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4. 2. 21. 16:37

 

 

1830년대 청나라고지도

북송의 도읍지가 위나라조조의 도읍지의 서편근처이고 후진 후당등 여러 5대10국의 도읍지도 위나라조조의 도읍지 남쪽이다.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채하가 범람해서 개봉부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포청이 채하주변에 건물을 세워 강폭을 좁힌 고관대작들의 집을 철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생각없이 보면 북송의 수도옆에 채하가 있었나 하겟지만 위의 지도를 보라 (채나라는 초나라의 핍박을 받았는데 손자가 오자서와 손잡고 오왕을 설득해서 오 당 채 3개국 연합군 10만이 초나라를 쳐서 2-3배나 되는 초나라의 대군을 격파하고 수도를 점령했다.  초나라 대신 신포서는 당시 최강의 군대를 거느린 진(秦)나라에 가서 며칠을 울고 불며 매달린 끝에 충신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진왕의 군대 4만을 보내주었다.

 

손자가 제아무리 병법에 통달해도 우리 동이족의 군대를 당할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의 구원군은 손자에게 패했지만 오직 진나라만이 손자가 이끄는 당시 무적 오나라군대를 밀어냈다.중국에서는 고구려군을 관구검이 병법으로 이겼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관구검이 당시 유행하던 방진을 치고 화려한 전법을 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결정적으로 고구려군을 패배시킨 것은 뒤에서 급습한 오환의 기병이었다. 승전비에 오환의 선우여러명이 참전했다고 적혀있다. 방진이란 알렉산더의 군대처럼 밀집대형을 만드는 것으로 기병에 강하다 그러나  적기병이 멀리서 활만 쏘면서 다가가지 않으면 방진은 아무 소용이 없는 진형이다. )

 

채하근처에 북송의 수도 개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조조의 수도에서 서쪽에 있었던 것이다.

 

 

지형도를 보면 북쪽에 숭산이 있어서  협곡만 방어하면 대군을 막을수 있고 당시 허창근처에는 거대한 황하가 흐르고 있어서 동쪽의 백제로부터 방어하기 쉽다. 그래도 결국 막을수 없었다.... 후백제는 수군으로 당시 개봉부를 포위하고 왕건의 수도 개경을 함락한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