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최전성기영토

소오강호 2009. 7. 2. 13:40

灤州,永安軍,中,刺史。本古黃洛城。灤河環繞,在盧龍山南。齊桓公伐山戎,見山神俞鬼,即此。秦為右北平。漢為石城縣,後

난주 영안군은 본래 황락성이다 난하가 돌고있고 노룡산이 남쪽에 있다. 제환공이 산융을 토벌할때  산신이 나타났다(?) 진나라는 우북평으로 했으며 한나라는 석성현으로 했다.

名海陽縣,漢水為公孫度所有。晉以後屈遼西。石晉割地,在平川之境。太祖以俘戶置。灤州負山帶河,為朔漢形勝之地。有扶蘇

후에 해명현으로 개명했다. 공손도가 거처한 한수가 있다. (아싸 백제의 한수찾았다^^) 진나라는 요서라고 했단다. 평천의 경계에 있다. 난주부산이 하를 마주보고 있다. 중략 

泉,甚甘美,秦太子扶蘇北築長城嘗駐此;臨榆山,峰巒崛起,高千餘仞,下臨渝河。統縣三:義豐縣。本黃洛故城。黃洛水北出盧龍

부소천이 있다. 진나라 태자 부소가 장성을 쌓느라 머물렀다. 임유산이 있다.중략  황락수는 노룡산에서 나온다

요사

 

 

요사의 난하는 영정하이다.http://blog.daum.net/manjumongol/293

 

本黃洛故城。黃洛水北出盧龍山,南流入於濡水。漢屬遼西郡

본래 황락고성이며  황락수가 노룡산에서 나온다. 남으로 흘러 유수에 합하여 흐른다. 한나라때 요서군에 속했다.

요사 

 

大興府,上。晉幽州,遼會同元年升為南京,府曰幽都,仍號盧龍軍

대흥부는 진유주인데 요 회동원년에 남경이 되고 유군이라고도 하고  노룡군이라 한다.

금사

 

 

 

 

 

                              금사에 따르면 탁군의 서쪽에 진나라 유주가 있고 노룡이라 했다.

 

 

 

 

 

위의 우적도에 유수가 나온다. 유수는 황락수가 들어가는 곳인데 황락수는 노룡산에서 나온다. 즉 탁군의 서쪽에 노룡이 있고 그곳에 노룡산이 있으며 거기서 황락수가 나와서 유수에 들어간다. 모두 지금의 영정하를 설명하는 것이다. 즉 요사에 나온 난하는 영정하이며 난주는 영정하일대의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난주 영안군은 유수에 합쳐지는 곳일대이다.

 

 

 

 

 

 

                 현재 지도와 비교해 보면 계주의 서쪽이 영정하이며 황하와 가깝다 즉 고지도상의 유수가 바로 영정하이다.

 

 

그럼 이곳이 공손도가 한수라 부른 강이 있는 곳이며 요서군을 설치한곳이다.

 

 중평(中平) 6년(189)이다. 처음에 양평(襄平) 사람 공손연(公孫延)이 관원을 피하여 현도에 들어와서 살면서 살펴보건대, 공손연이 현도에 들어와 산 것은 환제 영강(永康) 연간에 있었다. 아들 공손도(公孫度)에게 군리(郡吏)가 되게 하였다 이 당시에 현도 태수는 공손역(公孫域)으로, 그의 아들 표(豹)가 18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초평(初平) 원년(190)에 요동군을 나누어 요서군(遼西郡)과 중료군(中遼郡)으로 만든 다음 각각 태수를 두고, 바다를 건너 동래(東萊)의 여러 현들을 거두어 영주 자사(營州刺史)를 둔 다음, 스스로 요동후 평주목(遼東侯平州牧)이 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의 기록에서 현도군이 요나라의 난주영안군즉 공손도의 요서군과 가까움을 알수있다 게다가 원래 한나라의 요동군이 지도상의 난주영안군임도 알수있다. 그곳을 공손도가 요서군과 중요군으로 나눈것이다. 즉 한나라의 원래 요서군은 지리지에 고죽국이 있다고 했는데 그 고죽국인 하북의 고죽국이 아니라 산서성의 고죽국임을 알수있다. 즉 한나라의 원래 요서군은 산서성에 있고 요동군은 영정하일대 현도군은 영정하 남부임을 알수있다.

