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 고려의 수도 개경

소오강호 2009. 6. 30. 14:44

 

蕭排押等與高麗戰於茶、陀二河,遼軍失利

소배압이 고려와 다,타의 두개의 강에서 싸웠으나 졌다.

貴德州,寧遠軍,下,節度。本漢襄平縣地,漢公孫度所據。太宗時察割以所俘漢民置。後以弒逆誅,沒入焉。聖宗建貴德軍,後更名。有陀河、大寶山

귀덕주 영원군은  본래 한나라 양평현의 땅인데 한나라때 공손도가 거처를 정했고 중략  타하와 대보산이 있다.

廣州,防禦。漢屬襄平縣

광주는 한나라 양편현땅이다.

以平州為盧龍軍

평주를 노룡군으로 삼았다.

高麗王詢懼,奔平州。排押入開京,大掠而

고려왕이 놀라 평주로 달아났다. 소배압이 개경이 입성하여 되돌아왔다.

요사

 

요나라기록에 타하의 위치가 있는데 왜 이 요사를 읽지않고 매국노들이 자기멋대로 요와 고려가 싸운곳을 한반도라고 거짓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라도 팔아먹을 못된놈들이다.!!!!!!!

고려의 광주는 백제의 한산일대로 지금의 텐진북쪽이다. 우연인지 요나라가 광주라 부르는곳도 역시 그 일대이다.

http://blog.daum.net/manjumongol/131 고려의 광주 현재의 하북성 당산시 근처

 

요사는 기록할때 당연히 자기네 위주로 기록한다. 가령 고려와 요가 똑같은 땅을 서로다른지명으로 부른다면 고려사는 고려가 부르는이름으로 요사는 요나라가 부르는 이름으로 기록한다. 그래서 고려사에는 석천에서 요나라군을 패배시켰다고 쓰고 요사는 다,타이하에서 패배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 요나라가 평주라고 부르는 곳은 거란지리도에 표기된 그 평주이다.

 

요와 고려가 평주라 부르는 곳이 동일했을 것이다.

 

甲辰에 蒙兵의 斥候騎兵은 고(廷安) 白(白川) 等州에 이르고 余愁達은 平州 寶山驛에 屯兵하였다

고려사

 

게다가 요사에 나오는 대보산이 고려사에 평주 보산역이라고 나온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름도 같고 보산도 같이 등장하고 ......게다가 요가 타하로 부르는곳이 고려땅인데 역시 요나라기록에 평주근처로 나온다. 게다가 고려와 같은 광주도 나오고 위치도 비슷하고 

 

12월에 소배압 등이 개경(開京)에 이르자, 적들이 무너졌다. 이에 군사들을 풀어 사로잡고 노략한 다음 돌아왔다. 군사들이 다타이하(茶陀二河)를 건널 즈음에 추격하는 고려의 군사들이 쫓아왔다

요사(한국고전번역원 번역)

 

 

2월 초하루 기축일에 거란 군사가 귀주를 지나니 감찬 등이 동쪽 들에서 맞아 크게 싸웠는데 양편의 군사가 서로 버티어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다. 김종현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왔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남쪽에서 불고 깃발이 북쪽을 가리키자 우리 군사가 형세를 타서 분발하여 치니 저절로 배로 용기가 났다. 거란 군사가 패하여 북쪽으로 도망하니 우리 군사가 뒤쫓아 쳐서 석천(石川)을 건너 반령(盤嶺)에 이르렀다. 죽어 넘어진 시체가 들판을 덮고, 사로잡은 군사와 말ㆍ낙타ㆍ갑옷ㆍ투구ㆍ병기는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으니

기미 10년(1019), 송 천희 3년ㆍ거란 개태 8년 고려사절요

 

요사와 고려사 모두 같은 기록을두고 자기네가 부르는 지명으로 부른다. 너무 당연한것아닌가 그러니 요사가 기록한 고려왕이 도망한 평주는 요나라지도에 나오는 평주가 맞다.

河水北行,轉西流,過崑崙北,一向東北流,約行半月,至貴德州

하수(황하)가 북쪽으로 나아가서  중략 동북으로 흘러 귀덕주에 도달한다.

원사

 

고대의 황하가  바다에 가기전에 도달하는 곳은 당연히 지금의 텐진일대 즉 요나라가 평주라고 부르는곳이다.

 

 

 대청광여도에 친절하게 고대 황하흐름도까지 그려넣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귀덕주는 하수가 바다로 들어가기전에 나오는 땅일 것이다. 게다가 평주또한 그 위쪽일 것이다.결국 고려군이 요나라군대를 대패시킨 곳은 바로 현재의 베이징과 텐진사이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고려수도 개경은 그 남쪽일 것이다.

 

平州。案《禹貢》冀州之域,于周為幽州界,漢屬右北平郡。後漢末,公孫度自號平州牧。及其子康、康子文懿並擅據遼東,東夷九種皆服事焉。魏置東夷校尉,居襄平,而分遼東、昌黎、玄菟、帶方、樂浪五郡為平州,後還合為幽州

평주는 우공의 구주중에 기주에 속하는데 유주의 경계에 있다. 한나라때는 우북평군에 속하고 한나라말에 공손도가 들어와서는 평주목이라 자칭하고  중략   요동,창려,현도, 대방, 낙랑의 5군으로 나누었다가 유주에 합했다.

晉서

 

 

우공구주산천지도는 갈석산 아래가 기주이다. 즉 거란지리도상의 갈석산아래가 기주인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중국역사지도도 기주의 영역을 위와 같이 표기한다. 북경에서 한참 남쪽이다. 그런데 진서에 분명히 평주는 기주에 속하고 우북평군이라 했는데 왜 우북평군을 기주밖에다 그리는가 지들이 그리고도 지들이 헷갈리는 모양이다. 이걸 그대로 따라한 우리 매국노 학계도 문제가 무지 많다.즉 평주는 베이징동남쪽이며 이곳이 우북평군이라는 것이다. 북평은 명나라초기에도 지금의 베이징일대를 북평이라 불렀다 그전에는 북평은 훨씬 서쪽에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북평바로옆인 우북평이 졸지에 베이징에서훨씬 멀리 가게 그리는가!!!!!

 

 

 

게다가 평주에 속한 요동,창려,현도, 대방, 낙랑의 5군의 위치를 추정해보라 아무리 벗어나도 난하를 넘을 수가 없다. 어떻게 낙랑군을 한반도에 대방군을 한반도에 그리는가 !!!! 그렇게 그리는 놈들은 매국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서만 읽어도 바로 답이 나온다. 

 

아무튼 요나라군이 패한 타하는 바로 한나라 양평이며 평주를 말하는 것이다. 즉 요나라군이 베이징동남쪽의 평주이남으로 고려개경을 향해 진격했다가 퇴각하는 도중에 평주에서 전멸한 것이다.  역시 고려개경이 평주에서 남쪽임을 알수있다.

 

 

 

청나라 때의 지도로는 옛 지명을 찾을 수 없을 것이요. 왜냐하면 이미 교치가 이루어진 그 후의 지명을 표시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애를 먹고 있죠 그런데 아주 드물게 명나라때 지명이 꽤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