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5. 5. 13. 14:11

 

원나라고지도 리주의 바로 위 당시 경조부(명나라 장안)가 있고 서북쪽에 진주와 봉주가 있다.

 

 

 

중국역사지도 리주의 위치

 

 

중국백과를 뒤졌는데 중국역사지도와 동일하게 영역을 표시했다.

원나라고지도의 리주경계를 현재의 지형도와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리주위의 산맥과 일치함을 알수 있다.

 

즉 원나라때 경조부즉 옛부터 중원왕조의 수도 장안이라고 알려진 곳이 현재의 서안시가 아니라 한중시임을 알수 있다. 게다가 진주와 봉주즉 옛 진나라의 도읍지 또한 현재의 룡남일대로 내가 진시황의 장안성이 룡남과 천수사이의 례현일대라고 한 것과 일치한다.

 

http://baike.baidu.com/link?url=hc36zLhmbCVJ_lDcds3ruwr7mX74ZsYtqJ4lbue0ZkSGXXlTGP80EzNS06a1Hf61RpDMY2xuYNJGEd9yZmjQWq

한나라 승상 소하의 묘가 한중시 성고현에 있다..

 

 

 

소하는 유방의 최측근으로 오랜 세월 승상으로서 유방을 보필했다. 사후에 유방의 무덤이 있는 장릉에 매장되었다라고 기록되었는데

유방의 무덤은 당시 유방의 도성근처에 있었다. 즉 진나라의 도성 장안을 항우가 불태웠기에 유방이 수도를 약간 이동해서 거처했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한중시인 것이다. 그러니 소하승상의 묘가 한중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국기록을 보면 중원왕조의 수도가 전란으로 파괴된 적이 수십차례이다. 동탁사후 이각과 곽사가 장안성을 불태운 일,북주때 장안성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남쪽에 새로 장안성을 세운 기록, 당나라말기 황소의 난으로 장안성이 불탄일,등등 그래서 수도를 같은 자리에 하지 못하고 여러번 이동했다. 아마도 한중시와 례현일대에서 여러번 이동했을 것이다.

 

 

또다른 증거로 중국역사지도에서 당나라 무주를 지금 룡남시일대로 표기한 것이다.

 

武州,中。大中五年以原州之蕭關置。中和四年僑治潘原。縣一:蕭關。中。貞觀六年以突厥降戶置緣州,治平高之他樓城。高宗置他樓縣,隸原州,神龍元年省,置蕭關縣。白草軍在蔚茹水之西,至德後沒吐蕃

신당서

 무주는 851년 숙관에 설치했다. 지덕(756년 당나라 숙종 안녹산의 난시기)이후에는 토번이 점령했다

 

무주가 있는 숙관은 현재 례현에서 한참 북쪽에 있다. 거의 수백 km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이미 당나라 무주가 현재위치가 아니라 룡남일대로 지명이 이동된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 무주의 동북쪽에 당나라 령주가 있는데 당나라기록에는 령주가 바로 고구려와의 경계라고 나온다.

 

 

靈州大都督府 隋靈武郡。武德元年,改為靈州總管府,領回樂、弘靜、懷遠、靈武、鳴沙五縣。二年,以鳴沙縣屬西會州。貞觀四年,于回樂縣置回、環二州,並屬靈武都督府。十三年,廢回、環二州,靈州都督入靈、填二州。二十年,鐵勒歸附,於州界置皋蘭、高麗、祁連三州,並屬靈州都督府。

구당서

령주대도독부는 수령무군이다. 무덕원년 령주총관부를 두었고 명사현이 있다. 무덕2년에 명사현을 서회주로 속하게 했다. 정관4년 회락현을 회 ,환두주에 설치했다. (?) 령무도독부에 속하게 했다. 중략 정관20년 철륵이 귀부하자 주에서 경계를 고란,고려,기련3주에 설치했다. 령주도독부에 속하게 했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당나라의 경계가 현재의 룡남시일대에서 수십km정도 근처라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금나라황제 아골타가 송나라에 보낸 서신에 적석산 이남은 원래 니네땅이니 돌려준다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적석산일대가 원래 고구려와 당의 경계였으나 발해 요나라가 더 남하해서 땅을  넓힌 것이고 금나라는 송나라에서 옜부터 경계는 적석산이니 그걸로 다시 경계를 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x/273

원나라 상도에서 명과 조선의 경계가 이루어졌다.

 

 

처음의 원나라고지도에서 서경북쪽은 상도관할인데 초기 명나라는 상도일대까지 진격했으나 여진과 올량합의 반격으로 천리를 후퇴한다. 즉 원의 상도일대는 올량합과 여진의 관할이 된 것인데 실제로 명나라기록에는 올량합이 명나라 감숙과 그 이남에도 진격했다고 적혀있다.

태조실록에 보면 올량합과 여진 50개 부족이 모두 태조 이성계에게 충성맹세한 기록이 있고 또한 명나라기록에도 조선이 여진과 올량합을 이용해서 명을 위협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장안시의 거대한 고분들이 전부 진과 한나라의 것이 아니라 고구려 발해 요 금나라의 것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당국이 발굴계획이 없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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