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후기영토

소오강호 2014. 1. 22. 15:33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해조(海條)에 나온다.

 ○ 백령도(白翎島) -대청도 서쪽에 있다-ㆍ교동도(喬桐島) -강화부(江華府)의 서쪽에 있다-ㆍ각화도(覺華島) -바로 강화도이다-ㆍ연자도(硯子島) -상고할 수가 없다-ㆍ대부도(大富島) -남양부(南陽府)의 서쪽에 있다.
해동역사 속집 제13권 > 지리고(地理考) 13 >

 

 

청나라고지도에 각화도가 표기되어 있다. 오호도는 전횡도라고도 하는데 산둥성 북쪽에 표기되어 있다.우리지리지에는 오호도는 충청도 홍주밖 바다에 있는데 조선땅이라고 나온다.그렇다면 요동반도 일대가 조선의 충청도라고 볼수 있고 그럼 금주시는 조선수도 한양 각화도는 강화도가 맞다는 것이 된다.

 

현재 오호도는 지도상에서 산둥반도 반대쪽 즉묵시에 있다.  최초의 오호도즉 제나라왕족 전횡이 유방의 투항권고를 거절하고 죽자 그의 부하 5백명이 동반자결한 곳은 고구려의 남소성동부로 지금 하남성 정주시의 서쪽일대이다. 백제가 점령한후 고구려와 번갈아 점령하면서 계속 우리땅으로 굳어졌다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기위해 전진하면서 오호성을 건설하고 잠시 점령했으니 이내 뺏겼고 고구려 멸망후 발해가 차지했다.이후 지명이동을 감행한 고려와 조선에 의해 계속 오호도는 우리땅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사실은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가 차지했다. 

오호도라는 지명이 보이면 무조건 우리땅의 경계라고 보면 된다.

 

금주성지도

임진왜란때 왜군 장수 고니시의 후손이 소장한 지도에는 그의 조상이 요동반도를 돌파했다고 그려져있었다. (kbs 다큐)

 당시 조선의 수도는 요동반도에서 서쪽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초지리지에는 기자묘를 평양에다 설치했다고 하는데 조선말기에 연행기에는 청나라 광녕에 기자묘가 있다라고 나온다. 이는 어느시점에 조선평양이 청나라 광녕인 요녕성 북진시인적 있었다는 것으로 그렇다면 조선수도는 지금 심양이 된다.

조선이 수도를 여러차례 이동한 것을 알수 있다.  청나라기록에도 길림에서 조선군 평양순무의 대군과 만나 크게 싸워 평양순무를 잡아 목을 베었다고 기록했다. 즉 조선 평양이 청나라와 교전할 당시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반도혹은 서쪽인 것을 알수 있다. 즉 요녕성 북진시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조선건국초기  태조이성계는 지금 천진시에 한성을 쌓는다.

이후 어느시기에 금주시로 옮긴 것이고(임진왜란당시의 도성으로 추정)

 그후에 다시 심양으로 옮긴 것이다. (임진왜란이후로 추정)

이후 요녕성의봉황성,평양시 평양성,서울시 한성순서로 남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새로 지은 궁궐로 태조이성계가 지은 궁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