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09. 11. 7. 01:37

  여름을 지냈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쨍쨍한 햇볕보다는 습도와 싸워야 했다.

높은 습도 때문에 유난히 채소나 과일들이 빨리 썩어갔다.

삭히는 것과 썩어 가는 것은 비슷한 현상이지만 참으로 다른 결과를 만든다.

서서히 알맞게 삭힌 것들은 우리 몸을 이롭게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 썩은 음식물들은 고스란히 버려야 될 것들이었다.

 

 삭힘과 썩음의 그 아스라한 곡예 때문에 여름은 긴장의 연속이다.

삶의 시간들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사색하기 보다는 몸이 부지런해야 했던 시간들.

여름의 우기를 지났으니 이제 정신의 신선함을 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습기가 거두어져 가슬가슬한 무명천을 탄탄한 수틀에 당기어 놓는다.

 

 동짓날 긴 밤의 시간도 수를 놓기에 좋지만, 가을의 서늘한 저녁 시간도 수를 놓기에 좋아라.

톡! 하고 바늘이 단단히 당겨진 무명천의 촘촘한 바닥을 뚫고 지나는 순간,

가을 하늘처럼 쨍한 한줄기 맑은 기운이 전신에 감돈다.

팽팽하게 당겨진 수틀의 긴장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바늘을 타고 여름을 지난 보랏빛 도라지꽃이

홍화로 염색한 붉은 무명천 위에 피었다.

 

 한 쌍의 나비처럼 자유롭게 서로 사랑하기를 원했다.

여름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수(壽)와 복(福)도 잊지 않고 담았으나 아직 부족하다.

가장자리에 처음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아자문(亞子紋)을 오색으로 둘러

영원히 이 모든 것들이 머물러 있길 기원 했다.

베갯속을 싸는 천은 쪽으로 염색한 무명천으로 감싸 땀과 벌레로부터 보호하였다.

이제 가을 국화꽃으로 속을 채워 님의 머리맡에 고이고 달빛에 젖은 청아한 귀뚜라미 소리 청해보리라.

  

 

복자문(福子紋) 원형베갯모 福子紋) 원형베갯모 복자문(福子紋) 원형베갯모

                                                                  복자문(福字紋) 원형베갯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