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4. 2. 4. 10:16

 

遂州,泰和四年廢為遂城縣,隸保州,戶一萬一千一百七十四。

금사

수주는 수성현으로 했다. 보주에 속한다. 호 1만1174이다

 

한나라때의 낙랑군 수성현은 중국학자들이 이미 찾았다. 무수현이 바로 수성현인데 이들은 하남성 민지현의 북쪽이 바로 수성현으로 생각한 것이다. 낙양시에서 서북쪽에 있다.

 

 

遂州。本高州地,南王府五帳放牧於此。在檀州西二百里,西北至上京一千里。

수주는 본래 고주땅인데  환주가 서쪽2백리에 있고 상경은 서북쪽에 천리에 있다.

요사

 

그런데 금나라와 요나라기록을 비교해서 보면 당시의 낙랑군 수성현은 낙양시의 서북쪽이 아닌것 같다.

원나라당시 요나라의 상경성으로 생각한 대동시일대에서 천리정도 동남쪽으로 선을 그어보면 10리에 4km정도로 고려하면 한단시일대가 되고 10리에 5km정도로 고려하면 신향시일대가 된다.

 

1.중국학자들이 제원시에서 시작하는 고대 장성을 발견하고 북제장성이라고 명명했다. 제원시에서 10km정도 서쪽으로 가면 중국학자들이 찾은 무수현즉 수성현이 나온다. 이는 중국학자들이 제대로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을 찾았다는 것이된다. 수성현에서 진나라장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2신향시에는 맹강의 전설이 남아있고 유림이라는 지명이 있다. 맹강은 장성의 동쪽끝부분에 등장하는 고대의 전설로 맹강녀가 남편을 찾으러 장성끝에 왔다가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자신도 죽었다는 곳이다. 그래서 장성끝부분에는 무조건 맹강의 사당이나 맹강에 관한 유적이 존재한다.

 

3.한단시 남쪽에 고대 장성유적이 남아있다. 명나라때 쌓은것이 아닌가 한다. 너무 뚜렷하게 남아있기 떄문이다.

반면에 마자수라는 이름이 시작되는 곳이 복양시이니 그곳이 수성일 가능성도 높다.

 

檀州,武威軍,下,刺史。本燕漁陽郡地,漢為白檀縣。魏書,曹西曆白檀,破烏丸於柳城。續漢書,白檀在右北平。元魏創密雲郡,兼置安州。後周改為元州。隋開皇十八年割燕樂、密雲二縣置檀州。唐天寶元年改密雲郡,乾元元年複為檀州。遼加今軍號。有桑溪、鮑丘山、桃花山、螺山。統縣二:

요사

환주무위군은 한나라 백단현이다  도화산이 있다.

 

 

복숭아꽃산... 도화산

아마도 지금도 분명히 복숭아꽃이 만발한 산이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도화로 지도를 검색했더니 2군데가 나왔다.

임주시의 도화곡과 정주시의 도화곡인데 둘중 어느것이 과거의 도화산이든 간에 거기에서 2백리정도 동쪽에는 공교롭게도 복양이 있다.

신향은 정주시에 너무 가깝고 한단은 정주시에서 너무멀다.

그렇다면 잠정적으로 복양일대가 바로 금나라의 보주 수성현이고 요나라의 고주라는 것이 된다.이는 요나라가 고려를 공격하여 뺴앗은 삼한현 바로 그땅이다.

 

 

 

高州,觀察。唐信州之地。萬歲通天元年,以契丹室活部置。開泰中,聖宗伐高麗,以俘戶置高州。有平頂山、灤河。<四>屬中京。統縣一:   三韓縣。辰韓為扶餘,弁韓為新羅,馬韓為高麗。開泰中,聖宗伐高麗,俘三國之遺人置縣。戶五千。

요사

고주는 당나라신주이다. 요나라성종이 고려를 공격할때 포로로 잡은 백성을 고주에다 살게했다.  평정산과 난하가 있고 중경에 속하는데 현이 1개있다. 삼한현이라고 한다. 원래 진한이 부여가 되고 변한이 신라가되고 마한이 고려가 되었는데 성종이 고려를 공격해서 삼국의 백성들이 유랑하여 이들을 여기에 살게했다

