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단

섬집아기 2020. 3. 18. 22:04

지금까지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적잖이 타보았지만, 가후쿠가 보기에 여자들의 운전습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거나. 후자가 전자보다--우리는 그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훨씬 많았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여자 운전자는 남자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물론 조심스럽고 신중한 운전에 불만을 제기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런 운전은 때로 주위 운전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지도 무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중 <드라이브 마이 카> 20. 1. 14. 화.

내가 아는 한, 비틀스의 <에스터데이>에 일본어로(그것도 간사이 사투리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그는 목욕할 때면 곧잘 큰 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다.

어제는/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첫 소절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히 오래전 일이라 정말로 그런지는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그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난센스랄까.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고 원래 가사와 비슷한 구석도 전혀 없었다. 귀에 익은 멜랑콜릭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다소 태평한—혹은 ‘비감상적’이라고 해야 할까—간사이 사투리의 울림이 대담할 정도로 유익성이 배제된 기묘한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나는 그걸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고, 뭔가 거기에 감춰진 정보를 읽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어이없어하면서 그 노래를 들었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에스터데이> 20. 1. 14. 화.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작업을 요구 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런 빛을 목도하지 않는, 혹은 목도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축복받은(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도 허다하게 존재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독립기관> 20. 1. 15. 수.

하바라와성교할 때마다 그녀는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천일야화》의 왕비 셰에라자드처럼. 물론 그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하바라는 날이 밝으면 그녀를 참수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다(애초에 그녀가 아침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던 적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하바라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늘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하바라를 위로해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혹은 그 이상으로 그녀는 침대에서—특히 성행위를 끝낸 뒤 둘만의 나른한 시간에—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던 거라고 하바라는 추측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셰에라자드> 20. 1. 15.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