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영토

소오강호 2014. 2. 19. 19:45

조선세조때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동국지도인데 내가 보기엔 그 세조이후에 새로 제작한 것같다.

건안성은 조선땅인데 건안성 서쪽이 낙랑동주라고 되어 있다.

 

 

 

 

전라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청주부(靑州府)는 낙안(樂安)이고, 여남부(汝南府)는 광주(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진안(鎭安)이고, 연평부(延平府)는 남평(南平)이고, 염주부(廉州府)는 영산(靈山)이고,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이고, 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이고, 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이다

임하필기 제35권 > 벽려신지(薜荔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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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는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책들내용을 정리하면서 적은 글인데 우리 고대 지명에 대해 위와같은 기록을 남겼다

실제로 금나라와 송나라는 남청주절도사를 두었다. 우리가 배우기로 북송과 금나라는 청주전체를 장악했는데 왜 남청주절도사를 두는가? 북위때처럼 청주의 동청주는 백제땅이고 나머지는 북위땅이고 머 이런 이유때문인가?

한가지 추측이 가능한 것이 바로 발해이다. 발해가 무왕과 대인수황제때 당나라를 크게 정벌했는데 중국기록에도 발해땅이 청주와 등주에 마주보다라는 내용이 있다. 발해 최대 남쪽영역은 막주인데 막주는 당시 연경에서 수백리 남쪽이었고 조선시대 명나라여행기에도 산둥의 이진현이 발해땅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기록이 있다. 계림부가 전주라니?진한과 변한의 중심지인 두지역이 원래는 같은 지역을 말하는 것인가?

 

辰州,奉國軍,節度。本高麗蓋牟城。唐太宗會李世攻破蓋牟城,即此。渤海改為蓋州,又改辰州,以辰韓得名。井邑駢列,最為沖會。遼徙其民於祖州。初曰長平軍。戶二千。隸東京留守司。統縣一:建安縣。

요사

진주봉국군은 본래 고구려 개모성이다. 발해는 개주라고 했다가  진주로 개명했다.  진한에서 따온 이름이다. 현이 1개 있는데 건안현이

 

 

당나라는 건안성에 백제도독부를 설치한다. 즉 건안성은 고구려땅과 백제땅의 경계로서 백제인이 더 많았다.

건안현이 있으니 건안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데 건안성일대가 진한이라는 요나라의 기록에 주목해야 한다. 낙랑동주는 당연히 역시 진한이라고 봐야한다.

 

開州,鎮國軍,節度。本貊地,高麗為慶州,渤海為東京龍原府。有宮殿。都督慶、鹽、穆、賀四州事。故縣六:曰龍原、永安、烏山、壁谷、熊山、白楊,皆廢。疊石為城,周圍二十裏。唐薛仁貴征高麗,與其大將溫沙門戰熊山,擒善射者於石城,即此。太祖平渤海,徙其民於大部落,城遂廢。聖宗伐高麗還,<六>周覽城基,複加完葺。開泰三年,遷雙、韓二州千餘戶實之,號開封府開遠軍,節度;更名鎮國軍。隸東京留守,兵事屬東京統軍司。統州三、縣一。開遠縣。本柵城地,高麗為龍原縣,渤海因之,遼初廢。聖宗東討,複置以軍額。民戶一千。鹽州。本渤海龍河郡,故縣四:海陽、接海、格川、龍河,皆廢。戶三百。隸開州。相去一百四十裏。

 

  穆州,保和軍,刺史。本渤海會農郡,故縣四:會農、水歧、順化、美縣,皆廢。戶三百。隸開州。東北至開州一百二十裏。統縣一:

 

  會農縣。

요사

개주 진국군은  본래 맥인들의 땅이다. 고구려가 경주라고 불렀고 발해가 동경용원부라고 했다.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평정할때 그 백성을 대부락에서 옮겼다. 성종이 고려를 정벌하고 돌아올때 성의 기초를 둘러보고 다시 쌓아 보강했다. 1014년 쌍주와 한주백성을 옮기고 개봉부개원군으로 했고 진국군절도사를 두었다

 

  

우리가 배우기로 서라벌이 경주이며 신라의 수도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고구려가 경주라 부르고 발해가 동경이라 부른 곳은 일단 개봉근처이다.요나라가  5대10국시대의 개봉(하남성 섭현일대)을 점령한 적이 있기 떄문이다. 최대 양자강근처까지 갔다는 기록을 얼핏 본적이 있다. 그만큼 요나라의 기세가 대단했다. 그러니 송나라개봉부근처에 있던 발해땅 동경성을 개봉부개원군이라고 한 것이다. 송나라지리지인 태평환우기를 분석하면 지금 개봉시고성은 한성이라고 한다.

