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괜히 냈나 했지만

댓글 0

그 곳에 가면

2020. 9. 19.

귓속에 딱따구리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쪼아댔다. 몇 년에 한 번 정도 앓는 몸살의 징후다.  엄살기 섞은 신음으로 새벽을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누구를 만났으며 어느 장소에 다녀왔는지 동선을 그려보다 아침에서야 잠이 들었다. 늦잠에서 깨어 나니 귓속 딱따구리는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앓는 소리를 몸으로부터 내 보낸 것이  효과적인 단방약이 된 것 같다. 다음엔 마음도 아프면 참지 말고, 이렇게 소리 내어 알아주고 보듬어 주어야겠다.

 

한 달 전 신청한 일주일 휴가는 추워진 날씨 탓으로 일정이 어그러졌다. 휴가일 사용을 취소할까 하다 말았던 것을 후회하던 차에 딱따구리가 찾아온 일은, 내 삶의 습관을 파노라마로 기억하고 있는 몸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을 하니 내 몸과  소통의 방법을 찾은 것 같고, 단절됐던 내 몸과 정신의 네트워크가 연결된 것 같다.

 

앞 뒤로 주말을 합치니 휴가일이 하루 모자라는 열흘이다.

하루가 지나려는데, 휴가를 괜히 낸 것 같고 아까웠다. 휴가를 쓰지 않으면 누적이 되고, 한국 갈 때 넉넉한 시간이 될 텐데 하며 입 꼬리를 쌜쭉 하고 비틀어 올렸다. 순간 입 술이 아팠다. 손으로 더듬어 쓸어 보았더니 입술이 터졌는지 진물이 말라 붙어 있었다. "휴가 취소하지 않아 다행이네.. 잘했네.."  변덕이 이 곳 날씨 같다.

" 코로나 시절 끝나면 한국으로 날아갈 테다 "

괜히 한국 가고 싶은데 못 가니 불평 섞인 소리 한번 질러 보았다.( 속으로만...)

 

한국 가는 날은 오기는 할까? 오겠지. 올 거야. 주문을 왼다.

 '코로나 -19'는 종식이 되어도 지금의 생활 방침은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스크와 서로 간의 거리, 공공장소에서 줄 서기, 세정제 필수 등등. 그래도 좋으니 국경만큼은 자유롭게 넘나 들었으면 좋겠다. 부디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끝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있다.

 

이런 투정 부릴 시간도 잠시, 뒹굴 거리며 보내야지 했던 시간도 생각으로 끝이 났다. 아픈 친구가 치료하러 먼 길 간다는데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웠다.  4시간 장거리 운전도 괜찮고, 치료 기간인 4박 5일을 클리닉이 있는 도시에 머물러야 하는 것도 괜찮다.  도시 운전이 익숙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16차선 하이웨이를 2시간에 걸쳐 지나가야 하는 일이 떠나지도 않아서 마음을 졸아 들게 했다.

그래도 한쪽 눈의 이상으로 거리 감각이 없는 친구를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떠나기로 한다.

우리 세대의 우정은 의리가 기본이니까.

 

코로나로 다운타운 거리는 한산 했다. 날씨도 좋은데, 야외 음악당도 노숙자 몇 명만 있을 뿐 텅 비어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카누를 떠나야 하는지"라는 뜻의  도시 'Oshawa'에 와 있다. 다운타운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이 되었건, 볼 일이 목적이건, 도시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다.  캐나다의 어느 도시를 가 보아도 상가 거리는 와 본 듯한, 같은 느낌의 분위기다.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색다른 점이 없다.

슈퍼마켓, 약국, 신발 가게, 옷 가게 등등, 개인이 하는 가게 외에는 모두 같은 이름의 상점이기 때문이다. 개성 없는 다운타운을 벗어나 뒷골목을 걸었다.

 

토론토에서 차로 한두 시간 정도 벗어난 도시들을 가 보면 동네 안에 성냥갑 집을 연상하게 하는, 크기가 비슷한 작은 집들이 블록을 이루고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이 곳 사람들은 그 집들을 일컬어 'Wartime House'라고 부른다. '

Wartime House'를 보면, 지금 새로 짓는 집들의 차고 전면 넓이보다 좁아 보이는 단층, 또는 1.5층 집이다. '오샤와(Oshawa)'는 다른 도시보다 이런 작은 집이 많아 보였다. 몇 블록이 아닌 동네 전체를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Wartime House'는 캐나다 전역에 아직도 백만 가구가 있다. 이 집들은 1941년부터 1947년 사이에 캐나다 연방 정부가 평면도를 제공하여 지어진 집이다.  이 집들은 전쟁 산업에 관련해 종사하는 근로자와 퇴역 군인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오샤와’에  수천 명 일자리를 제공했던 GM(제너럴 모터스)의 본사와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로 이 도시의 분위기와 유달리 '전시 집'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M의 자동차 산업은 전성기였다.  높은 임금은 타 지역의 근로자 수천 명을 이 도시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제너럴 모터스'의 고용창출이 이 도시를  빠르게  확장 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근로자들의 생활수준도 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2018년 '제너럴 모터스'는 문을 닫았다. '전시 집' 들 만은 그대로 남아 도시의 지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집집마다 마당에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은 거목이 되어 고개를 뒤로 꺾고 올려다 보아도 가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손가락으로 접어 볼 수 있는 세월이 아님을 지적해 주는 위엄이 느껴진다.

 

 

친구 아들 집에서 나흘간 머무는 동안 도시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리는 매일 다른 몰(mall)로 장을 보러 갔다. 지나는 도로마다 큰 건물 , 현대식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푸른 잔디와 꽃으로 가꾸어진 각기 다른 마당,  외관 모양은 각 집마다 다르지만 크기가 비슷한 집들이 나란히 도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 나의 시선을 자꾸 끌어당겼다.

100년이 지나가는 동안 몇 번의 주인이 바뀌었을까. 고치고 단정하게 가꿔 가며 한 식구들을 품고 있는 새 둥지 같은 집들이다.

 

2차 대전에 참가했던 20년대에 출생한 젊은이들은 현재 100세를 바라본다. 그들의 부모님은, 나폴레옹의 서사시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를 타고,  전쟁영웅을 꿈꾸며 ‘세계 1차 대전'에 자원병이 넘쳤던 세대다.

그 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는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을 끝내고 돌아와 이 작은 집에 살았다면 결코 성냥갑 같은 집이 아닌 왕국이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것 같다.

 

친구를 클리닉에 내려 주고 치료받는 2시간 동안 나는 매일 다른 길을 걸었다. 작은 집들을 발견하면 제국의 영화가 아닌 오직 한 가지 염원으로 평화만을 원하며 돌아왔을 상병자와 유가족들을 생각했다.

저 작은 집에서 피 비린내가 아닌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포성이 아닌 식구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을,  거대하게 우뚝 솟은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절절 매고 있는 지구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저 나무들은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어 할까.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