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옥수수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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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일

2020. 8. 25.

옥수수수염이 햇볕에 꼬실꼬실 숯검댕이가 되었다. 알갱이가 제대로 여물었다는 옥수수의 언어다. 이 맘 때는 벌판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옥수수를 좋아하는 나는 행복하다.  옥수수 알갱이 숫자보다 많은 옥수수에 얽힌 이야기가 있고, 아직도 식지 않는 옥수수 사랑에 추억 하나를 꺼내 본다.

 


 

캐나다로 이주해 온 처음 시기에는 무엇을 먹어도 허기가 느껴졌다.  익숙한 먹거리에서 서양 야채가 거부감 없이 받아 드려 질 때까지 한 3년은 그랬다. 달구지 끄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삼시를 꼬박 김치와 밥을 먹고 난 후에도 뱃속의 허함은 가시지를 않았다.  나물이 빠지고 국물이 없는 메뉴로는 포만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 같다. 과일들은 어찌 그리 맛이 없는지 간식으로 먹을 만했던 것도 별로 없었다.  이런 때 옥수수가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옥수수가 눈에 들어온 것은 캐나다 살이 시작의 두 번째 여름이 되어서다. 갓 따내어, 푸른 껍질 채로 가판대 위에 쌓여 있는, 싱싱한 옥수수를 보는 순간, 엄마와 눈을 마주쳐가며 반가워했다. 

한 접쯤 사지 않았을까? 그 쯤 산 것 같다.  그만 사라고 자주 말리시던 엄마이신데도, 어쩐 일로 아무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짐작한다. 오랜만에 옥수수로 배 한 번 두드려 보자는.

 

엄마는 감으로 익었을 때를 알아내시는 옥수수 삶기는 예사 일이었다. 삶아진 옥수수를 한 채반 꺼내 놓으셨다. 옥수수의 맛이 어떤지 몰라도, 일단 크기와 여물기로는 옥수수의 황제 격이었다. 

우리가 먹어왔던 옥수수와 다른 품종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와 나는,  여랑 옥수수의 찰진 맛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만, 맛을 보기 전까지는 옥수수가 옥수수려니 했었다. 

 

"옥수수 알맹이가 빠지지도 않고 뭐 이러니?"

당신이 오랜만에 많은 양을 삶으셔서 옥수수를 잘못 삶아내셨다고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옥수수 하나도 제대로 키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리셔서 웃었다. 그도 그런 것이 매번 삶을 때마다 같은 맛이니, 엄마 실수가 아닌 것은 확실했기에, 품종이 다른 것은 생각 않고, 토질이 달라 그렇다는 생각만 했다.

 

우리나라 옥수수만 못 하네 어쩌네 해도,  옥수수 한 번씩 찌면  찜통 한 가득씩 삶았다. 한 번에 다 먹지 않아도 남으면 남는 대로 하루 종일 언제가 되었던, 식은 옥수수도 마다하지 않고 먹으며 만족해했다.

푸짐한 옥수수 덕에  허기지다는 생각도 사라졌고, 이 곳 식생활에 적응되는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옥수수가 한 창이라며 친구가 옥수수를 사 왔다. 이 날 친구는 나 때문에 몇 번을 당황해했는지 모른다.

캐나디안들은 옥수수를  본 음식 먹기 전 애피타이저, 또는 육류가 주식일 때 탄수화물 보충을 위해 먹는다는 것을 몰라 겪었던 여담이다. 이 곳 사람들이 식사 때 옥수수 한 개 또는 두 개 정도를 먹는 것을 누가 알았나. 

 

접 단위로 옥수수를 살 때도 많았고, 한 번 찌면 대 식구 기준으로 삶았던 나였다. 친구가 들고 온  옥수수 12개는 누구 코에 붙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옥수수 5개를 껍질을 벗기고 6개째 집어 들려고 할 때, 친구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 너 몇 개 먹을 건데? 설마 4개를 먹을 건 아니지?" 

 

사실은 12개를 다 찔 생각이었다. 친구의 놀라는 표정을 보며  남으면 내가 먹을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식은 옥수수를 먹는다고?" 친구가 놀라 묻는 말을 웃음으로 일갈했다. 

친구의 당황함을 별일 다 보네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냄비 뚜껑이 수증기를 품고 난리를 쳤다. 친구는 번개 같이 달려와 냄비를 반짝 들어냈다.  뜨거운 냄비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Oh My Gosh".

 


 

엄마와 함께 삶은 옥수수는 식으면서 별나게도 쭈글 거렸다. 이름은 "sweet corn"인데 단 맛도 별로 없었다. 물이 뜨거워지고, 냄비 뚜껑이 김으로 폴싹 폴싹 거리기 시작하면 이내 옥수수를 꺼내야 했었다. 

살짝 김만 쏘인 옥수수는 베어 물면 단물 주머니인 알갱이가 톡톡 터지고, 씹을 때는 아삭아삭 소리가 나야 잘 쪄진 이 곳의 옥수수였다. 

그런 것을 우리는 찰 옥수수 삶듯이 삼사십 분을 뼈를 고아 내듯 팔팔 끓이고 뜸 들이고 하였으니, 옥수수의 알맹이 속 당분이 다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옥수수를 우리는 먹은 셈이었다. 

 

우리가 한 번에 쪄 놓고 식은 것을 오며 가며 먹는 간식을, 이 곳 사람들은 뜨거운 옥수수에 버터를 발라 먹는다. 식은 것은 절대 먹지 않는, 주식이라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 마음을 풀어놓고 이해를 했다.

 'sweet corn'만 사람이 먹는 것이고, 저 벌판에 심어진 옥수수들은 가축 용인  'field corn' 이란다. 친구는 'cow corn'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것으로 사료용임을 강조하고, 찰 옥수수 타령하는 내 이해를 도왔다.

 

친구가 당황했던 그 날 저녁 이후, 나도 이 곳 사람들처럼 옥수수를 제대로 쪄낼 줄 안다.  'sweet corn'을 주식으로 먹는 현지인보다 더욱더, 알갱이가 통통하게, 단 맛이 살아 있도록 말이다. 

이 맛있고 껍질도 씹히지 않는 단 옥수수 맛보시면 엄마도 좋아하실 텐데, 한 들통 쪄 놓고, 엄마와 마주 앉아 눈 맞추고 싶다.

 

                                                

 

이  친구는 옥수수 철만 되면 아직도 식은 옥수수 먹는 나를 놀린다. 옥수수를 키워 먹겠다고 모종을 내고 있을 때도 놀렸다. 옥수수는 아무도 모종으로 심지 않는다고, 옥수수 알갱이를 그냥 땅에 심는 거라면서 말이다.

모종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굳이 모판을 만드는 수고하지 말라는 뜻인 줄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종으로 심는다는 말을 듣고 시도해 보았다.  

 

처마 밑에서 옥수수 키가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옥수수 먹을 기대 하지 말던지. 펜스를 하던지 해야 한다며 초를 치고  또 놀렸다. 너구리는 나 보다 옥수수를 더 좋아해서 결코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였다.

실지로 이웃 농가 경작지에서 심심치 않게 너구리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옥수수가 오늘까지 멀쩡 하게 달려 있는 것은 어찌 생각하니?" 내가 운이 좋은 거란다. 

나는 오늘도 옥수수를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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