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5. 4. 23. 11:54

唐書地理志云。營州東八十里。至燕郡。又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故漢襄平城也。卽遼東郡治。東南至平壤城八百里

당서지리지에는 영주동쪽80리에 연군에 이르러 요수를 건너 안동도호부까지 5백리인데 옛날 양평성이다. 거기에서 평양성까지 동남으로 8백리이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s/184 당나라영주인 유성일대는 화산일대

 

1、文帝元年(前179年),封刘泽为燕王,复置燕国。武帝元朔二年(前127年),刘定国因罪自杀,国废除,复改为燕郡。元狩六年(前117年),封皇子刘旦为燕王。又改郡为国。
2、三国魏黄初中,改广阳郡为燕郡,隶属幽州,郡、州同治蓟。明帝太和六年(232年),封其叔曹宇为燕王,改燕郡为燕国。 晋武帝秦始元年(265年),封司马机为燕王,仍置燕国。八王之乱时废国为燕郡。 十六国后赵元年(319年),燕郡、幽州同管辖蓟。 十六国前燕,前秦、后燕,北朝之北魏、东魏、北齐、北周,均因之。隶属幽州,隋开皇三年(583)废除郡,以所领县隶属幽州

바이두 중국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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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한때 계현을 연군의 치소로 정하고 연왕을 봉했다.

2.삼국시대에 광양군을 연군으로 바꾸었고 연왕을 봉했다.

 

현재 고대의 계현, 광양군, 연군 모두 지금 베이징일대로 알고 있다.

 

화산의 위치이다. 화산이 있던 당나라 영주에서 동쪽으로 80리 정도면 지금 동관이다

그렇다면 동관이 바로 명나라 북경을 지키던 거용관임을 짐작할수 있다. 명나라 연경이자 북경이 동관의 동쪽에 있었음도 알수 있다.

 

 

명나라시기 지도인 십오국풍지도를 보면 경사(수도를 뜻하는 말)와 북경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명나라의 북경이 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오이다. 명나라지리지에는 초기에 북송의 수도 개봉에 북경을 설정했다가 연경을 북경으로 했다라고 했는데 당시의 지도를 보면 또하나의 북경과 수도가 등장한다.

 

遼東都指揮使司元置遼陽等處行中書省,治遼陽路。洪武四年七月置定遼都衛。六年六月置遼陽府、縣。八年十月改都衛為遼東都指揮使司。治定遼中衛,領衛二十五,州二。十年,府縣俱罷。東至鴨綠江,西至山海關,南至旅順海口,北至開原。由海道至山東布政司,二千一百五十裏。距南京一千四百里,京師一千七百里。

명사

요동도지휘사는 원나라가 요양등처행중서성을 두고 요양로를 다스렸다. 홍무4년에 정요도위를 설치하고 6년에 요양부,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정요중위이다. 남경까지 1400리 수도까지 1700리이다.

 

남경에서 1400리 거리의 북쪽이면 지금 안양시일대이다. 그럼 거기서 1700리 서남쪽에는 현재의 장안시가 있다.(명나라 요동도지휘사는 명나라 북경보다 서남쪽에 있어야 한다. 지금 지리로 봐도 베이징동북쪽에 요동이 있는 것처럼)

 

장안에 있는 명십삼릉

 

공교롭게도 명십삼릉즉 명나라 황제 13명의 무덤이  베이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안에도 있다. 물론 중국학계는 황제가 아니라 명나라 제후왕의 무덤일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명나라 기록을 보면 제국 건설초기에는 북원을 밀어내고 영토를 확장했다. 그런데 몇십년만에 천리의 땅을 상실했다고 나온다.

 

 

고려말 조선초 주원장은 30~40만 대군으로 북진하여 개원성일대까지 점령한다. 그리고는 조선과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조선태조 이성계의 침공위협을 받고 개원일대를 포기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하남성 주구시에 세웠던 북경을 동관일대까지 전진시킨다. 게다가 여진족을 다스리기 위해 백개가 넘는 위를 설치하고 (한개의 위에 보통 5백~1천명내외의 병사가 주둔) 위용을 뽑냈으나 조선에 충성맹세한 건주 해서 올량합등의 여진족이 남하하여 현재의 장안북쪽까지 점령한다. 명나라기록에도 대녕땅을 올량합에 헌납했다라고 나오고 건주여진등이 조선에 붙어버려서 이들이 침공해올까봐 중국이 병이 났다라고 적혀있다.

 

심지어 타타르및 오이라트 군은 당시 명나라수도를 포위공격한 일도 있다. 그렇다면 타타르군의 공격을 피해 비교적 우호적인 조선영토근처로 북경을 옮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조선의 기록중에 명나라 수도 동서남북에 모두 조선땅이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그러러면 북경3 위치에 명나라 북경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금성이 명나라가 세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이 명나라 수도를 함락한뒤에 보니 이자성의 반란군이 황궁을 불태워버려서 전각 1개 정도만 남았다고 기록에 있다. 즉 지금 자금성은 청나라가 건설한 것이지 명나라가 건설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명나라는 청나라의 선조인 금나라황제무덤을 훼손했다. 후금인 청나라에 괴롭힘을 당하자 보복조치로 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정복자인 청나라가 조상의 무덤을 훼손한 명나라황릉을 그대로 보존해주었을까?

 

지금 베이징에 있는 명나라 황제릉이 과연 명나라의 릉일까? 내가 보기에는 명이전 왕조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명나라황제릉은 지금 장안에 남아있는 명십삼릉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