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상여를 바칩니다.

댓글 0

흙과 함께

2020. 9. 7.

야심작으로 모종을 내어 심었던 옥수수를 다 땄다. 껍질 벗은 옥수수는 보기에 참 알량하다.

 

올봄은 "집에 머물라"는 정부 방침으로 마켓 외출도 수월 하지 않았다. 채소 씨앗 준비를 여느 해보다 의도 있게 준비했다. 채마밭에서의 소출로 자급자족을 하는 것은 물론, 푸드뱅크에 나눔 하려는 생각으로 모종을 내는 것에 신경을 썼었다. 결과적으로 나눔 하겠다는 목표는 생각으로 끝나고 만 작황이 되었으나, 스스로는 필요한 만큼 충당은 되었다. 마켓 가는 횟수도 확 줄었다.

 

세 종류의 상추 씨앗 중, 한 가지 씨앗만 싹이 났고, 옥수수 귀신인 너구리도 건드리지 않은 볼품없이 자란 옥수수, 채 크지도 않고 익어 껍질 질긴 토마토,  대 여섯 종류의 씨앗을 들이붓듯이 심은 '스쿼시(squash)' 종류는 박스로 푸드뱅크에 실어다 줄 줄 알았는데,  잎과 꽃만 무성하고 호박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바람이 어느새 차가워졌다. 오늘 아침에는 난방기마저 돌아갔다. 더 추워지기 전에 텃밭을 정리해야 내년 봄이 수월 하다. 뿌리가 깊게 내려 뽑히지 않아 힘을 써야 했던 옥수수 대부터 정리했다. 장소 가리지 않고 피어 잡초 취급받았던 야생화 무더기도 뽑아 수레에 던져 넣었다. 졸지에 꽃수레가 되었다.

 

거름더미에 버리고 얼른 손 털고 싶어 빠르게 수레를 밀었다. 마구잡이로 뽑혀 옥수수 위에 놓인 꽃들이 건들건들 거리며, 내 눈길을 붙잡고 수레 미는 일을 잠시 멈추게 했다.

계단에 앉아 토마토 한 알을 바지에 문질러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며 꽃수레를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한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만경 들판 한 귀퉁이에 작은 마을이 섬처럼 있었다. 그 동리는 20여 가구가 사는 곳이고, 외 삼촌 두 분이 사시는 마을이었다. 막내 외삼촌 댁, 뒤 울에 있던 포도나무는 더글더글 청포도를 매달고 있었다.

"포도가 익지도 않았는데... 썩을 것들.."  외숙모가 우리를 향해  경치는 소리였다.

 

외숙모의 야단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촌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요량 소리가 울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울타리 밖으로 뛰어 나갔다. 상여가 나가는 날이었다.

우리들은 죽음의 의미를 깊게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다. 망자를 귀신과 함께 연상을 하였으니 무서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밭 하나 사이를 두고 우리는 상여 행렬을 구경했다.

 

들녘의 벼이삭은 이미 패여 꽉 찬 낟알이 무겁게 처지며 익어 가는 중이었다.  그 들판 사이로 구불 거리는 논 길을 따라 상여 행렬이 길게 늘어서 움직이는 듯 마는 듯했다. 오색 만장(輓章) 바람에 펄럭였다. 

상여는 알록달록 종이꽃으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꽃 상여라고 불렀다.

 

꽃 상여를 뒤 따르는 굴건제복을 입은 가족, 친지들의 곡 소리는, 천지지간이 눈물에 젖도록 애 달고 슬펐다.

상여 잡이와 상여꾼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읊던 북 망가는, 구경하는 우리도 마른눈으로 들을 수 없는 구슬픈 가락이었다. 망자의 멀고도 먼 저승길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슬퍼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덩달아 눈물 나는 것처럼 우리도 같은 이치의 슬픔이었다.

 

발인 곡인 상여 소리는 그때의 나이로는 알아듣지 못했으며,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 들의 노래였다. '땡그랑 땡글렁' 상여 잡이의 요령 소리를 더욱 구슬프게 했던 상여꾼들의 목청 돋운 가락이,  죽음이란  슬픈 작별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동리 어른들이 상례를 다하여 마지막 망자에게 예를 다 하는 3일 동안은, 손에서 호미자루를 놓고, 논 일 , 밭 일도 쉬었다. 꽃 상여가 마을 야산으로 떠나는 날까지  초상집 마당에는, 동리 아낙네들이 돌아가며 부쳐내는 지지미 기름 냄새로 마을이 절었다.  흙 강아지가 되어 놀던 우리들은 꽃 상여 떠날 때의 눈물도 잊고, 평일과는 다르게 배 불리  먹고, 음식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서울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학교에 갔다. 그 해였을까? 그다음 해였을까?

'가정의례준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과 어겼을 때의  벌칙 규정을 알려 주는 교육이 있었다.

허례허식을 없애 낭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관혼상제'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     누구나 '관혼상제'를 순서대로 거쳐야 하고, 일생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이  4가지 예법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일이다. 성인이 되어  '례'를 치르고, 혼기가 되어 '례'를 치른다.

