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5. 1. 27. 16:06

예전에는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이라고 하면 무슨 소리하냐는 물음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여진족은 한자표기로 인해서 우리가 부르는 발음일뿐 실제 여진족은 자신들을 쥬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쥬신의 후예이다라는 말도 있다.

 

옛기록을 찾아보다가 쥬신을 한자로 숙신혹은 조선이라고 쓴 기록을 찾았다. 비로소 여진족의 기원을 찾게 된 것이다. 고조선 사람의 후예인 것이다. 발음차이에 의해 조선을 쥬신혹은 쥬선등으로 부르다가 한족들이 쥬리진으로 오해해서 듣게 되고 일부러 여자 여 자를 써서 여진족이라고 한족들이 덧붙인 것이다.

 

아무튼 태조 이성계가 창업의 기치를 내걸었을때 퉁두란을 포함한 50개가 넘는 여진과 타타르 부족 족장이 참여했고 이들은 실록에 구체적으로 부족이름까지 나와있다. 상당수는 옛 금나라의 재건을 꿈꾸었다고 한다.

 

 开原城 【 本元黄龙府旧城

명대 전요지

개원성은 원나라 황룡부 옛성이다.

 

 

중국드라마 정충악비를 보다가 악비와 휘하 송나라 장군들이 금나라 황룡부에서 나중에 축배를 들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 해설에는 당시 금나라의 수도가 황룡부라고 한다 라고 자막에 등장한다.

 

금나라기록을 보면 아골타를 당시 수도인 상경근처에 묻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베이징 서쪽 방산현일대에서 금나라 아골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굴되었다.

상식적으로 베이징과 그 근교가 아골타 재위당시의 금나라의 수도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명나라기록에는 발해의 수도 상경근처에 금나라 역시 수도 상경을 세웠다고 하니 마침 현재 베이징북쪽에 발해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고 현지의 지리지에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라고 하니 금나라 수도 상경역시 근처에 있음이 확실하다.

 

 

1600년대초 청나라고지도에서 개원성이자 삼만위이고 조선에서 영흥이라고 불렸던 지방이 어느 곳인지 알수 있게 된다.

바로 베이징 서쪽 회래현일대였던 것이다.

 

 

오국성은 송나라 두 임금이 구류되어 있던 곳으로서, 지금의 회령부(會寧府)의 보라진(甫羅鎭)이다. 금(金)나라가 도읍한 곳에서 동북쪽 1000리쯤에 있다고 한다. 황제의 무덤은 행영(行營) 서북쪽 25리 화풍산(花豐山)에 있는데, 구릉처럼 큰 무덤이다

임하필기 제32권

 

조선후기의 기록에도 현재의 지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등장한다.만일 현재 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금나라 수도 상경이 하얼빈이면 거기서 동북쪽 천리에 오국성이 있고 당시 조선 행영 서북쪽 화풍산(다른 기록에는 두만강근처에 화풍산이 있다고 한다.)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두만강은 지금 아무르강이 되고

 

 

 

국사학자들은 곧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위의 지도를 보라.. 금나라 수도 회령이 하얼빈이면 동북천리에 조선땅이 있다는 것인데? 그럼 조선후기이후에도 조선땅이 최소 아무르강이남은 맞구만!!!!!!!!!!!!

 

http://blog.daum.net/sabul358/13286948

 결정적인 고지도가 있다.  바로 현재의 만리장성 동쪽끝 산해관에서 동북쪽에 옛 중국황제의 무덤이라는 표시가 발견된 것이다.즉 그곳에서 서남쪽 천리는 마침 베이징 서쪽 회래현일대가 맞다.

 

현재 지도를 보다가 하얼빈에 쌍성이라는 지명이 남은 것을 보고 이 곳이 혹시 태조 이성계의 고향 영흥인가 싶어 조사해봤는데 그곳은 조선후기에 이동된 조선의 영흥이었다. 즉 태조의고향은 금나라의 수도 상경 황룡부였던 지금의 회래현일대이다. 이곳은 원래 발해의 부여부였는데 요나라 야율아보기가 황룡을 보고는 황룡부로 이름을 고쳤다.

 

즉 주몽의 고향 부여일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물론 북부여의 수도였을 가능성도 있다.)

 

태조 이성계가 단번에 여진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출신지가 옛 주몽의 본향 부여국이자 금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라는 점때문인 것이다.

하얼빈시 동북방 아성시(지금은 하열빈시 아성구로 편입됨) 입구 현편에 금나라 첫 도읍지라는 뜻의 上京會寧府라 쓰여 있습니다.
천진 주변이 咸州, 쌍성은 함주 서방으로 태원에서 발흥한 홍건적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갈레는 고려의 개경을 향해 길목인 서경(서안)을 향하고 한 갈레는 주원장이 이끄는 10만여명이 원의 대도(북경)을 향하는 길목인 쌍썽에서 고려군과 접전을 하게됨에 따라 상썽총관은 함주의 여진추장 이자춘에게 손을 벌리고 전투에 참여한 이성계가 고려조정에 첫 입문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