 

동명왕의 후손 가운데 구태(仇台)란 자가 있었는데, 어질고 신의가 있어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그러자 한(漢)나라의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가 그에게 딸을 보내 아내로 삼아 주었다. 점차 강성해져서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수서

 

공손도가 백제와 동맹을 맺은 것이다. 왜냐면 남쪽의 원소나 조조에게 살아남으려고 백제와의 동맹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백제는 공손도와 가깝게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비류(沸流)와 온조가 남쪽으로 와서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 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아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살기를 원하자, 열 명의 신하가 간하기를, “이곳 하남(河南) 땅은 북쪽으로 한수(漢水)를 띠고 동쪽으로 고악(高嶽)에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 옥택(沃澤)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대해(大海)를 격하였으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듣지 않고 미추홀(彌鄒忽) 로 돌아갔다. 그러자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는 한수의 남쪽 하남땅에 도읍했다. 즉 공손도가 거처한 요나라의 난주 영안군 지금의 영정하 중류지방에서 그곳을 북쪽으로 보며 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신당서에는 백제는 두개의 왕성이 동과서에 있다고 했다. 위의 것은 서쪽 도성즉 한수의 근처에 있는 한성을 찾은것이다. 그리고 동쪽 한강에 있는 한성은 바로 대동강 평양성으로 이미 성벽에서 漢城이라는 각서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경기도의 광주 이성산성에서는 南漢城이라는 각서가 발견되었다. 결국 백제의 동쪽왕성은 대동강 평양시로 이곳의 강은 원래 한강이었으며 그 성은 한성이었다. 즉 백제는 한수와 한강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쪽 한성 서쪽 한성으로 수도를 부른것이다. 고구려또한 수도마다 전부 평양성이라고 이름붙이는 바람에 후손들이 헷갈려 하는데 백제역시 우리를헷갈리게 한다.