이 두 예 법은 부모님께 받은 은혜이다.  부모님께 받은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는 법이다.

생을 달리 하신 부모님을 위한 '례'로  최대의 예를 다 해야 한다. '례'를 통해 부모님을 기리고 나를 있게 한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   

 

대충 기억나는 선생님의 '관혼상제' 설명이었다. 간소화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긴 설명이 있었다. 그 긴 골자를 한마디로 줄이면 '근검절약'이었다. 교실에 걸리던 급훈도 근검절약으로 바꿔 써 붙였다.

 


 

 몇 년이 지나 외삼촌댁에 내려갔다. 나도 사춘기를 지나고 사촌들은 외삼촌 만하게 커버려서 그랬을까?

마을 곳곳이 나를 폭 안아 줄듯 반기던 느낌은 사라지고, 깨끗하고 반듯하게 정리된 마을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네 집 내 집, 마당 경계 없이 우리가 퍼질러 놀던 곳에 담이 생겼고, 집집마다 대문이 달렸다. 지붕 개량을 하면 주었던 정부 보조금 덕분에 바뀐, 처음 와 보는 마을처럼 생경했다.

 

가정의례준칙이 작은 동리 마을들이라고 비껴가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동리 남자들 모두 상여꾼이 되어야 하는 꽃상여 운구는 자동차가 대신하여 신속하게 끝이 난다고 했다.

망자를 조금이라도 늦게 떠나보내기 위한 긴 작별을 하지 않고, 간소화된 장례식을 하여 예전처럼, 동리 전체가 들썩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의 정서가 담긴 장례 풍습이 사라져 가고 있음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같아선 이런 생각마저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약도 없으니 지구의 주인이 된 듯 설치는 바이러스 때문에, 감염이라는 공포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예도 갖추지 못하고 황망히 떠나보내야 하니 말이다.  한 구덩이에 무수한 귀한 생명을 무더기 매장하는 장면은, 아무런 연고 없는 먼 이웃 나라에서의  일이 어도  마음이 무겁고 할 말을 잃게 한다.

 

3일 만이라도 아파하며 작별하는 장례는 아니어도,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과 따듯한 고별을 하는 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을까.

 

내 곁을 떠난 가족 또는 인연이 있으신, 아프고 또 아프신 가족 여러분들께, 깊이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작별의 정도 못 나누고, 갑작스레 이승과 이별하신  모든 고인분들께는, 가장 아름다운  '꽃 상여'를 바칩니다.

 


                                                      상여 소리

 

일가친척 친구님네 이내 말 좀 들어보소/ 오늘 내게 당해보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황천길은 몇 만린가 집 떠나서 어딜 가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돌아올 날 일러주어/ 다시 못 올 황천길로 동무 없이 떠나가니/ 청춘 홍안백발노인 불쌍하다 이내 일신/ 어릴 적엔 철없어서 부모 은공 몰라보고/ 자식 낳고 살다 보니 부모 은공 또 잊었네/ 어이없고 애달프다 애달프고도 설운지고/ 인간 백 년 다 살아도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허송세월 절통하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너는 다시 피건마는/ 명년 삼월 봄이온들 이내 일신 다시 올까/ 슬프구나 인생 하직 눈물 가려 못 가겠네/ 황천길은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 왜 모르나/ 북망이라 먼 먼길에 노자돈을 얹어주오/ 일직 사자 손을 끌고 월직 사자 등을 밀어/ 풍우같이 재촉하여야 천방지방 몰아갈 제/ 높은 데는 낮아지고 낮은 데는 높아진다/ 친구 벗님 많다 해도 어느 누가 동행하며/ 일가친척 많다 해도 어느 일가 대신 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대로 갈 뿐이네/ 낯도 설고 물도 설은 북망산에 홀로 남아/ 서산 너머 낙조 지고 뗏장 이불 차가워라/ 동지섣달 호의호식 모두 놓고 떠날 인생/ 형제간에 우애 있게 콩 한쪽도 나누시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 간에 인사하게/ 잘들 사오 잘들 사오 부귀공명 수명장수/ 복사꽃에 꽃피는 내 고향 땅 일가친척/ 가는 나는 가거니와 고향산천 정자나무/ 재난 없고 우환 없이 모두 모두 잘 사시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사진 :   http://www.indica.or.kr/xe/free_gallery2/3487540 , 부산 꽃쟁이님 작품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흙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상여를 바칩니다.  (0) 2020.09.07
첫 수확  (0) 2020.07.31
기다림  (29) 2020.04.06
기가 막히게 좋은 날  (27) 2019.06.15
그만 하자 하면서 또 만들고 있네....  (30) 2019.06.09
마늘 심기 끝나면 기다리는 일...  (25) 2013.10.18
너를 꽃 수레에 태워...  (7) 2013.08.25
마늘다발 벽에 걸고..  (9) 2013.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