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4. 2. 27. 16:48

 

조선세조때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동국지도인데 내가 보기엔 그 세조이후에 새로 제작한 것같다. 위에 압록강의 동쪽에 고요동이 있다.그러니까 옛 요동땅은 조선땅이다 이런 의미이다.

 

旧辽阳城 【 沈阳城西北八十里今在境外】

전요지(명대지리지)

구요양성은 심양성서북80리에 있다. (지금은 국경밖이다.)

그러면 위의 기록을 보라 동시대에 쓰여진 명나라의 기록인데 심양이 지금 심양시라고 해도 조선땅이 최소 지금 심양시서북쪽에 국경이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서쪽으로도 땅이 있다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압록이 고요동보다 더 서쪽이니)

 

沈阳中卫 【 在辽阳城北一百二十里河东游击驻札于内本挹娄国地唐时渤海置渖州辽置兴辽军后改曰昭德军金改为显德军元初为渖州后改沈阳路领县四曰乐郊章义辽滨进城元末纳哈出据其地

전요지(명대지리지)

심양 중위는 요양성 북쪽 120리에 있는데 본래 읍루국이고 당나라때 발해가 심주를 설치하고 금나라가 현덕군으로 개명했다.원말에 나하추가 거주했던 곳이다.(국사를 배웠다면 원말에 태조이성계가 나하추를 쫓아낸 것을 알것이다.)

 

 

그렇다면 구요양성즉 고요동은 요양성에서 북쪽으로 200리가량되는 거리에 있다.

 

开州城 【 辽阳城东二百六十里即今凤凰山堡四面石崖峭壁东北二门城随山铺砌可容十万众唐太宗驻跸于此今废】

전요지(명대지리지)

개주성은 요양성 동쪽2백60리에 있는데 지금 봉황산보이다. 당태종이 주필했던 곳이다.

 

http://blog.daum.net/sabul358/13937663 청나라고지도

청나라고지도에 주필산과 봉황산이 나온다. 그럼 개주성이 어디인지 알수 있다. 베이징북쪽의 봉황산에 있다.

베이징동쪽에 고려영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전해오는 말로는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치려고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요동즉 구요양성은 요양성에서 200리 북쪽이니 베이징서남쪽을 말하는 것이다. 명과 조선의 경계가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것이다.

 

금대로서 지승(地乘)에 나타난 것이 3분의 1은 역주(易州)에 있고, 3분의 2는 도성(都城)에 있다. 그리고 《여지명승지(輿誌名勝志)》에는,“부(府) 동남쪽 16리 지점에 있고, 또 소금대(小金臺)가 있는데 서로의 거리는 1리쯤 된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조양문(朝陽門) 동남쪽에 우뚝 솟은 토부(土阜)가 있는데, 호사자들은 곧 이것을 황금대의 옛터라고 한다.

계산기정 제3권 > 관사에 머물다[留館] ○ 갑자년(1804, 순조 4) 1월 >

조선말기의 기록에  베이징 조양문(동쪽문)동남쪽에 거대한 흙으로 된 언덕이 있다고 한다.  혹시 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당태종이 안시성을 치기 위해 토산을 쌓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위성사진으로 보니 아파트와 대사관이 뺵빽하게 들어서서 흔적이 거의 없다.

동국지도가 작성될 당시 조선은 지금 베이징 조양문이 있는 고성일대를 안시성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럼 베이징의 화려한 자금성은 누가 만들었나라고 질문할 것이다. 당연히 청나라이다.

명나라기록에 이자성이 먼저 명나라 북경을 점령하고 뒤에 청나라섭정왕 도르곤이 오삼계와 함께 명나라 수도 북경근처에 다가오자 이자성이 궁궐을 불태워서  그 거대한 궁궐중에 섭정왕이 집무할 작은 건물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니 자금성의 지금 건물은 대부분 청나라가 새로 지은 것이다. 하물며 지금 서울시의 경복궁도 태조이성계가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지은 것이다.

 

명나라기록을 보면 원나라수도 대도를 밀어버리고 새로 수도를 지었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전왕조의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고대부터의 승자의 방식이었다. 그래야 저항의지를 없앤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나라기록을 보면 옜 북주의 수도를 완전히 황폐화시키고 남쪽에 새로 수도를 지었다는 대목도 있다.

 

 

 

四年春正月丙申,射虎東山。二月丙寅,修遼陽故城,以漢民、渤海戶實之,改為東平郡,置防禦使

요사

919년 요양 옛성을 수리해서 발해인과 한인을 채워서 동평군으로 개명했다.

 

 

 韓州,東平軍,下,刺史。本稿離國舊治柳河縣。高麗置頡府,都督、頡二州。<二三>渤海因之。今廢。太宗置三河、榆河二州。聖宗並二州置。隸延昌宮,兵事屬北女直兵馬司。統縣一:柳河縣。本渤海粵喜縣地,並萬安縣置。

요사

한주동평군은 본래 고리국인데 구치소는 유하현이다 고구려가 막힐부를 두고 막주 힐주 두주를 두었는데 발해도 그리했다. 태종이 삼하와 유하2개주를 두었다

 

고요동은 원래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이냐면 동평군 즉 옛 고리국 바로 치우의 구려국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은 치우의 옛 구려국이 자기땅안에 있다라고 지도를 그린 것이다.

 

 

대청광여도를 보면 내말이 맞다는 것이 증명된다. 바로 치우가 살던 곳이라는 표기를 베이징서북쪽에 한 것이다.

청나라의 고지도를 보면 마치 지금 베이징이 안시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것은 조선과 명이 생각한 안시성이고 동국지도가 제작될때의 안시성인 것이지 고구려와 당이 싸운 실제 안시성은 아니다.  조양문앞에 있다는 거대한 흙언덕은 위치로 봐서 동쪽의 군대가 진격해서 성을 점령하려고 쌓은 것이지 서남쪽에서 올라오는 군대가 토산을 쌓는다면 당연히 남쪽문이나 서쪽문앞에 쌓을 것이다. 동부여, 백제,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할때 쌓았거나 고려가 요나라를 공격할때 쌓았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