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0. 9. 10. 14:34

 

장회라는 지명이 남아있는곳 현재의 회수일대 고대에 장회라 함은 회수를 말함이다.

 

 

당이 태복경(太僕卿) 왕경(王瓊)과 태부소경(太府少卿) 양소업(楊昭業)을 보내어, 책봉하여 특진 검교태보 사지절 현도주도독 상주국 충대의군사(特進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上柱國充大義軍使)를 삼아 고려왕에 봉하고, 비(妃) 유씨(柳氏)는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을 삼았다

계사년 왕 김부 7년 진훤 42년 고려 태조 16년(후당 명종 장흥 4, 거란 태종 천현 8, 933) 동사강목

 

又詔曰。卿長淮茂族。漲海雄蕃。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고려사 (933년 3월 5일 음력)

 

장회의 큰 족속이며 장해의 강한 번국이다. (장회는 회수를 가리키는 말 장해는 큰바다혹은 남해를 가리키는말)

 

 

 

송에서 태상경(太常卿) 왕저(王著)와 비서감(秘書監) 여문중(呂文仲)을 보내, 왕에게 검교태부 식읍일천호(檢校太傅食邑一千戶)를 가책하였다

을유년 성종 4년(송 태종 옹희 2, 요 성종 통화 3, 985)

 

進彼侯封。常安百濟之民。永茂長淮之族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고려사(985년 5월 미상 음력)

제후로 봉하니 백제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장회의 족속을 번성시키도록 하라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다음 송에서 장회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번성시켜라 함은 후백제의 영토가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견휜은 오대사에 보면 무려 호북성 무창까지 진격하고 개봉을 위협했다.

http://blog.daum.net/manjumongol/519 견휜의 침공지 호북성 무창 그럼 견휜에게 저런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왕건이 후백제를 통일하기전에  후당에서 보낸 서신에는 또 장회라고 써있다. 그것은 바로 고려가 견휜의 땅 무주를 뺏은 것을 말함이다.

http://blog.daum.net/manjumongol/373 신라의 무주는 강소성

 

후당입장에서 보니 자기가 듣기로 왕건은 고려사람들이 나주장군이라고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무주가 그 기반인줄알고 장회의 큰 족속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라가 차지한 백제의땅 강소성을 견휜은 비약적으로 넓혔고 백제 전성기시절영토에 버금가는 확장을 했지만 고려에게 끝내 항복함으로써 삼한은 통일되었다.  금과 송의 국경선인 회수는  상류부분이 금과 송의 국경이었을뿐 하류는 고려의 땅으로 계속 남아있었다. 그러니 송나라때 기록을 보면 고려를 거쳐서 금에 간다혹은 금을 치려는데 길을 비켜달라 이렇게 서신을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