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2020년 07월

31

흙과 함께 첫 수확

7월이 간다. 자동차 동계 타이어를 갈아 끼운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어느새 여름이 가는 것 같아 서운하다. 가을이 성큼 와 버릴 것 만 같아 붙잡고 싶다. 더위가 싫어서 가을을 기다리고 싶지만, 이 곳의 가을은 너무 짧다. 한 박자 모자라게 끝내야 하는 못갖춘마디처럼 가을은 그리 가 버리니, 겨울을 일찍 마중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을이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을 해마다 갖게 된다. 여름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들길을 따라 걷고 돌아와, 가관도 아닌 마당을 둘러보았다. 처마 밑, 마늘들이 눈총을 준다. 5월 중순까지 눈을 맞고 있었던 것들이어서 다른 해 보다 일주일이라도 성장 기간을 좀 더 주어야 한다는 깊은 마음을 써 주었건만, 어서 뽑으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그러게 덩굴들..

댓글 흙과 함께 2020. 7. 31.

24 2020년 07월

24

그 곳에 가면 비키니~~~사랑

시외버스 대합실 같은 자메이카 '몬테고 베이(Montego Bay)' 공항이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라고 만반의 더위를 준비하고 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항 대합실의 열기는 대단했다. 겨우 비행기 한 대가 부려 놓은 여행객들 이건만, 해안성 열대기후와 여행객들의 체온이 녹아든, 끈끈한 공기가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훅 하고 끼어들어 휘감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을 찾아 줄에서 이탈하는 사람들도 있고, 겨울 옷 속에 여름옷을 입고 온 지혜로운 사람들은 해변의 차림만 남기고 그 자리에서 훌렁훌렁 벗었다. 리을리을에 리을리을로, 리을리를 구불거리는 입국 심사 대기 줄은 좀처럼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웃옷을 벗어 허리에 질끈 동여 메고, 긴 머리를 똬리 틀어 머리꼭지에 올려붙이고 나니 ..

13 2020년 07월

13

이런 저런 일 유채꽃 같은 카놀라 벌판에 서서

카놀라 꽃이 피어 샛 노란 벌판을 반가운 마음으로 한참 구경을 했다. 우리 동네 주변에서 당분간 볼 수 없는 경치라 생각했기에 뜻밖이었다. 마트 가던 일도 잊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오래서 있었다. 이 풍경 그림은 나도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엇 갈려 네모를 만들고 경치를 담아 보는 화가 흉내도 내 보았다. 캔버스에 초록색을 톡톡 찍어 바르고 노랑 물감을 들이부으면 이 경치가 되겠다는 이 엉뚱한 생각은 화가들을 화나게 할지도 모르겠다. 유채꽃의 개량 품종인 카놀라는 꽃보다 ' 카놀라 오일'로 더 친숙하지만 유채꽃 피는 우리나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잠시 제주도 어딘가에 서있는 듯한 착각이 좋다. 카놀라 가격이 작년 한 해,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는데 이 필드의..

04 2020년 07월

04

꽃 들의 속삭임 잔디 좀 짧게 깎아 주지 않는다고 ...

우리 엄마는 잔디밭에 주로 많이 자라는 민들레를 뽑지 않고는 못 견뎌하셨다. 어느 날은 모종삽을 들고나가시는 모습이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는데 별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다니시던 성당 앞 잔디밭에 봐 두었던 민들레가 걸리셨는지 가셔서는 몽땅 뽑아내고 더위에 익은 얼굴로 돌아오셨다. 좋아서 하시는 일이니 하는 생각으로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 성당 교우이기도 하고 성당 조경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성당에 속해 있다는 엄마의 애정을 담아 잔디밭의 잡풀인 민들레를 뽑으신 일을 이야기하러 온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기는 하나 우리는 약으로 잡풀을 관리하니 엄마에게 당부의 말을 좀 전해 달라고 하고는 갔다. 민들레를 솎아 내고 나면 오히려 잔디가 깔끔할 텐데 뽑지..

01 2020년 07월

01

꽃 들의 속삭임 작약이 지고 있다. 함박이 졌다.

멍울속에 꽁꽁 숨은 꽃잎이 켜마다 실핏줄 드러나듯 한다. 생살 찢끼우는 신음으로 벌어지는 꽃 몽오리 곁에서 해산 간호하듯이 지키고 앉아있는 나도 함께 아파했다. 꽃잎 가장자리마다 선명하게 남겨진 톱니같은 이빨자국 이를 앙 물고 참아낸 진통, 끝내는 황홀함을 피워냈다. 백설 같이 희디 희게 또 핏빛처럼 아픈 선홍의 빛으로 한 껏 바쳐든 긴 가녀린 목에 올라 앉은 다보록한 함박 너의 얼굴 샅샅이 훑어가며 아침을 씻기워 주는 개미들 켜켜이 유혹하는 기품속에서의 공생은 품고 품은 삶이다. 소나기 처럼 와그르 단 번에 쏟아버린 화옆 무더기 사무치게한다. 강렬했던 매혹, 짧았던 만남의 순간이 사그라드는 허망스러움 우아했던 삶의 흔적으로 남은 꽃꼭지 톡 따내어 뿌리 곁에 뭍으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