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 고려의 수도 개경

소오강호 2010. 8. 18. 10:57

이날 유시(酉時) 후에 풍세가 극히 커서 배의 속도가 나는 듯하였다. 알자섬으로부터 눈 깜짝할 사이에 곧바로 마도(馬島)에 닿아 정박하였다. 마도는 청주(淸州)의 경내이다. 샘물은 달고 풀은 무성한데, 나라 안의 관마(官馬)를 무사할 때에는 이곳으로 몰아다가 기르므로 이것을 따서 마도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주봉(主峯)은 중후해 보이는데, 왼쪽으로 둥그렇게 껴안고 있다. 앞의 돌뿌리 하나가 바다로 들어가 있어서 물과 부딪혀 파도를 되돌려 보내는데, 놀란 물이 들끓어 오르는 것이 천만 가지로 기괴하여 말로는 이루 다 형언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배가 그 아래를 지나갈 적에는 대부분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데, 이는 암초에 부딪힐까 염려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객관(客館)이 있는데, 안흥정(安興亭)이라고 한다.
지청주(知淸州) 홍약이(洪若伊)가 개소관(介紹官)을 역어관(譯語官) 진의(陳懿)와 함께 보내와 전주(全州)에서 하였던 예(禮)와 같이 하였다

고려도경

 

 

매국노들의 고려지도를 자세히 보고 고려도경과 비교해보라 송나라 대학자 서긍이 혹시 수륙양용배를 타고 고려에 놀러왔는가?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나라안의 관마를 몰아서 키우는 곳이 과연 수도와 먼곳일까 가까운 곳일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마를 키우는 곳이 수도에서 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한반도 개성이 고려의 수도이면 지금 서울 혹은 해주정도가 적당하지 않겠는가 ?

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한반도 개성에서 충청도 청주가 얼마나 먼가?

고려사람들은 먼거리를 훌쩍 뛰어넘는 재주라도 있나?

 

서긍이 전주에서 접대를 받고 청주에서 접대를 받았는데 그는 분명히 배를 타고 가는 중에 접대를 받았다. 즉 잠시 배에서 내려 근처 해안가에 가서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국의 사신이 아무렴 바보가 아닐진대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도 하루이상 거리에 가서 접대를 받았겠나? 

 

 

원나라시대 고지도 청주의 위치가 드러난다. 

 

대청광여도 청나라시대에도 청주의 위치는 같다. 해안가가 맞았다. 게다가 주마대즉 말을 대는 곳이라는 지명이 분명히 청주경내에 있다.  서긍이 거쳐간 고려땅은 바로 지금의 천진일대이다. 그러니 고려의 수도는 바로 저곳을 거쳐서 도달한 것이고 저기서 멀지 않다. 지금의 청현일대가 제일유력하다.

 

그럼 그 당시 한반도 주인은 누구인가? 혹 탁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