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님의 뜨락

동사모 2009. 11. 7. 01:44

 어둠 사이로 간간이 가을비가 내렸다.

젖은 날씨 때문에 일찍 저녁을 먹고 모였나 보다.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작은 창호 문에는

비단실을 풀어놓은 소녀들의 모습이 달 속에 있는 토끼처럼 떠오른다.

 

 새로 바른 창호 문의 국화꽃잎은 들뜬 소녀들의 마음처럼 아직 채 물기도 가시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던 자수는

1970년대를 전후로 순창지역을 중심으로 지역특성화 산업으로 육성된다.

정부는 농촌지역 청소년들이 무작정 도시로 상경하는 것을 막고,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수 본을 표준화하고 실 염색법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희(囍)자 문을 수놓은 이러한 베갯모는 그 시기에 다량으로 제작된 유형이었다.

베갯모의 희(囍)자는 19세기 이후 한국의 유물에 가장 많이 사용된 문자인

수(壽)․복(福)․희(囍)가운데 하나이다.

이 가운데 쌍희(囍)자 문은 음양화합의 의미로 즐겨 사용되었다.

이 세 글자를 합하면 ‘가득’ ‘많이’의 의미로 사용하는 ‘수북하게’ ‘수북이’ 의 어원이 된다.

 

 자수바탕의 붉은색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순창 지방에서 구전되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남색 바탕을 사용하면

부부가 서로 남남이 된다고 하여 베갯모 자수바탕에 남색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웃어넘기다가 문득 명치끝이 아릿해 왔다.

작은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마음을 다하여 염려하던, 애틋한 마음쓰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삶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고귀함과 경건함이다.

작고 작은 공간에서 만나는 온축된 사유의 흔적들,

그 흔적들을 찾고 또 우린 어떤 흔적들을 남기고 가는 걸까?

 

 

                                 

                                                    쌍희(囍)자 문 자수베갯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