청나라기록에 개주진국군은 곧 개주 촉막군으로 고려의 개성일대를 말한다고 한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t/72개봉시가 백제 한성이 맞고 정주시가 고구려 남평양이 맞다는 송나라지리지의 또다른 증거

 

일단 고구려의 경주이자 발해의 동경성이 고려의 개성서쪽으로 요나라와의 국경근처라는 것은 증명이 되는 것이다.

 

《송사》 고려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 왕은 개주(開州) 촉막군(蜀莫郡)에서 사는데, 이곳을 개성부(開城府)라고 한다. 신라 지역을 동주(東州) 낙랑부(樂浪府)로 삼아 동경(東京), 백제 지역을 금주(金州) 금마군(金馬郡)으로 삼아 남경(南京), 평양(平壤)을 진주(鎭州)로 삼아 서경(西京)이라고 부르는데, 서경이 가장 번성하다. 통틀어서 모두 3경, 4부, 8목에 군이 118개, 현(縣)과 진(鎭)이 390개, 주도(洲島)가 3700개이다. 작은 군읍은 간혹 100호밖에 안 된다. 인구는 남녀가 총 210만 명이며, 병사, 백성, 승려 등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한다. 지역은 기후가 춥고 산이 많다

> 해동역사 속집 제10권 > 지리고(地理考) 10

동주낙랑부는 다른말로 낙랑동주이다. 머가 다른가?

 

효소제(孝昭帝) 때 요동성을 쌓고 현도를 동주(東州)로 삼았다.
변한(弁韓)은 낙랑의 후예이다. 한서(韓書)》에 이르기를 “변한과 낙랑은 기자를 봉한 곳이다.” 하였고,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변한은 낙랑 땅에 있다.” 하였다

 기언 제48권 속집

동주라는 말의 원래 근원이 바로 현도군이었다. 그래서 고려왕을 현도주도독이라 부른 것이다. 현도성은 원래 남옥저에 있었는데 고구려가 점령해서 한나라가 현도군을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겼다.(고구려 대무신왕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현도 낙랑등 주변을 모두 평정해서 고구려 역사상 광개토호태왕과 맞먹는 대단한 시호를 얻었다. 보통 땅을 넓힌 왕을 무왕이라 하는대 대무신왕은  큰 대자에 신이라는 말을 덧붙힌 최고의 영예이다.) 물론 옮긴 현도군도 고구려가 점령해버렸다.

 

 

말갈(靺鞨)은 본래 속말갈(粟靺鞨)인데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그 추장 대조영(大祚榮)이 궁수(弓手) 수만 명을 거느리고 부여, 옥저, 변한(弁韓), 조선(朝鮮)의 땅을 병합하였다. 당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발해(渤海)라고 칭하였는데, 숙신의 옛 땅에 상경(上京)을 두고, 예맥의 옛 땅에 동경(東京)을 두고, 옥저의 옛 땅에 남경(南京)을 두었다. 뒤에 발해가 동거란(東契丹)이 되었다.
 기언 제48권 속집

. 《후한서(後漢書)》에,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고 또 왜(倭)와 접했다.”하고, 또 말하기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살아 의복ㆍ거처ㆍ언어ㆍ풍속이 같다.”하였는데, 변한(弁韓)이라 하지 않고 변진(弁辰)이라 함은, 비록 먼 데서 들은 말이라 하더라도, 변한ㆍ진한 두 나라가 서로 이웃에 붙어 있음을 알 만합니다.

후한서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고구려의 경주즉 신라의 원래 위치인 진한즉 계림은 변한즉 백제 한성의 북쪽에 있었던 것이다. 두부족은 원래 같은 민족이며 섞여 살았기 떄문에 변한을 진한이라 불러도 이상이 없고 진한을 변한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낙랑북부지역이 옥저이며 낙랑동부지역은 진변한의 지역이었다. 옥저는 한나라가 잠시 점령해서 현도성을 두었으나 이내 고구려에 빼앗기고 진변한,마한은 백제가 통일하였다. 그래서 백제성왕의 3남 임성태자의 후손족복에 백제국 마한황제 제왕이라고 쓰여져있는 것이다.

