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과 쟁점은

푸른지붕 2009. 12. 2. 18:27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온 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붉은 악마’가 되기 이전, 우리는 이미 ‘준비된 붉은 악마’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한 세대 전부터 빨간 내복을 입고 ‘붉은 악마’로서의 근성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대체 왜 우리 뇌리에는 내복 하면 가장 먼저 ‘빨간 내복’이 떠오르는 것일까. 대체 왜 내복에는 유독 빨간색이 많았던 걸까. 그건 빨간 내복을 입었던 세대나 ‘오리지널 빨간 내복’을 구경도 못 해본 세대나 마찬가지다. 빨간 내복을 입었던 세대가 추억을 회상한다면, 빨간 내복을 전해들은 세대는 빨간 내복 소재의 개그나 엽기물들을 떠올릴 것이다.

 

 

빨간 내복의 유래에 대해 이거다 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 하지만 ‘설(說)’은 여러 가지다. 마치 지금의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처럼 내복업체들이 내복 판촉을 위해 ‘빨간 내복을 입으면 액을 막고 복이 온다’는 소문을 내 빨간 내복을 유행시켰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설은 ‘염료 가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서구식 내복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당시 여성 내복을 빨간색으로 물들인 것은 빨간 염료가 흔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 염색기술의 한계 때문에 가장 물을 들이기 쉬운 색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빨간 내복이 복을 부른다는 가설도 근거가 없지는 않았는지, 남성들도 빨간 내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빨간 내복은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로 천하통일을 한다. 당시 빨간 내복은 ‘효의 상징’이기도 했다.


 

 

의류업계의 총아였던 빨간 내복은 대중문화의 중요한 코드이기도 하다. 가수 이문세의 14집 음반 제목이 <빨간 내복>이다. 여기서 빨간 내복은 감성 코드로 사용된다.
 

“새빨간 내복을 입고 입 벌리며 잠든 예쁜 아이/ 낡은 양말 깁고 계신 엄마 창밖은 아직도 새하얀 겨울밤/ 한 손엔 누런 월급봉투 한 손엔 따뜻한 풀빵 가득….”
 

남이 입던 낡은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돼 겨울방학 동안 시장골목 안에서 사과궤짝 하나를 놓고 뽑기 장사를 했던 가난한 소녀는 너무 추워 빨간 내복을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희망편지>라는 책에 실린 이해득 씨의 ‘빨간 내복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사연에 담긴 빨간 내복은 추억의 코드다.
 

그러다 아파트 생활과 자가용 이용자가 늘고, 대중교통 등의 난방시설이 좋아지면서 보온성의 보루였던 내복의 위상은 격하되기 시작했다. “내복 입다 들키면 레깅스라고 우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한마디로 ‘간지’가 안 난다는 것이다. 목이나 소매 아래 내복이 드러나 보이기라도 하면 완벽한 패션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이 때문에 내복, 특히 빨간 내복은 패션 트렌드를 거역한 아이콘이 됐다. TV의 코미디와 개그 프로그램에는 ‘내복남’이 뜨고, 인터넷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짤방(짤림방지용 사진)’중에도 빨간 내복을 입은 ‘엽기짤’들이 넘치며 내복은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내복을 입는 것이 우리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공포의 빨간 내복’도 중국에서는 대접이 달라진다. 빨간색을 선호하는 데다, 특히 음력설이 오기 전 새해가 자신의 띠인 사람은 빨간 내복을 장만해 입어야 복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외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에서도 긴 내복을 입는다. 일교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중동 남성들의 겉옷이 대개 흰색이다 보니 이 지역에 수출되는 남성용 내복은 대부분 백색이다. 아프리카 지역 역시 흰색을 선호한다.
 

특이한 것은 중동 지역 수출 내복 대부분이 남성용이란 점이다. 여성용은 사이즈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지 업체들이 여성을 만나기가 어려워 표준 사이즈를 만들지 못한다.
 

‘내복 스펙’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인은 허리는 짧은 반면 엉덩이가 크다. 스페인인은 다리통이 굵다. 백인에 비해 흑인은 상대적으로 다리가 가늘고 길다. 그나마 그 나라 ‘내복 스펙’을 알면 거기에 맞춰 수출하면 되는데, 미국은 다인종 국가라서 내복 수출이 어렵다. 따라서 미국에 수출되는 내복은 주로 교민을 상대로 판매된다.
 

요즘 국내에서는 기능성 내복이 유행이지만 중동 지역에서는 돈은 많은데도 비싼 기능성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번들(묶음)’로 판매되는 면 내복만 찾는다. 그냥 입다 버리기 때문이다. 일단 물값이 비싼 데다, 수질이 나빠 세탁을 하면 금방 변색이 돼 세탁을 잘 하지 않는다. 날씨가 건조하고 땀이 안 나니까 오래 입을 수 있으니 통상 열 번쯤 입고 버린다.

 

 


 

 

우리나라에서 내복을 입은 것은 삼국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주로 면이 사용되는 지금과는 달랐다. 신라나 백제보다 상대적으로 추운 고구려에서는 동물 가죽으로 내복을 만들어 입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부유한 사람이나 양반들은 솜옷을 내의처럼 입었고, 가난한 양반이나 상민들은 구피(狗皮)라고 해서 개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물론 대부분의 궁색한 양민들은 따로 내복이라 할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식 내복이 생산된 것은 1960년대부터로 내복 생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국내 내복업계가 자랑으로 삼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여성 내의류를 포함해 대부분 의류 분야에서 수입품이 명품으로 꼽히고 있지만, 남성 내복만큼은 국산이 1위를 지킨다는 점이다. 품질과 디자인에서 대한민국 남성 내복이 세계적 명품이라는 자부심, 남성이라면 내가 입는 내복이 명품이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 위클리공감/ 글·박경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