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 후백제의 영토

소오강호 2010. 10. 29. 18:07

청나라말기 고지도

臨清,望。大曆七年隸瀛州

신당서

임청은 녕주에 속한다.

 

본래는 백제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인데, 신라 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19년에는 영주(瀛州)라 하여 관찰사(觀察使)를 두었고, 광종(光宗) 2년에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고쳤다가 현종(顯宗) 10년 고부군(古阜郡)으로 회복하였다. 충렬왕(忠烈王) 때에 영광군(靈光郡)에 병합되었는데, 조금 후에 다시 복구하고 본조에서도 이에 따랐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전라도 고부군

 

군명)탐라(耽羅)ㆍ탁라(乇羅)ㆍ탐모라(耽毛羅)ㆍ동영주(東瀛州).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제주목

 

고려의 배신자가 원나라에 보고하길 고려가 다시 제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즉 당시에 고려의 강도혹은 강화도를 원나라에서는 제주라고 불렀다. 제주는 지금의 산둥일대를 말함이다. 공교롭게도 제주를 다른말로 동영주라고 했다고 한다. 녕주의 위치도 알고 그럼 동영주도 알게 되는데 마침 고대에 제주라고 부르던곳이 동영주와 일치하고 있다.즉 조선은 고려가 패구근처 영주와 그 동쪽 동영주를 차지한 것을 숨기려고 한반도 제주도로 지명을 이동시킨 것이다.

 

그런데 고려사지리에는 강남도에 영주와 전주가 등장한다. 즉 영주와 전주는 가깝다는 것이다.게다가 구오대사에 견휜이 개봉근처까지 진격했는데 그러러면 견휜의 수도가 생각보다 개봉에 가까워야 한다. 또한 백제의 옛수도인 위례가 하남즉고대황하의 남쪽이어야 되는데 마침 저곳은 고대의 황하남쪽이다.

왕성이라는 지명이 괜히 생겨난 곳이 아니니 저곳은 옛부터 어느 왕조의 도읍이었던 것이다. 가장 근사치는 바로 백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