라고지도에는 옛 형장과 당시의 형장 2군데가 표기되어 있다. 이것만 봐도 고대의 지리가 최소 1번이상 이동되었음을 알수있다.

 

古水名。《书·禹贡》:“覃怀底绩,至于衡漳。”衡是“横”的意思,古大河(黄河)自南而北流经今河北南部,漳水自西来东流注之,故称衡漳

중국백과사전

형장은 옛 물의 이름인데 형은 횡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날 황하가 남에서 북으로 흐를떄  장수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데 이것을 형장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고대 황하가 흐르는 줄기중에서 횡으로 흐르는 부분을 형장이라고 한다. 이런뜻이다.

 

師古曰:「漳水出上黨長子。汾水出汾陽北山。潞出歸德。」

전한서

장수는 상당장자현에서 나온다.

 

 上黨郡,秦置,屬并州。有上黨關、壺口關、石研關、天井關。〔一〕戶七萬三千七百九十八,口三十三萬七千七百六十六。縣十四:長子,周史辛甲所封。鹿谷山,濁漳水所出,東至鄴入(青)〔清〕漳。〔二〕屯留,桑欽言「絳水出西南,東入海」。〔三〕余吾,銅鞮,有上虒亭,下虒聚。〔四〕沾,大黽谷,清漳水所出,東北至邑成入大河,過郡五,行千六百八十里,冀州川。〔五〕涅氏,涅水也。〔六〕襄垣,莽曰上黨亭。壺關,有羊腸版。沾水東至朝歌入淇。〔七〕泫氏,楊谷,絕水所出,南至野王入沁。〔八〕高都,莞谷,丹水所出,東南入泫水。有天井關。〔九〕潞,故潞子國。陭氏,〔一0〕陽阿,穀遠。羊頭山世靡谷,沁水所出,東南至滎陽入河,過郡三,行九百七十里。莽曰穀近。〔一一〕

전한서

상당군에는 현이 14개있다.  둔유현은 강수가 서남쪽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대청광여도에 강현과 강수라는 지명을 유심히 보라 다른 고지도에도 강수의 위치가 같았다.대청광여도는 당시 청나라의 지명과 옛지명을 그대로 섞어서 표기했는데 청나라떄 둔유현은 장치시서쪽에 있었지만 고대의 둔유현은  강수근처에 있었음을 알수있다.그럼 둔유현의 남쪽이 장자현이니 강수의 남쪽에 진짜 고대의 상당군 장자현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래서 강수의 남쪽아래부분을 유심히 보니 횡수라는 지명이 남아 있었다. 형장은 횡장이라고도 하고 장수에 있는 지명인데 장수는 횡으로 흐르기때문에 횡수라고도 한다라는 지리지를 참고하면 횡수진이 바로 고대의 횡수즉 장수즉 횡장즉 형장임을 알수 있다. 게다가 이 강은 황하와 합쳐지니 고대의 지리개념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과 당나라때는 상당군은 맹진현에서 강현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그 지명이 통째로 어느시기에 현재의 청장하로 옮겨지고 다시 북쪽으로 또 이동한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고대기록에서 유웅씨의 나라는 유주에 있다고 했다 .명나라지리지에 유웅씨의 나라는 신정의 서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하나라의 우임금이 9주를 나누었을 당시의 기주가 현재의 낙양서쪽임을 알수 있고 낙양에서  신정은 유주였고 개봉에서 그 동쪽은 청주였음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일대에서 내려온 환웅은 장안서쪽에 살던 투족(호랑이를 섬기전 부족)대신 곰족(유웅씨)의 공주를 아내로 맞고 동맹한뒤에 진국을 세우고 그 사이에 난 아들 단군 왕검이 바로 황제의 부친이며 황제의 아들 소호금천이 기주땅에 전욱고양과 제곡고신이 유웅씨의 땅에 나라를 세웠음이 이해될 것이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에 중국이라는 개념이 한족의 땅이란 개념이 아니라 곰족즉 우리 조상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중원지방의 현재 거주민은 동이족인가? 내가 대략 유전자조사결과와 현지인들의 사진을 검토해보니 약 7:3정도로 한족이 우세했다. 북위때는 8:2로 한족이 우세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배층이 동이족이고 피지배층이 한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수 있다.

 초나라의 경우 왕족만 웅씨즉 곰족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족이다. 비율로 따지면 압도적으로 한족이 우세할 것이다.

