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수복을 위한 방법

소오강호 2009. 3. 27. 11:38

然后八千里之發、朝鮮可得而朝也

관자 23권 경중갑편 말미

 

제나라때 쓰여진 기록으로 제나라 환공과 관자가 주변국에 대해 논한 것인데 밝조선이 팔천리의 땅임을 가르쳐주고있다.  팔천리의 밝조선이  조공하러 올것이다. 라고 관자가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삼국유사] 기이 72국 조條에는, 당나라 기록인 [통전]을 인용하면서, "조선의 유민이 70여개 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지방이 1백 리里 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조선이 8천리나 되는 대국이었음을 후대에도 대충 알고 있었다. 조선의 적장자는 만주 태백산에 세워진 부여국이다.

 

삼국지》위지동이전 : 부여는  현도 북쪽 천리에 있다. 남으로 고구려, 동으로 읍루, 서로 선비, 북으로 약수(弱水,...지방이 이천 리로서 본래 예 땅이다

 

고조선의 장자국 부여는 사방이천리이다. 즉 만주대부분이다.

 

고구려는 통전의 기록에 동서6천리 남북4천리이다. 물론 수나라시기때 그렇다는 것이고 고구려최대의 전성기 광개토 장수 문자태왕때는 그보다 넓었다. 만주몽골을 모두 포함하고 서남으로 난하까지이다.

 

《주서》 백제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백제는, 동쪽 끝은 신라와 닿았고 북쪽은 고구려와 접하였으며, 서쪽과 남쪽은 모두 바다로 막혀 있다. 동서 간의 거리는 450리이고, 남북 간의 거리는 900여 리이다

 

 문헌비고를 보면 월왕 구천의 고도를 둘러싼 수천리 고도가 다 백제의 땅이었다

당나라장수 이정이 말하길 남쪽의 양나라는 동쪽으로 동정호까지이다. 즉 나머지는 백제땅이다. 압록강근처에서 백제의 전방후원분이 대규모 발굴되었으니 그곳은 백제의 땅이었다.

 백제는 하북에서 산둥 강소까지 동서 450리 남북 900리이고 한반도 전역 동서1천리 남북 3천리를 차지하고  일본의 동서 8백리 남북4천리와  남북1천리의 대만과 절강의 남쪽에 동서5천리 남북 5천리를 차지한 초강대국이었다.

 

신당서》에는,

“동남쪽은 일본이고, 서쪽은 백제, 북쪽은 고구려인데, 가로는 1천 리, 세로는 3천 리이다

 

 당나라 현경(顯慶) 이후에 백제 땅과 고구려 남쪽을 얻어 동서로 900리 남북으로는 1000여리가 더 커졌다. 개원 이후 발해가 강해져 그 서북의 땅을 발해에 빼앗겨 신라는 압록강 이남 땅만 남았다. 당(唐) 말에 고구려가 다시 일어나 그 남쪽 땅을 차지하고 발해는 거란에 망해 신라는 서(西)로는 해주 암연현으로 거란과 경계를 삼고, 서북(西北)으로는 압록강 동쪽 8리에 있는 황토령으로 거란과 경계를 삼았다.
만주원류고

 

신라는 통일전쟁후 동서1900리 남북 4천리로 북쪽끝은 만주의 오랍(길림시북쪽)이며 서쪽끝은 난하인근의 고죽국이다. 신라는 백제의 복건성천주와 광둥광서일부를 차지했다.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제3권

 

고려는 난하에 있는 고죽국을 차지했는데 이는 고려말 이첨이 말하길 해주가 고죽국이다라고 한것으로 알수있다.즉 연나라의 땅인 연산도로부터 동쪽으로 3790리라는것은 고려의 동서를 말함이다. 즉 고려는 동서로 3790리이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선화봉사고려도경 제3권

 

 

고려땅이 초기에는 동서2천리 남북 1천 5배리인데 백제 신라를 합병한후 동북이 더 넓어졌다. 구체적으로 흑수말갈을 병합하였다.즉 수나라때 고구려가 남북4천리이고 신라가 남북 3천리이니  우리민족의 영역 남북은 7천리이다. 고려가 고구려의 동북을 차지했으니 고려는 동서로 3790리 남북 7천리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국은 동쪽, 서쪽, 남쪽은 바다에 닿았고, 북쪽은 여직(女直)과 이웃하였으며, 서북쪽은 압록강에 닿았다. 동서 간의 거리는 2000리이고, 남북 간의 거리는 4000리이다. 국성(國城)에서 경사(京師)까지는 3500리이고, 남경(南京)까지는 4000리이다

 

폐4군(廢四郡)이란 무창ㆍ여연ㆍ우예ㆍ자성이다. 네 고을의 지역이 거의 천 리가 넘어서 지금 황해도와 비교하여도 곱절이 넘는다. 비록 고을 관아는 없으나 또한 인민은 섞여서 살고 있다. 네 고을을 회복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남쪽으로 평양과의 거리가 거의 몇천 리여서, 감사가 멀리까지 통제할 수가 없다.  군현분예(郡縣分隸

 

 명나라가 생각한 조선은 동서2천리 남북 4천리이지만 세종때 설치한 4군이 1천리가 넘는다.

 

 

천하 무적 우리 육진의 군사 / 六鎭兵無敵
흉노가 날고뛴들 어떻게 해 보리요 / 匈奴技不如
기재의 손 안에 들어온 이상 / 奇才入彀率
승리는 우리의 것 오랑캐를 압도하리 / 勝氣壓穹廬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6진은 흉노의 땅즉 몽골일대를 말함이다. 조선의 북쪽끝이 고구려와 동일함을 알수 있다. 또한 명나라기록에 조선은 고려보다 땅이 배나 넓다고 했으니 조선은 고려보다 동서가 2배나 길고 남북은 같다. 즉 동서 7천리 남북 7천리이다.

 

 

11월. 상이 경연에 거둥하였다. 검토관 양성지(梁誠之)가 주달하기를,

"평안도 장성(長城)의 역사를 비록 파하기는 하였지만 여연(閭延)ㆍ무창(茂昌)ㆍ우예(虞芮) 등의 군(郡)이 강변에 닿아 있기 때문에 남도의 군사들이 큰 재를 넘어와서 수역(戍役)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인마(人馬)가 모두 고역을 견디지 못하여 대부분 전토와 재산을 팔고 요동과 심양 등지로 도망해 간다고 합니다. 지금 이 세 고을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큰 강이 한계로 되어 있으므로 국토는 여전히 그대로 있게 됩니다   국조보감 제9권  단종 1년(계유, 1453)

 

조선이 일부지역을 포기하더라도 큰강을 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즉 이름없는 큰강이 조선과 조선의 통치를 받은 올럅합부족과의 경계이다. 즉 고려의 동서 3790리에서 천리가량을 직속통치하고 나머지 구역은 부족국가가 조선의 번신으로 통치를 받은 것이다. 조선의 직할통치구역은 동서 4790리이고 남북 7천리이다. 그러나 조선의 최대영토는 동서7천리 남북 7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