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수복을 위한 방법

소오강호 2009. 7. 3. 17:50

昌平州元昌平縣,直隸大都路

北有天壽山,成祖以下陵寢鹹在。東南有白浮山。西南有駐蹕山。又南有榆河,一名溫余河,下流為沙河,入於白河。又東南有鞏華城,嘉靖十九年築。東北有黃花鎮。弘治中,置渤海守禦千戶所於此,萬歷元年移於慕田峪,四年復故。西有鎮邊城,又有常峪城,俱正德十年五月築,各置守禦千戶所。又有白陽守禦千戶所,亦正德中置。西北有居庸關。南距府九十里。領縣三:

명사

蓋州衛元蓋州,屬遼陽路。洪武四年廢。五年六月復置。九年十月置衛。二十八年四月,州復廢。東北有石城山。又北有平山,其下有鹽場。又東有駐蹕山,西濱海,有連雲島,上有關。又東有泥河,南有清河,東南有畢裡河

명사

 

평안도 감사에게 전지(傳旨)하여 동팔참(東八站) 길가의 들에 있는 풀(草)을 태우지 못하게 하였으니, 장차 말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세종 5년 계묘(1423, 영락 21)

 

 

지금 요동(遼東)의 호구(戶口)에서 고려 사람이 10분의 3이 살고 있어 서쪽 지방 요양(遼陽)으로부터 동쪽 지방 개주(開州)에 이르기까지 남쪽 지방 해주(海州)·개주(蓋州)의 여러 고을에 이르기까지 취락(聚落)이 서로 연속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국가에서 급급(汲汲)히 진려(軫慮)할 것입니다

 세조 10년 갑신(1464, 천순 8)

 

중국 조정에서 장차 개주(開州) 등지에 위소(衛所)를 세우려고 하니, 이것은 국가 문정(門庭)의 걱정입니다. 평안도(平安道)의 백성들은 다만 방수(防戍)에만 시달릴 뿐 아니라 또한 중국에 입조(入朝)하는 사신의 영접과 전송을 하는 데에도 매우 시달리게 되어, 태반이 동팔참(東八站)과 해주(海州)·개주(蓋州) 등 여러 주(州)에 유입(流入)하게 되므로, 한편으로는 토병(土兵)이 모두 없어지게 되고, 한편으로는 저들이 우리의 허실(虛實)을 알게 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인민(人民)은 무려 1백만 호(戶)나 되는데 그 중에서 활을 잘 쏘는 병졸이 30만 명이고, 정예(精銳)한 병졸이 10만 명이며, 용감한 군사가 3만 명입니다.

세조 12년 병술(1466, 성화 2)

 

요동(遼東)으로부터 남쪽 해주(海州)·개주(蓋州)의 동쪽으로 봉황산(鳳凰山) 기슭까지 그 땅이 넓고 멀어서 수백 리에 밑돌지 않는데, 인가가 즐비하고 곡식이 들을 덮어 인구가 점점 번성합니다. 사람들은 다 중국말을 모르고 오로지 우리 나라 말을 쓰며, 우리 나라 사람을 보면 앞을 다투어 고향을 물어 그 족속에게 인도하는데, 땅이 기름지고 세를 거두는 것이 매우 적으며 요동에는 또 동녕위(東寧衛)를 두어 편안하게 위안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본도에서 신역(身役)을 도피한 백성이 저곳으로 들어가지 않을는지 어찌 알겠으며, 압록강(鴨綠江)에 얼음이 얼어 의주(義州)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을 때가 되면 길게 노래하며 강을 건너더라도 누가 막는 자가 있겠습니까?

성종 17년 병오(1486, 성화 22

 

신이 동팔참(東八站)의 땅을 보니, 우리 나라 평안도(平安道)보다 크고 토지가 비옥하여 평안도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전에는 비워두고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여진(女眞)과 서로 접해 있는데다 큰 관방(關防)도 없어서 언제든지 도둑들이 침입하여 약탈하고 죽이므로, 중국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여 살지 아니하였고, 우리 나라 사람도 또한 두려워하여 몰래 의탁하지 못하였습니다.

동팔참(東八站) 사람들을 보니, 모두 우리 나라 말을 잘 알아서 평안도 사람과 다름이 없었으며, 신 등의 하숙(下宿)하고 있는 곳에 혹 와서는 무릎꿇고 절을 하며 영공(令公)이라 칭(稱)하기에 그 온 줄기를 물어 보았더니 모두 평안도 사람이라 하였고 혹은 조부(祖父) 때부터 혹은 증조(曾祖)부터 와서 살았다 하였지만 그 실은 어느 대(代)에 와서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짐작컨대, 모두 요사이 내투(來投)한 자였습니다

성종 19년 무신(1488, 홍치 1)

 

復州衛本復州,洪武五年六月置於舊復州城。十四年九月置衛。二十八年四月,州廢。西濱海。西南有長生島。又南有沙河,合麻河,西注於海

명사

海州衛本海州,洪武初,置於舊澄州城。九年置衛。二十八年四月,州廢。西南濱海,有鹽場。西有遼河,匯渾河、太子河入海,謂之三岔河。又西有南、北通江,亦合於遼河。東有大片嶺關,有鹽場。東北距都司百二十里

倭寇山東濱海郡縣

명사

其後,通州祀常遇春,山海關祀徐達,蘇州祀夏原吉、周忱,淮安祀陳瑄,海州衛祀衛青、徐安生,甘州祀毛忠,榆林祀余子俊,杭州祀于謙,蕭山祀魏驥,汀州祀王得仁,廣州祀楊信民

명사

서달이 쌓은 산해관은 지금 산해관이 아니고 유림관에 있는 산해관이구나 !!!!!

 

滄州 洪武初,以州治清池縣省入。舊治在東南。洪武二年五月徙於長蘆,即今治也。東濱海

泰州洪武初,以州治海陵縣省入。東濱海。南濱江。西有運河。

명사

通州洪武初,以州治靜海縣省入。南有狼山,臨大江,有狼山巡檢司。東南濱海

金州衛本金州,洪武五年六月置於舊金州。八年四月置衛。二十八年四月,州廢。東有大黑山,小沙河出焉。又有小黑山,駱馬河、澄沙河俱出焉。衛東西南三面皆濱海

廣寧衛元廣寧府路。江武初廢。二十三年五月置衛。洪武二十五年三月建遼王府。建文中改封湖廣荊州府。西有醫無閭山。南濱海。

명사

 

 

 

 

蓋州,下。

初為蓋州路。至元六年,並為東京支郡,並熊岳、湯池二縣入建安縣。八年,又並建安縣入本州。

원사

 

蓋州,奉國軍節度使,下。本高麗蓋葛牟城,遼辰州。明昌四年,罷曷蘇館

금사

 

沙河出東南山西北流,逕蓋州入於海 

有蒲河;清河;浿水,亦曰泥河,又曰蓒芋濼,水多蓒芋之草;駐蹕山,唐太宗征高麗,駐蹕其顛數曰,勒石紀功焉,俗稱手山,山顛平石之上有掌指之狀

 

辰州,奉國軍,節度。本高麗蓋牟城。唐太宗會李世敕攻破蓋牟城,即此。渤海改為蓋州,又改辰州,以辰韓得名

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