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더불어 2020. 6. 30. 09:05

    사랑을 강조하지만 사랑이 없는 교회에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설문을 통해서 모 종교단체의 이탈자에 대한 대책으로 수용여부를 묻는 질의에 대한

    거부라는 부정적인 답변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탈자는 그곳에 대하여 실망과 염증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들인데

    이들의 향방은 두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부류는 아예 바깥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무신앙자가 되는 가하면

    또 다른 부류는 신앙의 끈을 놓질 못하고서 기성교단으로 배를 갈아타고 자하는 것이다.
    이들은 분명 개과천선을 했거나 하고자 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난파선이고 침몰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리 바다에 뛰어든 자들인데

    그동안 그들은 우리와 노선이 달랐으니까 구출해주어서는 안되고 배에도 태워주면 절대 안된다는 것이

    수용여부를 묻는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수용을 반대하고 거부한다라는 것이 바로 그거 아닌가.

    동안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라고 배워왔지 않는가? 그 사랑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가?
    그들이 과연 내 부모를 죽인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가?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해 줘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원수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을 거부해야 하는가?
    도대체가 그 이유는 뭔가?
    신앙을 갖고 있지 않던 어부들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구출하려고 하는데....
    신앙인이 표류하는 신앙인을 외면하고 구출을 거부한다는 것이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평안하시고
    만사형통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