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수복을 위한 방법

소오강호 2011. 5. 21. 12:36

이집트의 위대한 왕 람세스2세는 당시 바빌론과 시리아를 정벌한 북방의 신흥 강자 히타이트와 교전하여 이겼다고 기록했다.

워낙 이집트역사에 대단한 왕이었기에 모두들 그 기록을 믿었다. 그런데 터키에서 발견된 히타이트 유적에서 그의 거짓말이 들통났다. 시리아에서 펼쳐진 양국간의 대전투에서  히타이트는 4만7천명의 엄청난 군대와 수천대의 전차를 이끌고 이집트 군을 격파하여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고 수백km나 남쪽으로 진격하여 람세스2세가 결국 히타이트의 왕을 대왕이라 칭하며 자신은 낮추어 사실상 히타이트에 굴종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중국역사에 최고로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와 교전하여 대패했다. 그런데도 중국기록은 포로 수십만에 노획물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고 고구려가 잘못을 뉘우쳐서 그만둔 것이라며  전쟁에서 당나라가 이겼다고 기록했다.그런데 그는 화병으로 죽었다. 유명한 주필산 전투에서는 마치 이세민이 손자와 같은 뛰어난 병법을 발휘하여 고구려군대를 대파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록에 분명히 고구려군이 진영이 무려 30리나 펼쳐져 있는 대군이었으며 당나라 6군 약24만이 고구려에 포위되었고 당나라 주력부대인 이적이 이끄는 흑기부대가 고구려군에 포위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가 이긴 전투였던 것이다.

또한 당나라에서 죽은 고구려 귀족 연남산의 무덤에서 고구려가 서주에까지 진격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즉 우리가 말로만들었던 중국 강소성 서주에서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연개소문의 추격을 피해 달아났던 것이 맞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뒤 당나라기록에는 장안 북쪽의 령주에서 고구려와 접경했다고 적었다. 이런데도 당나라가 이겼다는 중국기록이 옳다고 할 것인가?

 

백제가 대륙의 해안지방을 거의 점령하고 중국왕조들을 위협하여 무릎꿀린 것을 아직도 믿지 않는 이가 많다. 그러나 구오대사에는 회이즉 당시 후백제가 이미 중국내륙 중앙에 있는 호북성까지 진격하고 개봉을 포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거짓으로 패배를 승리로 위장한  그들의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는 국사학계의 바보들 덕분에 아직도 백제는 국사교과서에 충청도와 전라도만 차지한 초미니소국으로 그려져 있다. 그걸 또 사실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어리석은 교사들까지 ...........

 

생각해보라 당나라가 처음 세워졌을때 당나라는 장안일대를 중심으로 한 작은 나라였다. 겨우 900리거리에 있는 낙양은 왕세충이 20만대군으로 장악하고 당나라를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즉 사방5백리가 될정도의 작은 나라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가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에 나온다. 이게 믿기는가? 당나라가 수나라의 영토를 거의 수복한다음에 조공을 바쳤다면 나도 수긍해 줄것이다. 그런데 고구려가 극도로 무시하는 신라(당시에 동서1천리 남북3천리)보다  몇배나 작은 나라한테 왜 굽실거리나?  당나라가 고구려에 예물을 바치고 보호해주십사하고 청하지 않았겠는가 왜 상식적인 논리를 간과하는가?

 

장안에서 고구려식 고분이 중국당국에 발굴되었는데 한반도의 유물이 나와 급히 덮었다는 소문이 있다.  조상이 살던 땅을 지금은 가볼수 없으니 이를 어찌 확인할꼬!!!!!!!!

히타이트의 유적이 진실을 밝혀준 것처럼 우리 역사도 곧 진실이 완벽히 밝혀질 것이다. 아직까지 정신못차리고 엉터리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양반들 그때가서 어떻게 변명할텐가?

목표를 세웠으면 휴대 전화에 콱 박아둬라!!!
항상 건겅과 행운을 기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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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언제나진실은 밝혀지기마련이지요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되찾는 그날까지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