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제3전성기영토

소오강호 2009. 7. 1. 12:24

초선(肖銑)은 원래 수조(隋朝)의 라천령(羅川令)으로 양실(梁室)의 후예였다. 서기 617년에 군사를 일으켜 수(隋)를 반대하고 이듬해에 강릉(江陵-호북(湖北)에 속함)에서 양제(梁帝)라 칭하고 동으로는 구강(九江-강서(江西)에 속함)에 이르고 서쪽으로 삼협(三峽)에 닿았으며 남으로 교지(交趾-(베트남 하노이성 남)에 이르고 북으로는 한천(漢川-한수(漢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장악하고 군사 40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출처 : [기타] 중국중세전쟁간사-인민해방군 출판사著

 

당나라는 장안에서 건국된후 남하하여 양자강일대의 양나라를 토벌했다.

 

 우공구주산천지도라는 고지도에서 양나라의 영역을 알수있다.

 

孝恭曰:「銑之境,南際嶺,左薄洞庭,地險士眾

西至三峽,南交趾,北距漢水,皆附屬,勝兵四十萬

효공이 말하길 초선의 땅은 남으로는 제령 동으로는 동정호에 가깝고 험한 지경과 군사는 강하고 서쪽으로 삼협에 가깝고 남으로 교지에 이르며 북으로 한수에 도달한다. 40만의 병력을 보유하고있다

 신당서

 

위의 기록을 토대로 양나라지도를 그려보자

 

 

100%확실하게 양나라는 절강과 복건 광동광서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의심되면 기록을 다시 읽어보라 절대 100만%확실하다그럼 절강 복건 광동광서는 누구땅인가? 당나라땅은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다 왜냐면 당시 당나라는 이제 중원을 평정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의심되면 고대기록을 찾아서 읽어보라 중원의 여러 군벌과 수나라 잔당을 토벌하고 겨우 장안과 낙양을 회복하고 이제 남쪽으로 세력을 뻗치려는 시기이기때문에 양나라남쪽의 땅은 절대 never 누가머라해도짱개가 떠들어도 매국노가 아무리 떠들어도 이병도가 아무리 조작해도 저땅은 양나라땅도 당나라땅도 아니다.

 

  

 

위의 원나라시대 지도를 보면 당시의 지리개념을 알수있다. 양나라는 호북 호남 회서 강서를 차지한 것이다. 광남일부도 차지했다고 볼수도 있겠다.그럼 절강 절서 복건 광동 광남일부는 누구땅인가?

송나라당시에도 광서의 강주와 천주일부는 고려땅이다.http://blog.daum.net/manjumongol/274고려의 땅 천주와 광서의 강주

廣西

신당서,수서,진서,남제서에는 광서란 말이 없더라 광남과 광동은 있는데 왜 광서는 없을까?

 

 

우리의 의문을 풀어줄 지도가 위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이다.말그대로 옛날과 지금(송나라시대)의 지명을 비교해서 적은것이다.

 

 

 

 오늘날의 지도로 옮겨 놓으면 진 晉 나라의 영토는 위와 같다. 그럼 최소한 짱개와 매국노 국사학계는 진나라 남쪽땅은 짱개의 땅이 아니라고 해야한다. 겁많고 고집불통의 매국노 국사학계는 이런 말도 할줄 모른다.

진나라의 땅을 제외한 땅은 누구땅인가? 당시 최강자 바로 백제 땅이다. 백제가 차지한 땅이 신라와 고려에 상속되어 송나라때도 광서강주와 천주가 남아있었는데 백제가 전성기일때는 그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지 않았겠는가!!! 왜 상식이 없는가?????

 

당나라가 양나라를 공격할때 백제는 무왕의 시기였다. 무왕이란 호칭은 아무렇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 무제 고구려 대무신왕 발해 무왕 신라 문무왕  전부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백제 무왕은 기껏해야 신라땅뺏은것 말고 머가 기록에 남았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신라땅 코딱지 만큼 뺏어놓고 무슨 무왕이라는 존칭을 후대에 붙였을까?????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해 망하고 고구려군은 황하동쪽일대를 장악하였고 백제는 수나라의 멸망시기 각지군벌들이 활약하고 나라가 분열되는 절호의 시기에 대규모 정벌전쟁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진나라때보다 백제땅이 더 넓어진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백제 무왕시기 백제는 수나라멸망을 틈타 대륙남부의 영토를 넓힌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