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후기영토

소오강호 2014. 3. 7. 16:30

 唐太宗 貞觀十九年(645), 將征遼, 二月, 次河陽. 丁巳, 贈殷 比干太師, 自爲文祭之. 次鄴, 爲文祭魏太祖墓, 三月丁丑, 幸定州, 經北嶽自爲祭文. 四月, 行軍總管姜確卒, 爲五言詩以悼之. 十月, 班師, 次漢武臺, 餘基三成, 傍有祠室, 帝製文刻於石. 十二月, 定州御步輦而行, 帝攬筆, 於輦中爲詩. 二十年正月, 幸晉祠, 立碑製文, 親書於石.

옥해(玉海)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당태종 645년 요지방에 출전하여 2월에 하양을 지나 비간태사묘앞에서 조서를 읽고 업에서 위태조 조조묘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정주로 행했다. 북악을 지나 제사를 지내고 10월에 한무대에 도착해 돌에다 공을 새겼다.

 

1800년대  청조일통지도  해주 옆에 대동부가 있고 그 동쪽에 요주가 있다.

 대청광여도 해주위치  요주는 제원시가 되고 대동부는 그 사이이다. 대동부의 동남쪽에 환산이 지리적으로 위치해야 되는데

 

靈壽府西北。東北有衛水,源出恒山,《禹貢》「恒、衛既從」即此。俗名雷溝河,東北入於滹沱。北有叉頭鎮巡檢司,後遷於慈峪鎮。

曲陽州西北。元屬保定路。洪武二年來屬。恒山在西北,恒水出焉。又沙河在南,自山西繁峙縣流入。

명사
령수현은 부서북쪽에 있다. 동북쪽에 위수가 있는데 환산에서 나온다. 우공에 환수와 위수가 따라간다는 곳이 이것이다. 일명 뢰구하라고 한다. 동북으로 호타하에 들어간다.  곡양현은 주서북쪽에 있는데 원나라때 보정로이다. 환산이 서북쪽에 있는데 환수가 나온다. 사하가 남쪽에 있다.

 

위하가 나오는 곳은 현재 태행산맥으로 그곳이 명나라지리지상의 환산이 된다. 이는 청나라고지도에서 대동부가 해주근처에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청나라고지도가 명나라의 지도를 보고 베끼면서 당시의 지리를 첨가한 것임을 알수 있다.

 

. 척 무장(戚武莊)이 융경(隆慶) 때 요계(遼薊)에 있으면서 황제에게 이뢰기를,
 몽경당일사 제2편 > 오화연필(五花沿筆) ○ 을묘년(1855, 철종 6) 11월[17일-27일] >

 , 애써 전진하여 마자하(馬訾河)를 건너고 요계야(遼薊野)를 지날 무렵, 날마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어, 의기를 돋우어 주었다

여한십가문초 제10권 > 한 영재 이건창 문[韓李寧齋文] >

요계는 말그대로 요주와 계주를 말하는 것인데  계구는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원래 丘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즉 계구는 계주이니 요주와 계주를 합한 요계는 바로 명나라시기에 태행산의 남쪽일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요양현인 제원시 동쪽에 심양시가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고구려의 중심을 요심지역이라 하는데 바로 낙양과 개봉그리고 제원에서 심양시까지는 대평야지대로 대규모의 곡식생산이 가능한 비옥한 곳이다. 당연히 고구려가 중심지역으로 삼을만 하지 않는가?

 

 

명나라 만력(萬曆) 28년(1600, 선조33)에 요계 총독(遼薊摠督) 형개(邢玠)가 상주하기를, “대병(大兵)이 외국에 있는데, 그 군량은 혹 산동(山東)이나 천진(天津)에서 취할 수가 있습니다. 요동은 조선과 가까워서 육로로 통할 수가 있으나, 산동과 천진은 반드시 바다를 건너와야만 합니다. 천진의 경우에는 대고해구(大估海口)로부터 바다로 나가 서남쪽으로 돌아서 산동, 해풍(海豐), 청주(靑州), 내주(萊州)를 경유하여 등주(登州)에 도달하고, 등주에서 여순(旅順), 여순에서 조선의 의주(義州)의 미곶(彌串) 등지에 도달할 수 있어서 화물을 운송하는 길이 산동과 같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두 도에 주둔하고 있는바, 그곳까지의 거리가 2000리나 되니, 또다시 조선에서 전운(轉運)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에 조선의 해도(海道)를 살펴보니, 미곶에서 광량(廣梁)에 도달하고, 광량에서 강화(江華)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강화는 왕경(王京)의 서쪽에 있으면서 한강(漢江)에 접하고 있습니다. 한번 왕경의 동남쪽으로 들어가고 나면 충청도와 경상도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하였다.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이글을 읽는 당신이 군량수송책임자라고 하면 산둥반도 북쪽에서 바다를 건너 요동반도 남쪽으로 항해할 자신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군량을 소실하면 당신의 목이 참수당한다.

 

바보가 아닌이상 붉은 색길로 갈 것이다. 즉 명나라장수가 해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천진에서 다시 산동반도로 내려가서 또다시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요동반도로 간다는 것은 그가 바보멍청이거나 우리가 아는 조선과 명의 지리가 당시의 지리와 다르다는 것밖에는 없다.

 

100km가 넘는 바다를 건널정도로 당시의 배가 튼튼하고 항해술이 발달했다면 아예 바로 산둥반도 위해시에서 곧바로 한양으로 수송하는것은 어떤가?

게다가 조선왕경의 동남쪽으로 해도가 있나? 그럼 한강을 해도라고 치자 한강이 충청 경상도와 바로 연결되나? MB가 못뚫은 한반도 대운하 이미 조선중기에  뚤려져있었는가?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x/285하남성 복양시가 명나라의 막주와 청현으로 그 동쪽은 조선땅이었다

청현바로 다음이 천진이다.

 

명나라장수는 천진에서 출발하나 등주에서 출발하나 경로는 결국 같다라고 설명한다.이는 그가 설명하는 해도가 지금은 많이 메말라 버렸지만 아직도 제일 넓은 곳은 폭 수십km나 되는 고대의 황하수로를 말하는 것이다.

명나라기록에는 조선의 진주는 명나라 등주 래주와 마주본다라고 하고 조선의 전라도 남쪽으로 가면 절강과 소주를 만난다라고 되어있다. 이는 산둥반도가 조선땅이라는 것이다.

 

쪽바리들이 36년 동안 우리 역사를 모두 조작해 놓았습니다...임진왜란, 근대 36년 동안 우리 민족은 엄청 쪽바리들에게 시달려 왔습니다.....언젠가는 반드시 피터지는 복수를 반드시 합니다...... 완전히 쪽바리들의 씨를 말립니다.....2017 11 월 ..안에 쪽바리들은 엄청난 재앙에 파묻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