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영토

소오강호 2009. 6. 13. 10:46

거란지리도와 거란국지에 나온 거란지리지도이다. 거란의 중경은 동경의 서쪽으로 난하의서쪽에 있다.

 

광인령(廣仁嶺)을 넘고 난하(灤河)를 건너 난평현(灤平縣)에서 밥을 지어 먹고, 왕가영(王家營)에서 말을 먹이고 상산욕(常山峪)에서 잤다.
난평현은, 당 나라 때에는 해왕부 서성(奚王府西省)의 땅이었는데, 요(遼)에서는 북안주 흥화군(北安州興化軍)을 두어 중경(中京)에 예속시켰고, 금(金)에서는 흥주 영삭군(興州寧朔軍)으로 하였으며, 원(元)에서도 그대로 흥주(興州)로 하여 상도로(上都路)에 예속시켰는데, 속칭(俗稱) 대흥주(大興州)라고 하였다.

연행기(燕行紀) 제2권열하에서 원명원까지[起熱河至圓明園] ○ 경술년(1790, 정조 14) 7월[16일-26일]

 

청나라와 조선후기에 분명히 난하를 넘어서 난평현이 있고 여기가 중경에 예속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즉 거란의 중경과 동경이 모두 난하근처임을 알수있을 것이다. 원의 상도는 청나라지도에 난하의 서쪽상류에 표기되는데 요의 상도근처에 세운것으로 보인다. 즉 거란지리도의 소요수가 난하임을 이제 알것이다. 그러니 난하에서 요하사이가 고려 신라 여진 발해의 4국지경이라는 것이 거란지리도의 올바른 해석이다. 이것도 모르는 매국노 국사학계는 어서 물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