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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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함께

2020. 7. 31.

 7월이 간다.

자동차 동계 타이어를 갈아 끼운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어느새 여름이 가는 것 같아 서운하다.

가을이 성큼 와 버릴 것 만 같아 붙잡고 싶다. 더위가 싫어서 가을을 기다리고 싶지만, 이 곳의 가을은 너무 짧다.

한 박자 모자라게 끝내야 하는 못갖춘마디처럼 가을은 그리 가 버리니, 겨울을 일찍 마중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을이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을 해마다 갖게 된다.

 

여름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들길을 따라 걷고 돌아와, 가관도 아닌  마당을 둘러보았다.

처마 밑, 마늘들이 눈총을 준다. 5월 중순까지 눈을 맞고 있었던 것들이어서 다른 해 보다 일주일이라도 성장 기간을

좀 더 주어야 한다는 깊은 마음을 써 주었건만, 어서 뽑으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그러게 덩굴들이 마늘대를 휘감고 있는 걸 보니 많이 성가셨 겠다"  

"좀 늦은 감 있지만 거추장스러운 것들 오늘 내가 다 제거 해 주마"

 


시간도 부족하고, 허리도 아픈, 이런저런 핑계가 많아 꽃 밭을 줄이고 밀어 깎으면 되는 잔디를 입히기로 했다.

작년 가을부터 처마 아래 화단의 꽃들을 옮겼다. 실상 거센 잡풀에 치여 꽃은 몇 뿌리 안되었고 온통 풀이었던 곳을

정리하고 화단을 갈아엎었다.

잔디 씨를 한 포대 사다 놓고 몽땅 쏟아부어서 풀 씨앗이 내려앉을 틈도 주지 말아야지 했었다.

일주일에 걸쳐 풀 한 포기 없이 매끈하게 정돈을 하고 나니 마음이 다 후련했었다.

 

쇠스랑 자루 끝을 두 손안에 잡고 서서 땀 도 식힐 겸 , 고슬고슬하게 흙이 잘 펴져 있는

결과물을 농부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땅의 체력은 금방 키워지지 않는다. 상토를 섞어 가며 몇 번을 갈아엎어도

식물의 뿌리가 넓게 잘 퍼지며 깊게 뿌리내릴 수 있는 질감 좋은 흙을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퍽퍽하고 뭉쳐졌던 흙이 풀어지고 땅 속 깊숙이 공기가 드나들어 식물이 잘 자라는 건강한 땅이 되려면

일 이년 만에 되지 않는 것이다.

 

12년 동안 꽃 들을 뿌리를 내리게 하고 키워 가면서, 흙은 꿈틀 거리는 끄시랑이들의 도움으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보지 않아도 쇠스랑에 긁히는 흙의 느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 손의 힘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공이 든 밭을 그대로 잔디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었다.

 

마늘을 심었다. 그리고 눈 속에 파 묻혀 겨울을 나고 봄도 지나가는 무렵이 되어 마늘 싹이 쏙 하니 올라왔다.

마늘은 나와 같지 않게 추위를 잘 버틴다. 6월이 되면 속성으로 자라듯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키가 큰다.

 

 

6월 중순경이면 마늘 쫑이 올라오는데 쫑을 잘라 줘야 마늘이 실해진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마늘종은 구불거리지 않고 쭉 뻗어 있는 것이 보기가 좋아 그리 키워 보려 해도 어떻게 그리 키우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마늘은 대가 짤막한 반면 이 곳의 마늘은 키가 1m에 가깝게 키가 크게 자라서 쫑도 길다.

최대한 길게 뽑아 보려고 유튜브에서 알려 주는 바늘 찔러 뽑기를 해 봤지만 그렇게 해 가지고는

마늘종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냥 손으로 똑똑 잘라 내었다.

 

마늘 수확기가 언제쯤 적당한지 물어보면 마늘 대가 누래 지면 적기라 했다.

오늘이 그 날 때쯤 인 것 같았다. 마늘을 칭칭 감고 올라간 풀들이 많아서 뽑아 놓고 보니 마늘인지 풀인지

분간이 안된다. 얼마나 관심 안 주었는지 알만 하다.

사실 마늘은 내 손길을 그다지 기다리지 않고 잘 자란다.

 

싹이 올라오는 봄에 보릿대로 두둑이 고랑 사이에 깔아 주면 잡풀 방지도 되고 습기 간수가 잘 된다고 한다. 몇 년을 그리 했었다. 유기농 보릿대 구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봄에 한 차례 풀을 미어주고 그대로 두었더니 저 지경이 되었다. 그늘을 따라 옮겨 다니며  오디오 북을 켜 놓고 쉬엄쉬엄  다듬었다.

 

말끔해진 마늘들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 와서는 숫자 놀이를 했다. 215개다. 잡초의 영향인지 마늘 굵기가 다른 해보다 잘았다. 아들과 동생들에게 보낼 것들을 다발로 묶어 놓고 한 다발은 벽에 걸었다.

자잘하게 남은 것들은 내년 봄까지 먹으면 될 것 같다.

 

마늘장아찌도 담을 것과 가을에 파종할 씨앗이 없다. 친구에게도 보내고 싶었는데 여분이 되지를 않아 아쉽다. 올해 씨앗을 좀 더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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