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영토

소오강호 2009. 5. 12. 15:35

고구려가 선비(鮮卑)와 한의 요대현(遼隊縣)을 침범하여, 요동태수 채풍을 죽였다.

왕이 선비 8천 인과 요대요동 속현 에 침입하니, 채풍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新昌)요동 속현 에 나왔다가 전몰하였다. 공조연(功曹掾)용서(龍瑞)와 병마연(兵馬掾)공손포(公孫酺)가 몸으로 풍을 호위하다가 함께 진(陣)에서 전몰하니, 죽은 자가 1백여 인이었다

 신유년 신라 지마왕 10년, 고구려 태조왕 69년, 백제 기루왕 45년(한 안제 건광(建光) 원년, 121)

 

고구려는 요산을 중심으로 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과 요산이 산서성북부에 있는 대명여지도를 참고할때 고구려의 초기영역은 산서성,하북성일대였다.  

 

 선향현(仙鄕縣)은 본디 한나라의 요대현(遼隊縣)으로, 발해 때에는 영풍현(永豐縣)이었다. -또 이르기를, “현주(顯州) 산동현(山東縣)은 본디 한나라의 망평현(望平縣)이었다. 목종(穆宗)이 발해 영풍현의 백성들을 떼어 능호(陵戶)로 삼았다

 《요사》 지리지

 

발해의 영풍현이 요나라땅이 되었는데 원래 한나라 요대현이라 한다. 물론 고구려가 차지하였다.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동녕부조(東寧府條)를 보면, 가주(嘉州)는 요나라 때의 가평군(嘉平軍)이고, 순주(順州)는 본디 요대현(遼隊縣) 지역이고, 철주(鐵州)는 본디 안시현(安市縣)이고, 태주(泰州)는 본디 거란목(契丹牧) 지역이라고 하였는데

 

고려의 순주는 요대현이라고 한다. 결국 고구려 발해 요 고려 모두 요대현일대를  차지하고있었다.

 

반고의 주에 ‘요산(遼山)ㆍ요수(遼水)가 나온 곳이다. 요수는 서남쪽으로 요대(遼隊)에 이르러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가고,

 

《한서》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현도군 고구려현(高句驪縣)에는 요산(遼山)이 있는데, 요수(遼水)가 나오는 곳이다. 요수는 서남쪽으로 요대(遼隊)에 이르러서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또 남소수(南蘇水)가 있어 서북쪽으로 흘러 새외(塞外)를 지나간다

 

요산에서 나오는 강은 청장하이고 이것은 고대에 황하와 합쳐져 텐진일대로 흘렀다. 그래서 황하를 뜻하는 河를 붙여 요하하고 한것이다. 요대현은 바로 요하즉 고대의 황하와 합쳐지는 곳근처이다.   

 

그러니 지도의 둔류대방이라고 쓰인곳 근처가 요대현인것이다. 여기가 바로 고구려군과 발해군과 고려군이 주둔했던 곳이며 요와 고려와  경계이며 발해와 당의 경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