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영토

소오강호 2015. 5. 19. 11:26

 태조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 편장(褊將)이 되어 요성(遼城)을 공격하였는데, 요인(遼人) 가운데 성을 지키던 자들이 다만 그 얼굴만을 내 놓으면 아래에서 쏘아 맞혀서 죽은 자가 많았다. 회회(回回)의 달비첨원(達比僉院)이 용장(勇將)으로 이름이 났으나 또한 사로잡게 된 것도 모두 편전(片箭)의 힘이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태종 13년 계사(1413,영락 11) > 7월28일 (을사) >

 

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대군을 이끌고 요성(요동성이라고도 부른다.원래 양만춘장군이 지킨 안시성즉 한자식표현으로 봉황성인데 고려말에는 고구려의 요동성으로 착각했다.)을 점령한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국사학계는 고려말 영토를 위와 같이 표기한다. 즉 요하동쪽은 모조리 태조 이성계가 수복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는 고려말의 혼란기와 조선초의 혼란기동안 조선군이 철수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적변(敵變)에 대응(對應)하거나 적정(敵情)을 직접 정탐(情探)하는 자에게는 사(仕) 5를 더 주고, 적(敵)을 추격하여 쫓다가 적을 만나지 못하는 자는 사(仕) 10을 더 주고, 싸움터에 나가는 자에게는 사(仕) 50 더 주고, 양계(兩界) 지방의 번하(番下)한 군사로서 부방(赴防)하는 자나 요성(遼城)에서 사신(使臣)을 영송(迎送)하는 자에게는 사(仕) 1을 더 주소서

국역조선왕조실록 > 세조 10년 갑신(1464,천순 8) > 4월17일 (기해) >

 

그런데 위의 기록을 보라

조선군이  철수했다면 요성에서 왜 명나라사신을 배웅하나?  요성에 대한 기록을 실록에서 찾아보면 청나라가 등장한 이후 비로소 조선땅이 아닌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辽滨县 【 沈阳城西北一百八十里本佛涅国地渤海置东平府唐李世绩拔辽城即此辽为辽州始平军治辽滨县金贞佑兵乱时废】

전요지(명나라지리지)

요빈현은 심양성 서북 180리에 있는데 본래 불열국의 도성으로 발해가 동평부를 설치했고 당태종이 요성을 점령했다고 한 그 성으로 요나라는 요주 시평군으로 했다.

 

 

명나라 구변도이다.

 

명나라 요양성은 현재의 안양시이고 명나라 광녕성은 현재의 신향시이다.

현재 요양과 심양은 약 100리 40~50km 정도 거리인데 ,명나라때도 요양성과 심양성은 거리가 비슷했을 것이다. (지명을 이동할때 거리도 대략 비슷하게 이동하더라..)

그럼 심양성 서북 180리면 요양성에서는 서북쪽 280리 아마도 120km내외에 당시 조선과 명나라가 요성이라 부르던 성이 존재했을 것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산서성 좌권현즉 내가 양만춘장군이 당태종을 무찌른 고구려 안시성(한자표현으로 봉황성)이 있다고 한 바로 그곳이다.

 

실록과 당시 기록을 읽어보면 태조이성계가 요성을 점령할때 마치 산악지형에 간 듯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현재 요동반도 심양시의 서북쪽은 대평원지대이다. 반면 좌권현일대는 지도에서 보듯이 산악지형이 맞다.

 

 

실제로 요성향즉 요성마을이라는 지명과 동요성 ,서요성, 요수, 요하라는 지명이 모두 현지에 아직도 남아 있다.

http://baike.baidu.com/link?url=1Ac2jquJSbu9KyQPIplItr45aUGO7uLu2MJUapBFCM367BeYPHb1OeTXne0as9e4MQ9ucZGfOKrVR291z08Uja 요성향

 

조선의 지리관념을 보여주는 동국지도이다.

조선은 고요동즉 고구려의 초기 요동성은 탈환했는데 신요동즉 고구려의 후기 요동성이자 당시 명나라요동성은 수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또한 거란을 고구려 발해의 일원으로 보고 나아가 조선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요나라의 주요 수도를 조선이 차지해서 지도에 표기한 이유도 있다.

 

심하라는 지명은 산해관옆에 있는 강인데 조선은 심하와 백암성으로 경계로 명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산해관밖은 조선땅이다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무능한 국사학자들은 백암성을 요동반도안에다 구겨넣으려 하는데 이미 조선시대초기에 백암성이 산해관의 서북쪽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즉 고구려의 동서와 조선의 동서길이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오히려 조선은 백제땅을 점령했으니 더 크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중기이후 지명들이 대거 이동되면서 광녕성이 신향현에서 지금 베이징일대로 옮겨진다. 이때 요성역시 베이징동쪽 순의현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조선영토의 축소가 시작된다.(지명이동의 원인은 임진왜란때 명이 조선을 돕는 대가로 땅을 요구했거나 청나라가 조선땅을 순차적으로 점령하면서 조선당국이 스스로 지명을 이동했을 것으로 본다.)

 

원병을 보내면서 땅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진(晉)나라때 선비족과 훈족의 침공을 막고자 진나라가 백제에 원병을 요청하자 백제는 대군을 보낸뒤 철군하지 않고 진나라땅을 점령해버렸다.그곳이 바로 진평군,요서군이다. 당나라 말 이사도의 난때 신라는 원병을 보낸후 당나라 등주와 금주일대를 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