월왕구천의 생김새에 대한 글에서 얼굴이 길고 눈이 작고 찢어졌다고 한다. 전형적인 동이족이다. 그런데 지금 월나라주민은 압도적으로 한족이다. 은나라멸망시기에 기주는 소호씨가 다스렸고 그 딸이 소달기즉 바로 은나라주왕을 파멸시킨 희대의 요부라고 한다. 이는 소호금천의 나라가 바다동쪽에 있다는 옛기록과도 유사하다. 소호금천의 후예가 옛 기주즉 지금 산서성최남단과 황하건너편 낙양서쪽에 살다가 일부가 북진하여 훈족이 되고 이들이 신라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그들도 역시 황하일대는 원래 동이족의 거주지라고 써 있었다. 그들은 한족이 밀려와서 동이족을 몰아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황하북쪽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동이족의 거주지였고 황하남쪽은 동이족이 지배한 나라였으나 한족과 융화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황하문명은 한족의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문명이며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밝혀진 것은 환웅이  장안으로 이주하기전에  히타이트의 후손인 스키타이인들이 이미 먼저와서 자리를 잡았기 떄문인 것이다.

 

스키타이인들이 바로 마곡즉 마곡의 후손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을 고려 고리 구리 등의 이름으로 부른 것이고 치우는 바로 동방의 구이즉 동방에 먼저와 있던 스키타이인들의 왕인 것이다. 왕검의 아들인 황제가 유웅씨와 손잡고 염제를 쳐서 이기자 치우는 대군을 이끌고 황제를 치러 온다. 그 장소를 우리는 하북성의 탁록으로 배웠지만 산서성 최남단에 치우성(현지기록으로는 치우의 군대가 패해서 그 피로 강을 이룬곳)이 있고 장안 동쪽에 치우성(치우가 군대를 이끌고 주둔한 곳이라는 현지기록)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황으로 봐서 장안동쪽의 치우성이 진짜 치우성이 맞을 것이다. 산서성 최남단의 치우성은 주나라가 훈족계열에 밀리면서 지명을 동쪽으로 이동시켰는데 그때의 이동된 지명이 아닐까 한다.,

 

그럼 유웅씨의 나라가 신정서쪽에 있다는 명나라기록역시 원래 유웅씨의 나라가 투족과 마찬가지로 장안일대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시해준다. 그러면 환웅은 3천명을 이끌고 남하하여 투족과 곰족의 도움으로 나라를 건설하고  아들 왕검 손자 황제의 시대에 힘을 키워 먼저 황하이남을 정복하고 있던 염제의 세력을 쳐서 흡수하고 염제의 후손(아들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치우가 대군을 이끌고 동쪽에서 장안일대까지 진격한 것이고 황제는 거의 패배직전까지간 상황에서 겨우 막아낸 것으로 보인다.

(치우가 주둔한 치우성이 장안동쪽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우군대가 황제의 본거지를 압박했다는 것이고 전황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치우군대의 출혈도 굉장히 커서 아마 양쪽군대는 무승부로 끝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치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큰 관심을 갖는데 전체적인 전황은 치우가 유리한 것은 맞지만  치우군대의 피가 강을 이루어 호수를 만들었다는 현지의 기록을 참고하면 치우군이 승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치우는 동방으로 가고 황제는 황하이남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것이고 황제의 후손중에서 동국(아사센즉 조선)과 서국(하나라)으로 갈라지고 치우의 후손들은 최씨가 되어 고대의 낙랑인 개봉동북부에서 산둥일대를 다스리게 된다. (중국기록을 살펴보니 치우의 후손들이 황제의 후손인 전욱고양과 제곡고신에의해 토벌되었다혹은 밀려난 기록이 있었다.,아마도 지금 황하북쪽의 땅을 뻇긴 것으로 보인다.)

 

치우의 영토는 진국이 되고(진국은 원래 동방국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때는 산둥과 그 일대만이 진국이 된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었다가 기자의 후손에 의해 마한제국이 되고 다시 백제에 의해 점령된다. 조선은 위만조선과 부여로 나뉘었다가 고구려에 의해 점령되고 사실상의 2국시대로 지속된다.

 

발해는 동쪽으로 밀려나서 옛 진국의 영토에서 나라를 세웠기에 국호가 대진국인 것이고 궁예의 고려역시 진국의 땅에서 세웠기에 마진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이다. 금나라에서 분리된 동진국역시 진국의 땅에 세워진 것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