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5. 4. 11. 10:34

 

원나라고지도에서  왜 지금 신향시가 명나라전기의 연경이자 북경이었는지 알수 있다.

원나라는 요나라의 연경성이었던 지금 낙양시를 대도라고 하고 금나라의 평주성이었던 하남성 정주시를 중도라고 부른 것이고 지금 신향시는 북경으로 명명했다. 원래 신향시는 요나라의 동경요양성이었다.

왕립군교수의 송태조 강의를 보니 요나라는 노룡진을 연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의 기록에서 조선과 명은 노룡이 경계라고 했으니 신향시가 명나라 연경이자 북경이었고 노룡이었으니 조선과 명은 그 근처에서 경계를 지은 것이다.

 

조선의 명나라여행기에 보면 산해관밖에 토성으로 장성을 명나라가 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도상의 조장성을 확인해보니 실제로 토성이었다.

 

즉 신향의 동쪽에 당시 조선과 명의 경계 만리장성이 있었고 그 북쪽으로 명나라가 토성으로 다시 쌓아서 영토를 넓혔던 것이다.명나라기록에는 초기에 원나라를 밀어내었으나 이내 천리를 다시 상실했다고 나온다. 즉 지도상의 신향시장성밖으로 수백리이상 전진했다가 도로 밀려난 것이다. 조선시대 기행문에도 장성밖에 주민들은 조선의 평안도주민과 생김새가 같고 평안도 말을 하고 중국말은 못한다고했다. 조선전기에는 관리가 되었으나 중기이후에는 사실상 중앙정부의 관리가 되지 않아 만주족이 점령하게 된다.

 

 

 

위하남장성의 사진인데 모양이 마치 고구려성같다. 돌을 포개어 쌓은 점이나 일부러 높은 산지에 지은 것,

아마도 최초의 건설자는 고구려일가능성이 높다. 대략 추정컨데 고구려 말기에 연개소문이 지은 천리장성이 바다에 닿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 장성이 아닐까 한다. 이후 발해는 하남성 정주시이남으로 진격했으니 이 장성은 필요없었을 것이고 요나라역시 발해의 영토와 비슷하니 장성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금나라와 원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명나라때 주원장은 조선이 두려워 아들 주체에게 30만 대군을 주고 신향시일대에 주둔시켰다. 실제로 태조 이성계는 고려말에 10만대군으로 이곳을 향해 진격하다가 회군했다. 후에 정도전을 총사령관으로 20만대군을 진격시키려다 병환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좌절됐다.

세조가 그 뜻을 이어받아 무려 1백만 대군을 양성했다고 실록에 써있는데 세조는 단종복위운동때문에 그가 밖으로 나가면 바로 수도에서 정변이 일어날 것으로 염려해 결국 원정을 가지 못했다. 이후 성종과 연산군은 서북방의 올량합즉 지금 몽골서부와 산서성서부의 타타르와 여진족반란진압에 집중하면서 시기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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