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4. 2. 21. 17:25

 

1830년대 청나라고지도

 

조조의 위나라도읍지 남쪽에 개봉부가 표기되어 있다. 상도와 진주의 근처이다.

 

《일통지(一統志)》에 “서화(西華)는 옛 기 땅이며, 개봉부성(開封府城 : 개봉부는 하남성(河南省)에 있다) 서쪽 90리에 있다. 예전에 성사(聖師 : 자기를 가리킨다)가 기를 식읍(食邑)으로 하였으므로 그를 기자라고 부르며, 지금 읍내(邑內)에 기자대(箕子臺)가 있다.” 하였다

동사강목 제1상 >

 

1700년대 대청광여도를 확인하니  대명일통지의 개봉부성이 바로 복희 신농도읍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명나라는 초기 북경을 개봉성에 정했다. 지금  개봉시가 아니라 상수현위의 현재 주구시이다. 위쪽이 큰강으로 둘러싸여 방어하기 쉽다. 일부가 회양현이 신농도읍지라고 하는데  대청광여도는 회양현이 아닌 주구시일대를 보고 그린것으로 보인다.

가만히 보면 5대10국시대의 개봉성보다 명나라의 개봉성이 더 남쪽에 있다!!!!!!!!!!!!!!!!!

 

조선입장에서 보면 고려시대에 비해 한족왕조에 별로 밀릴게 없는 상황이다. 북원이 생각보다 영토가 더 크게 남았던 것인가? 아니면 임진왜란때 명나라 만력제가 조선왕은 자신의 형제이니 도와야 한다라고 했다던데 애초부터 조선과 명이 상하관계가 아닌 형제관계로 맺어졌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요나라와 금나라가 우리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알고 있다. 고려가 송나라에 보낸 국서에 요는 우리 형제이다라고 했고 금나라가 고려에 보낸 국서에는 형이 아우에게 보낸다라고 했다. 그런데 송나라에서는 고려가 요나라를 섬기고 금나라를 섬기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왜냐 지들이 요와 금을 상국으로 섬겼으니까 )

 

조선초기 실록에 주원장이 태조이성계에게 항의하는 서선이 있는데 내용이 특이하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다해줬는데 왜 우리를 침공할 마음을 품고 있느냐 ? 말을 공물로 보낸다면서 상태안좋은 것만 골라 보내고 정그러면 한판붙자 ... 한나라와 당나라보다 더 많은 대군을 몰고 가겠다.. 머이런 내용이다. 수나라가 120만 당나라가 고구려 정벌에 신라군20만, 당군1백만을 동원했는데 더 끌고 가겠다.머 이런내용이었다.

그런데 실록을 보면 분명히 태조이성계가 극노하여 나 이성계를 멀로 보냐고 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 명나라에서는 20만의 고려군이 쳐들어온다라고 소문이 났는데 이에 당시 북경(개봉성혹은 연경성)일대에 30만의 군대와 주치(후일 영락제)가 주둔했다.

 

실록에는 포로로 잡힌 조선군정찰병들에 관한 명나라의 항의내용도 있는데  과연 양국이 상국과 하국의 관계였을까?

 

혹시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참전해준 대가로 이전 기록을 굴욕적으로 다시 쓴 것이 아닐까?  역사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데 송나라쪽에서 요나라에 대해 폄하하는 역사책을 발간하자 요나라에서 대노하여  삭제하고 제대로 다시 써라하고 위협했다는 내용도 얼핏 본적이 있다.  조선역시 태조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가 역사책을 발간하자 줄기차게 항의해서 바로잡았다.

 

세조때 기록에 보면 병사가 1백만이나 되고 사방의 모든 적이 나에게 귀순하고 있다. 북적과 남만이 모두 귀순한다라고 하고 명나라가 타타르군에 패배한 것을 두고 비웃었다는 내용도 있다. 명나라사신이 와서는 조선군 궁병이 제일 강합니다라고 아부를 떨며

타타르군이 대대적으로 명나라를 침공하자 명나라에 있던 조선사람이 조선으로도 침공하는 것 아닌가하고 조국을 걱정하자 명나라사람이 니네나라 궁병이 그리 막강한데 무슨 걱정할 것이 있냐고 핀잔을 준 기록도 있다.

 

대조영역시 수만의 궁병을 이끌고 단번에 조선 변한 숙신의 고구려영토를 수복했다고 하는데 세조는 궁병만 30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

죄송하지만 그 실록의 주원장의 것과 그 위에 명나라사신의 조선궁병칭찬내용, 세조가 명나라를 타타르와 비교하며 비웃은내용좀 보여주실수있나요. 검색해도 잘 안나오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