지금 난하의 옛 이름이 유수(濡水)라고 하는데요?
게시되어 있는 우적도의 맨 오른쪽 강을 보시면 지금 난하를 유수라 표시하고 있고, 노룡도 있고, 평(주)도 있고, 하류에는 갈석산도 표시되어 있네요.
그런데 왜 엉뚱한 강을 유수라고 표시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이선생이 유수라고 표시한 강은 아마 지금의 양하가 아닌가 싶고, 그 강은 관청수고로 들어가 영정하가 되고, 해하가 되어 발해만으로 들어가지요.
물론 고죽국이 있었다는 원래의 노룡이나 진시황이 순행했다는 갈석은 지금보다 더 서쪽 즉 태행산맥 줄기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관청수고, 탁록 부근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언젠가 지명이 동쪽으로 이동된 듯 합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요사의 난주 기록은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난현(난주)에 관한 기록으로 보이는데, 옛 기록과 짬봉되어 기록되어 있는 듯 합니다.
참고로 나는 백제의 한수가 바로 난하 중 반가구수고 남쪽으로 보고 있고, 하남위례성 즉 한성을 지금의 천서현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만.................
고금화이구역총요도에 노룡이었던 진유주가 탁군보다 서쪽에 있으며 이곳이 바로 난주영안군의 노룡산이 있는 곳이라고 썼는데 왜 안읽으시는지??? 우적도와 고금화이구역총요도를 비교해보시면 유수가 바로 영정하임을 알수있는데 현재 지도와도 비교해 보세요 !!!
그리고 우적도에 계주의 서쪽에 있는강이 영정하지 난하입니까???? 난하가 언제부터 황화와 가깝게 되어있죠!!! 자세히 보시면 황하근처에서 발원하는 강은 바로 영정하 아닙니까 어찌 난하입니까
선생님 인정할건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의 난하중심설은 제가 보기에 조금더 서쪽으로 이동해야 할것 같습니다. 명대초기와 명대후기에 지명이 이동된것을 선생님께서 모르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표해록과 조선후기 연행기를 비교해서 읽어보십시오 지명이 이동된것을 아실수있습니다. 특히 산해관조차도 원래는 구만리장성에 있다가 신만리장성에 이동된것을 아실수 있습니다. 표해록에는 산해관을 지났는데 그곳이 베이징근처이고 다시 명나라가 쌓은 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명이 통째로 명대후기에 이동된것이지요
제가 책을 쓸때 조선땅이 요하동편의 요양과 심양은 포함되지 않는것 같다고 썻지요 그리고 요하를 경계로 그위는 조선땅 중간은 명나라땅이라고요 그런데 쿠투의 어느 고수분이 요양과 심양이 조선전기에 난하근처인것 같다고 하더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그말이 사실이었구요 저는 제 주장을 바로 고쳤습니다. 그러니 윤여동선생님도 지금 선생님의 주장에서 조금더 서쪽으로 이동하셔서 수정하시는것이 더 옳을듯 합니다.
고금화이구역총요도의 요수를 지금의 어디로 보느냐가 관건일 듯 싶습니다.
그 지도를 보면 요수 동쪽에 당안동부가 위치하고, 한나라 때의 요동군,순임금때의 영주라고 표시되어 있고, 그 동쪽에 평양, 고려, 백제, 신라가 표시되어 있으며, 만리장성도 계, 단, 영평을 지나 훨씬 동쪽까지 그려져 있고, 그 북쪽에는 정안국, 실위, 부여 등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금화이구역총요도에서 말하는 고려, 백제, 신라는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다는 말이며, 정안국은 또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고대의 유주나 계주가 지금의 어딘지 혹시 이 선생은 알고 계십니까?
설마 이 선생이 지금 천진의 계현을 옛 계주로 보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고금화이구역총요도에는 계주가 요수의 서쪽에 그려져 있군요. 지도에서 말하는 요수는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요?
또한 이선생이 우적도에 유수라고 표시한 곳은 유수(濡水)가 아니라 유주(儒州)의 표시이고, 우적도를 보아도 유수가 계의 동쪽에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계를 지금의 천진 계현으로 본다고 해도 그 동쪽에서 유수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난하가 옛 유수라면 백제 한수는?
어찌되었든 우리 고대역사의 중심지가 북경 부근인 것만은 틀림없으니 그 부근에서 요수를 먼저 찾으신 후에야 백제의 한수를 논할 수 있을 것이고, 삼국의 위치도 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국은 요수의 동쪽에서 찾아야 할테니까요.
삼국의 위치를 정확히만 찾는다면 그 이후의 역사 해석은 그리 어려울 일이 없겠지요.
하여튼 가까이 갔으니 열심히 찾아 봅시다.
선생님 우적도에 유자는 제눈에는濡로 보이는데요 그리고 금사에서도 진유주가 노룡이라고 하며 지도에서 탁군의 서쪽에 있구요 이것말고도 제가 난하가 영정하라는 자료를 올렸으니 읽어보십시오 아랫글에 있지 않습니까
고금화이구역총요도의 요수는 난하혹은 조하가 아닐는지요 수직으로 된강은 그거 두개뿐이지 않습니까
당안동부는 여러 차례 옮겻기에 딱히 어느곳이 안동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장성이 연장된 것은 조선의 기록을 보면 알수있는데 고려가 쌓은 천리장성을 만리장성이라고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려가 만리장성과 연결해서 장성을 쌓았겠죠 고려의 대요방어선은 만리장성끝부분에서 시작하여 천리장성을 다시 쌓고 대릉하 요하를 거쳐 송화강과 아무르강에 이르는 방어선입니다. 그너머 여진땅을복속하여 9성을 설치한 것이구요 그러니 다른나라사람이 보기에 만리장성과 고려의 천리장성이 연결된 것처럼 착각하여 지도를 그릴때 위와같이 그린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역시 만리장성이라고 표현한 것이구요
유주와 계주는 지금의 위치와는 조금씩 다르겠죠 사서마다 찾아봐야겠죠

우적도에는 제가 보기에 영정하에도 濡라고 쓰고 난하로 추정되는 강에도 濡라고 두개를 쓴것 같습니다. 누군가 후대에 새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란지리도에도 대릉하라는 지명이 압록옆에 새겨져 있는데 표해록을 보면 명나라전기에도 대릉하는 압록옆이 아니라 요하(현재의 난하)서쪽에 있는 작은 하천이라고 써있습니다. 현재의 대릉하는 큰 강이죠 누군가 후대에 다시 새겼는지도 모를 일이죠