 

 

당시 고려와 요나라가 생각한 삼한의 땅이 바로 고주일대임을 알수 있고 이곳이 바로 마한 진한 변한의 경계지역임도 알수 있다. (복양의 서남쪽80km에 있는 개봉시가 바로 백제의 한성으로 변한지역이며 요나라기록에 그곳근처에 진한이 있다고 했고 변한은 원래 진한에 섞여 살았으며 그 북쪽은 당연히 마한이 된다. )

 

 

保州,宣義軍,節度。高麗置州,故縣一,曰來遠。聖宗以高麗王詢擅立,問罪不服,統和末,高麗降,<七>開泰三年取其保、定二州,於此置榷場。隸東京統軍司。統州、軍二,縣一: 來遠縣。初徙遼西諸縣民實之,又徙奚、漢兵七百防戍焉。戶一千。

 

  宣州,定遠軍,刺史。開泰三年徙漢戶置。隸保州。

 

요사

보주선의군은 고려가 설치했는데 현이 1개 있는데 래원현이라 한다. 중략 고려가 항복하여 개태3년에 고려의 보주와 정주2개주를 취하였다. 중략 선주 정원군은 보주에 속한다. 중략

 

  

 국토는 사방 5000리이고, 가호는 10여 만이었으며, 잘 훈련된 군사가 수만 명이었다. 부여(扶餘), 옥저(沃沮), 변한(弁韓), 조선(朝鮮)의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 개원(開元) 1년 발해군왕(渤海郡王)에 책봉되어 비로소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발해(渤海)로 칭하였다 그 남쪽이 중경(中京)이니, 현덕부(顯德府)라고 하고,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 6주를 통할하였다

기언 제34권 외편 > 동사(東事) 3

개봉시에서 그 동북쪽의 땅은 원래 발해가 점령한 곳임을 알수 있다.  잘나빠진 국사학계의 왜놈똘마니들은 발해가 변한즉 백제의 땅을 차지한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 변한을 한반도남쪽에 그려놓았는데 발해가 변한을 차지한것이 되면  발해 땅이 한반도 남쪽 전라 충청도를 포함하게 되니 먼가 앞뒤가 안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변한은 한반도가 아닌  개봉시일대이니 당연히 그들 머리로는 설명이 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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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백제수도 한성이 장수태왕에게 포위될때 백제황제는 신라의 군대를 이끌고 오라고 태자에게 명령한 기록이 있다. 이는 당연히 진한이 바로 한성근처에 있었다는 것으로 원래 진한에서 변한이 갈라졌다는 기록이 맞는 것이다. 즉 진한과 변한은 땅경계가 정확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섞여 있는 것이다.

발해의 땅 변한지역을 요나라와 고려가 서로 분할해서 점령했다가 요나라가 빼앗은 것이다.

 

 

거란지리도에서 환주는 건주의 서쪽에 있고 건주의 동북쪽에 고주가 있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t/72요나라의 건주는 개봉시의 서북쪽

 

그렇다면 고주는 지리상 당연히 개봉시의 동북쪽인 복양일대에 있어야 한다. 여러 증거로 볼때 고려와 요나라가 영토를 놓고 싸운 곳은 고주일대이며 지금 개봉시동북쪽 복양일대이다. 그곳에 마자수가 존재하는 것은 그 강이 바로 고대의 염난수이자 압록강의 지류이기 떄문이다. 고려의 최대서남영토는 바로 개봉시근처였던 것이다.

후백제는 오대사에 회이(후백제를 달리일컫는 말)가 개봉과 호북성 무한을 포위했다고 기록에 나온다. 이는 후백제가 옛 백제의 땅을 수복하기 위해 고토수복전쟁을 벌인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후백제 멸망시 고려는 후백제의 땅전부를 차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개봉은 지금 개봉시가 아니라 하남성 섭현동북쪽일대)

유익한정보감사합니다.
좋은정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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