 

낙랑이란 바로 지금 하남성 정주시를 말하는 것이고 낙랑동주는 현재 개봉시를 말하는 것이다. 발해군이 남하하면서 신라의 경주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발해의 동경성으로 만들었는데 바로 개봉시이다.

 

 

개봉시에는 여러개의 고성유적이 있다 그중에 백제 한성이 있고 신라 경주성과 발해 동경성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동경이라 부르는데 북송의 동경이 아니라 발해의 동경이기 떄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신라전성기에  수도의 호수가 18만호나 된다. 당시 농경지역은  천진시의 수십km남쪽이었다

고대의 벼농사지역이다. 황하와 양자강일대를 제외하고 18만호를 서기 700년대에 부양할 만한 곳이 과연 몇군데나 되겠는가? 신라의 최초경주이자 계림은 당산시도 아니고 서울시도 아니고 요녕성 봉황성도 아니었다.

중국의 기록에 신라에 대한 증거가 있다. 원래 신라왕은 백제 사람인데 바다를 건너가서 왕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장수태왕이 백제 한성(지금 개봉시)을 공격할때 수도를 지키던 여러 성이 있었는데 차례로 함락되자 백제 개로황제는 신라군을 이끌고 오라고 태자에게 명령한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에 있던 신라는 이미 고구려에 함락되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김부식이 진한의 기록을 모두 신라로 편집했기 떄문에 이런 기록이 남은 것이다.  신라군은 호태왕과 장수태왕때 고구려군의 선봉에서 일본을 공격하여 일본땅 절반을 점령하고 교토근처에서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무슨 백제구원군을 보내는가? 동신라 서신라가 아니라 계림은 백제에 병합된지 수백년이었고 동쪽으로 이동한 김씨왕가가 새로 신라국을 건설한 것이다.

 

그럼 한반도는 원래 무슨 나라였나? 일부는 부상국이라고 하는데 사실 대가락국이다.대가야가 통제하는 나라가 6-7개정도 되지 않는가?삼국사기에도 8국연합군이 대가야와 신라에 쳐들어왔다라는 기록도 있고 일본서기에도 비슷한 시기에 백제와 함께 신라등 8국을 점령하고 전부 백제에게 주고 왜의 땅 일부도 백제에게 헌납했다고 되어있다.

 대한국의 동쪽이 부상국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한을 일본말로 하면 가락이라고 한다. 사실 일본말은 원래 고대의 백제 신라말이다.

한반도와 접한 일본서부해안의 각종 전설과 신화를 다큐로 보았는데 사로가라에서 왔다는 사람이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마한을 전국시대 한(韓)나라와 연관짓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별 상관이 없는 나라이다. 

 

馬韓 을 당시 백제 말로 풀어보자 

말가락 혹은 말가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 않는가? 바로 말갈이다.  우리민족을 한(韓)인이라 하는데 잘못된 말이다. 말갈인이 정확한 우리말이다.

 

 

계림부가 전주이다라는 조선시대의 기록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초기 신라수도 계림의 남쪽이 백제수도 위례였고 위례성일대를 견휜이 전주로 바꾸었으니 ..

 

동쪽으로 포천현 경계까지 32리이고, 서쪽으로 연천현 경계까지 34리이며, 남쪽으로 포천현 경계까지 16리이고, 같은 현 경계까지 20리이다. 북쪽으로 강원도 철원부(鐵原府) 경계까지 39리인데, 서울과는 1백 40리 거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고구려 양골현(梁骨縣)인데, 신라에서 동음(洞陰)이라 고쳐서 견성군(堅城郡)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현종 9년에 동주(東州)에 예속시켰고, 예종(睿宗)이 비로소 감무를 설치하였다. 뒤에 위사 공신(衛社功臣) 강윤소(康允紹)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승격하여, 영흥 현령(永興縣令)을 두었고, 본조 태조 3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1권 > 경기(京畿) >영평현(永平縣)

 

 

【군명】 견성(甄城)ㆍ완산(完山)ㆍ비사벌(比斯伐)ㆍ안남(安南)ㆍ승화(承化)ㆍ순의군(順義軍).
전주부(全州府)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 전라도(全羅道)

 

전주와 동주에 속한 경기 영평현은 모두 견성일대이다.  그 위치는  북쪽에 철원즉 고려 개성의 서쪽이 철원이라고 되어 있고 철원이 곧 철성이며 그 반대편이 요나라 철주이며 철의 생산지이다. 지금 하남성 복양시서편이 바로 주요 철광이다.

 

 

 

주요철광산지에 복양시 서쪽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