거란지리도의 요나라 중경을 보세요 소요수의 서쪽에 있지요 소요수가 바로 난하로 추정되는데 마침 조선후기 연행기에 난하를 건너니 요나라중경이 있더라 라고 써있습니다. 그러니 요나라동경은 원래 바로 난하의 동쪽에 있었던 거지요 그걸 전부다 현재의 요하동쪽이라고 생각하니 지명이 꼬인 겁니다.
대단한 열정들이시네요. `濡`는 젖을 `유`와 머리감을 `난`으로 읽을 수 있다네요. 수경주 濡水 본문에도 濡와 難이 비슷한 음이라 설명했군요. 그러니 지금의 난하는 예전부터 음가는 난하였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제가 보기에 영정하를 난하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총요도의 요수는 난하를 말하네요. 아마 요수와 난하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은 것 같네요. 요사 지리지 중경은 확실히 난하 부근이며 서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동경 역시 님이 정확하게 보신 것 같습니다.
만주몽골조선땅님이 찾으신 한수는 옳게 찾으신 것으로 생각하며 동의합니다. 산해경 해내서경의 맥국을 설명하는 글에서 漢水가 등장하지요. 기억으로는 요동군 서안평 동북쪽에 있다고 한 한수는 한서 지리지 요동군 번한현의 沛水의 남쪽일 것이며, 대방군에 있었을 帶水 남쪽이 되겠지요. 이 부근을 삼국시대 말에 공손탁이 점거하였다는 설명이겠지요. 아마 대방산 서남쪽으로 장성, 갈석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백제사의 숙원인 한수를 찾았으니 이제 여러 재야사학자분들이 더연구하셔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
산해경 해내서경 ` 夷人在東胡東 貊國在漢水東北 地近于燕滅之`
후한서 군국지 동이열전 고구려에서 맥을 서명하면서 위씨춘추를 인용하였는데
` 遼東郡西安平縣北 有小水南流入海 句麗別種因名之小水貊 `라 했군요.

역사천재 블로그에 님께서 漢水에 대한 기록을 찾으시기에 올려봅니다.

한편 한서 지리지, 후한서 군국지의 낙랑군 대방현, 함자현,장잠현, 열구현/ 진서 지리지 대방군 대방현,열구현,함자현,남신현/ 위서 지형지 영주 낙랑군영락현,대방현 평주 북평군 조선현/ 수서 지리지 요서군 유성현의 帶方山/ 요사 지리지 동경도 대동단국신건남경비명의漢城, 요양부 요하,패수,니하,백석산,횡산, 로주 漢陽, 숭주의 장잠현, 崇山, 흥주 蒜山, 요주의 요하,蛇山,랑산 등등의 지명들은 삼국사기 고구려,백제,신라본기에도 기록된 지명들로 동일한 지명이 이렇게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또 북사 열전 백제조에는 도성이 거발성, 고마성으로 기록되어있고 그 외 고사성,득안성,구지하성,도선성,웅진성 등 5 성이 또 있습니다.
님이 찾으셨다는 한성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습니다.
사실 한성을 찾는 것이 백제사의 숙원이시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략 정확한 지점은 찾으신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한수 남쪽의 한성에 이어 웅진,사비성으로 천도하는 백제와 남부여의 전체를 규명하여 할 숙제를
님은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이제껏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찾으신 것이 한수 하나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수를 찾으신 기쁨에 허전함이 몰려온 것도 짐작할 만 합니다.

하지만 한수 한가지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강단을 설복시키려면 아무리 적어도 논거의 체계를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되어지는데,
그 시작이 요사 지리지라면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나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한수에 덧부쳐서 위에 열거한 한서부터 요사까지 기록된 지명들의 연관성이 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넘는 이야기겠지만
여기까지 도달한 공부로 내쳐 가실 일이지 누구보고 더 연구하라 하십니까?
심히 불쾌합니다. ㅎㅎ
선생이 나태해지는 것이 안타까와 후생이 채찍을 듭니다.

헉^^ 같이 연구하자는 뜻인데요 그리고 저는 생업이 의업이고 곧 정치진출을 염두에 두고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합니다. 쿠투와 윤여동선생님과 토론하면서 찾아가는게 재밌고 뜻깊은 일이지요^^ 사비성과 웅진 남부여역시 다찾았습니다. 제블로그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대략의 지명을 거의 찾은것을 알수있습니다.고구려의 평양성 장안성 국내성 안시성 요동성 한성거의 대부분 찾았습니다. 사료와 유물을 근거로 대부분 정확하다고 자부할수 있습니다.^^
방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