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명문가 스토리가문> 故 서윤택장군부터 이어진 '서정'가문의 조국 수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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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 충성/병역명문가

2017. 9. 28.

병역 1서 윤택 장군

 

'서 정'가문의 병역 스토리는 병역 1대의 故 '서 윤택' 장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역 1대의 故 '서 윤택' 장군은 48년 서울대 문리대 졸업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육사 7기 후반으로 수료 후 육군 중위로 임관하였습니다. 1949년 1월 공병학교 군수처장으로 근무하셨으며, 1950년 1월부터 육군 보병 제2사단 공병대대장으로 근무 중 6,25를 맞았습니다.




또한 병역 1대의 故 '서 윤택' 장군은 6,25동란중 전시에 시급한 공병간부 및 장교의 육성을 위하여 509월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에 위치한 고산초등학교(, 대구고산초등학교)에서 301 공병교육대를 창설하셨습니다. 교육대장으로서 513월까지 전시에 화급한 전투공병의 양성에 힘쓰셨으며 인근주민과의 유대강화에 남다른 노력을 하시어 고산초등학교 산등성이에 아직도 그 기념 공덕비가 남아있습니다.




513월부터는 경남김해로 이전하여 재편된 공병학교의 제 3대 교장(중령)으로 취임하시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이 요구되던 전시 전투 및 건설공병인력의 양성과 충원에 힘쓰셨습니다. 6,25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523월부터 534월까지 최전방 동부전선 속초의 1101야전공병 단장(중령)으로 전시공병을 지휘하셨으며 이후 미국의 육군공병학교에서 고등군사반을 수료하셨습니다.




5312월부터 578월까지 5년간 제5대 공병학교장을 역임하시면서 전후 대한민국 공병의 초석을 다지며 교육장병들과 신병훈련병들의 급식과 주거의 해결, 다양한 실습교육과 교재의 제작등 오늘날 육군공병의 기반을 다진 정예공병과 인재육성의 공덕자로 군문의 후배들이 모두 인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공사가 분명하며 간결한 언행으로 모든 것을 직접 몸소 행하시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시는 강직한 성품으로 말보다는 직접 실천하고 행하는 지휘관의 전형이라 하실 만한 모습으로 부하들의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셨습니다.



특히 전후 부족한 국고의 한계로 인해 국고의 지원 없이 김해 공병학교의 자체 인력과 기술력만으로 공병학교 장병 6천명이 수용 가능한 부대숙소를 자체 건설하였으며, 120만평 광활한 부지에 경비행장, 교육장 및 각 전투병과를 목적별로 지원할 수 있는 교육장 등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육군공병학교의 교재를 참고로 하여 한국 현실에 맞는 전투공병 교재를 완비하여 군 전력강화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또한 전후 공병학교의 역할은 미 군사민간지원에 의한 사업들도 활발히 수행하여 김해보건후생병원의 건립, 김해여자고등학교 건립 및 각 면 단위의 초등학교를 신, 개축 해 줌으로서 군의 지역사회 지원과 봉사에 앞장 섬으로서 지역사회와 주민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감사가 따랐습니다. 582월 육군준장으로 진급하여 605월까지 육군공병차감으로 근무하셨으며, 6010월부터 6310월까지 3년간 육군공병감으로 재직하시며 건설분야중 특히 건축, 토목분야의 인재양성과 기술향상을 위해 집중투자를 하였습니다.


또한 공정하고 엄정한 인사를 통해 공병병과의 전력증강에 기여하였으며 공병병과의 우수인력확충을 위해 보병, 포병, 기갑등의 타 전투병과와의 인력조정에 앞장서 공병병과가 기술병과에서 전투병과로 전환되는 문제의 기본을 만들어 병과발전의 기초를 닦는 공헌을 이루셨습니다. 624월 육군소장으로 진급후 6310월 육군소장으로 퇴임하셨습니다.


병역 2대 서 정


아버님은 31녀의 가장으로서 원칙주의자이시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며 선행을 해도 자랑하지 말 것을 늘 당부하셨습니다. 원칙에 어긋나는 특혜나 특권을 기대하지도 말고 원칙대로 세상을 살도록 늘 말씀하셨기에 자식들에게 원칙주의이자 때로는 고지식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평소 부친이 가지고 계셨던 자식들에 대한 군복무에 대한 생각과 부친의 성품과 소신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예외 없이 군복무를 알아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역 2대에 걸친 3형제(서기,서립,서정)모두 대학 재학중 또는 졸업후 군복무에 있어서는 사소한 혜택이나 편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당연히 군복무는 자기가 알아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장남인 큰형(서기)이 현역병으로 5사단에 입영하여 당시 많은 고생을 하여 동생들에게는 기왕 군대 생할을 한다면 조직에서 리더쉽도 키울 수 있고 인내심과 보다 큰 책임감을 느끼고 성장할수 있는 장교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형(서립)과 저(서정)은 대학 재학중 ROTC를 지원하여 각기 논산훈련소 신병훈련소 훈육관으로 또 1사단 15연대 전방소대장과 연락장교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병역3대의 서 원


병역3대의 서원 군은 육군항공병과에 지원하여 항공작전 사령부 예하 11항공단 근무중 아프가니스탄 해외파병을 자원하여 125월부터 1212월까지 오시노부대에 파견되어 아프가니스탄 현지 바그람기지에 육군 항공관제병으로로 근무하였습니다.

>>> '서 정'님은 부모로서 아들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지원하였을 때 젊어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아들의 얘기에 잠시 걱정도 들었지만 본인이 희망한다면 가지 말라고 막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버님으로부터 배운 아들 키우는 방식이기도 하였습니다.

>>> 파병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을 때 아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인즉슨 파병출국 전날 부대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머리카락과 솝톱을 잘라 비닐봉지에 담아 제출할 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제 남자로서 겪어보기 어려운 곳에 간다는 실감과 더불어 남자로서 군인으로서 남다른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세상 젊은이에 비해 어린 아들이지만 바른 생각과 정신으로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슬비기자: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병역 2대 '서 정': 최근 많은 매체에서 힘있고 돈있고 권력 가진 사람은 마치 군대를 안가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하지만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발휘할 때 사회계층간 대립도 최소화 될 것이고, 사회 지도층일수록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더욱 철저해야 일반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던 사실이나 모택동의 아들이 전사했지만 시신수습을 포기했던 일화를 떠올려보면 우리나라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은 병역의 의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와 힘을 이용하여 본인, 자식들이나 친인척의 병역의무를 면탈하는 것은 사회적 죄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 수호를 위해 이바지하신 병역 1대 서 윤택 장군님, 병역 2대 서 기, 서 립, 서 정, 병역 3대 서 원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취재 : 청춘예찬 대학생기자 이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