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수복을 위한 방법

소오강호 2009. 7. 4. 12:52

 

 

 

 

 

 

 

孫承宗以原官督理山海關及薊、遼、天津、登、萊軍務

二月丁酉,薊州、永平、山海關地震

通州祀常遇春,山海關祀徐達,蘇州祀夏原吉

명사

 

 비록 중국 같은 큰 나라로도 오히려 병부(兵部)에서 황제의 칙지를 받들어서 요동(遼東)·광녕(廣寧)·영평(永平)·산해관(山海關) 등처에 이첩(移牒)하여, 총병(總兵)이라든가 진수(鎭守) 등 관원이 만약 국경 밖에 각위의 달단(韃靼)·야인·여진 등 잡류(雜類)가 북경에 가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인신이 찍혀 있는 문서를 대조 험문(驗問)하고서, 다만 2, 3인 혹은 4, 5인에 한하여 북경(北京)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고,

세종 21년 기미(1439, 정통 4)

[주D-001]동팔참(東八站) : 압록강(鴨綠江)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었던 여덟 군데의 역참(驛站). 우리 나라 사신(使臣)이 중국에 왕래하던 교통로.

 

평안도 감사에게 전지(傳旨)하여 동팔참(東八站) 길가의 들에 있는 풀(草)을 태우지 못하게 하였으니, 장차 말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세종 5년 계묘(1423, 영락 21)

 

연산 파절(連山把截)은 고황제(高皇帝)가 정한 바이므로 양국의 봉강(封疆)은 서로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예종 1년 기축(1469, 성화 5)

 

고려 해주(海州) 청산(靑山) 파절 천호(把截千戶) 합도간(哈都干)의 하민(下民)으로서, 이름은 장갈매(張葛買)인데, 그가 말하기를, 고려왕(高麗王)이 흑포(黑布) 30통을 합도간(哈都干)에게 귀착(歸着)시켜 배 17척을 내게 했는데,

태조 3년 갑술(1394, 홍무 27)

 

요동 도사(遼東都司)에서 아뢰기를, ‘토인(土人)이 도망하여 반(叛)함으로 말미암아, 참장(參將) 서변(徐便)이 이미 도지휘(都指揮) 호경(胡璟) 등을 조발(調發)하여 관군(官軍)을 거느리고 쫓게 하여, 용주(龍州)의 강변(江邊)에 이르러 처음에 도망한 수적(首賊) 장사 백호(壯士百戶) 이용(李勇) 등을 사로잡았는데, 공술(供述)에 의하면, 「모반(謀叛)한 뒤로부터 먼저 가족을 누자산(樓子山) 등처에 숨겨 놓고, 해개(海蓋) 지면(地面)에서 인구(人口)를 노략하고 마필(馬匹)을 빼앗았으며, 차사(差使) 인원(人員)을 살상하였다. 또 아비 이전이(李典伊) 등으로 하여금 단자(段子)·포견(布絹)·의복을 가지고 살불랑마두(撒不郞馬頭)를 경유하여 떼[筏]를 타고 강을 건너게 하였고, 말[馬]을 용주(龍州)의 파절 만호(把截萬戶)에게 보내어, 본관(本官)에서 차발(差撥)한 배 5척이 와서 우리들 가족 3백여 명을 받아 싣고 강을 건넜다.」하였다.’하였습니다. 지금 조사하여 보니, 살불랑마두는 조선의 지방이고, 용주 만호(龍州萬戶)와 본국 인원(人員)과 이용(李勇) 등은 모두 도망하여 반(叛)한 인수(人數)입니다

태종 2년 임오(1402, 건문 4)

 

본래 고려의 안흥군(安興郡)인데, 현종(顯宗) 5년 갑인에 용주 방어사(龍州防禦使)로 칭(稱)하였다가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녕(定寧)에 이르기 9리, 서쪽으로 바다 어귀[海口]에 이르기 25리, 남쪽으로 철산(鐵山)에 이르기 14리, 북쪽으로 인산(麟山)에 이르기 9리이다

세종 지리지 / 평안도 / 의주목 / 용천군

 

臨城州西南。南有敦輿山。西南有鐵山

 

溧陽府東南。元溧陽州。洪武二年降為縣。東南有鐵山、銅山

金州衛本金州,洪武五年六月置於舊金州。八年四月置衛。二十八年四月,州廢。東有大黑山,小沙河出焉。又有小黑山,駱馬河、澄沙河俱出焉。衛東西南三面皆濱海。南有南關島。東有蓮花島。東南有金線島。又東有皮島,又有長行島。南有雙島及三山島。西南有鐵山島

沔府西。元沔州,屬四川廣元路。洪武三年改屬漢中府,省州治鐸水縣入州。七年七月降為縣。十年六月省入略陽,後復置。成化二十一年六月屬寧羌州。嘉靖三十八年十一月仍屬府。北有鐵山。東南有定軍山。南有漢水。西有沮水

徽州元屬鞏昌總帥府。洪武十年六月降為縣,屬府,後復升為州。東南有鐵山。

井研府南少東。洪武六年十二月置。十年五月省入仁壽縣。十三年十一月復置。東北有鐵山

 

大冶州西北。北有鐵山

명사

 

開平衛元上都路,直隸中書省。洪武二年為府,屬北平行省,尋廢府置衛,屬北平都司。永樂元年二月徙衛治京師,直隸後軍都督府。四年二月還舊治。宣德五年遷治獨石堡,改屬萬全都司,而令兵分班哨備於此,後廢。西北有臥龍山。南有南屏山,又有灤河。東北有香河,又有簸箕河、閭河,西南有兔兒河,下流俱合於灤河。又東有涼亭、沈阿、賽峰、黃崖四驛,路接大寧、古北口;西有桓州

명사

上都路,唐為奚、契丹地。金平契丹,置桓州。元初為札剌兒部、兀魯郡王營幕地。憲宗五年,命世祖居其地,為巨鎮。明年,世祖命劉秉忠相宅於桓州東、灤水北之龍岡

원사

 

 

 

 

 

 

 

 

定遼中衛元遼陽路,治遼陽縣。洪武四年罷。六年復置。十年復罷。十七年置衛。西南有首山。南有千山。又東南有安平山,山有鐵場。又西有遼河,自塞外流入,至海州衛入海。又西北有渾河,一名小遼水,東北有太子河,一名大梁水,又名東梁水,下流俱入於遼水。又東有鴨綠江,東南入海。又東有鳳凰城,在鳳凰山東南,成化十七年築,為朝鮮入貢之道。又南有鎮江堡城。又連山關亦在東南

명사

 

 

轄連山驛山至杏山驛

連州元桂陽州,直隸廣東道。洪武二年三月省入連州。四月,連州廢,地屬連山

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