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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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8.

 

나는야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나의 부대자랑)

 

 

충성. 백두산부대 일병 여원혁 입니다. 며칠 전 국방일보를 보고 있던 저는 병무청에서 시행하는

병무스타라는 이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사연을 올린다고 해서 병무청 홈페이지에

제 사연이 게재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군에 와서 다시 찾게 된 제 꿈과

뒤늦게 깨닫게 된 가족의 소중함, 청정병영을 실천중인 우리 백두산부대를 병무스타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솔직한 제 마음을 알리고 싶었고, 또한 자랑도 하고 싶은 바람에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군복 입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해군 천안함 전우들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 어느덧 천안함이 서해바다에 침몰 된지도 한 달이 흘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우리의

서해바다를 수호하는 숭고한 사명을 다하다 희생된 천안함 전우들과 실종된 전우들을 찾기 위해

생명까지 걸고 성난 서해바다에 몸을 던진 故 한주호 준위, 그리고 구조작업 후 복귀하다 외국 화물선과

충돌해 안타깝게 실종된 98 금양호 선원들까지.

대한민국의 군복을 입은 저로서는 그들의 넋을 어떻게 위로 하여야 할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형제, 친척, 친구를 잃은 분들에게 백두산부대 장병들을 대표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 국군 전우들의 마음도 이렇게 무겁기만 한데 누구보다 가슴이 아플

가족들의 마음은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순국 전우들의 뜻을 기리고, 전우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랑스러운 전우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 또한 그들과 같은 믿음직스러운 전우가 되겠습니다.

 

- 2010. 4. 25 -

 

- 천안함 전우들, 당신들은 우리의 영원한 전우입니다. -

 

- 백두산부대 장병일동 -

 

 

#꿈이 없는 삶을 살던 중 찾아온 입대소식

 

2007년 여름. 저는 어릴 적부터 8년간 해온 축구라는 운동을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공백기나 다름없는 2년간의 무의미한 시간을 저는 허송세월 보내듯 아무런 꿈이 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그만둔 저는 하루하루를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정작 중요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의 존재를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친구들과 새벽 늦은 시간까지 놀다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버지께서는 주무시지도 않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저는 속으로 오늘은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역시나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고 저는 제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집을 나와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가출한 이후에도 저는 항상 살아오던 일상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말을 하는 아버지의 목은 약간 잠긴 듯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집에는 언제쯤 들어 올 꺼냐고 묻더니 예상치 못한 군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었고 이야기의 끝은 9월 15일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 날짜를 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아버지에게 저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저와 어떠한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제 병역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군대는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군대에 있었고 사회에 있는 친구들도 군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제 자신과 군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의 전화를 끝내고 한동안 제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시간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군대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가족의 우애

 

2009년 9월 14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아직까지 졸음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입대 전날입니다. 아버지와 저의 사이는 예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서먹하기만

합니다. 아버지는 저를 춘천까지 바래다주신다고 하셨지만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안 바래다 주셔도

괜찮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춘천으로 갈 준비를 다한 저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본 아버지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한동안 멍하니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주셨던 아버지였기에 그 눈물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짐작해 보건데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곧 타지로 떠날 아들이 잘 먹고 아프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랑의

눈물일 것이며 군에 입대하는 저의 늠름한 모습에 흘린 기쁨의 눈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춘천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는 동안 저는 과거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청정병영과 현대의 군대

 

2009년 9월 18일에 국토정중앙에 위치한 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 입교한 이후 5주간의 훈련병 교육을

수료한 저는 10월 23일부로 이목정 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 배치 받은 저는 확실히 훈련소

때보다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훈련병이었을 때는 민간인을 군인 화 되게 하는 교육이 목적이기

때문에 조교들의 얼차려 부여, 인터넷, 전화통화 등을 제한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그 무엇보다

훈련소에서 '축구'를 못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반면에 자대에서는 '군대스리가'라는 군대 축구리그도 활성화되어 있고 사이버지식이용방(PC방)도

있어서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싸이 월드를 통해 친구들과 대화도 할 수 있어서 군대와 사회의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대로 전입 온 첫날엔 같이 전입온 동기 17명과 함께 이목정 대대 표창수 대대장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대대장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신병교육대대를 갓 수료하고 온 동기들과 저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지 대대장님과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동기들과 저는 금세 얼굴에 희색이 돌았고

대대장실 안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웃음바다로 물들었습니다. 실로 대대장님의 유머감각은

대단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표창수 대대장님께서는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오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2009년 1월 1일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기축년 새해를 맞아 대대장님(당시 GOP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새해인사와 함께 격려를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기 중 한명이 대대장님에게

요즘엔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아직도 선후임간의 구타나 탈영, 자살 등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속으론 저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던 터라 굉장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있을 당시 동네 예비역 형에게 들었던 군대는 힘든 훈련과 구타 및 가혹행위, 내무부조리 등

계급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정해져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저는 당연히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동기의 질문을 들으신 대대장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지금 현대사회의 군대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 지금의 한국의 여느 군대들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곳 oo보병사단 백두산부대는 '청정병영'이 완전히 녹아들어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청정병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대장님께서는 자상하게 한 번 더 청정병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청정병영이란 생활관 내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고 생활을 구속하는

일체의 관행, 계급별로 상이한 군대예절, 병상호 간의 복종, 강요행위를 금지하고 또한 폭언, 욕설,

일체의 언어폭력을 금지하며 마지막으로 선후임은 수평적 동료관계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동기와 저는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고 긴장과 압박감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대장님과의 면담의 시간이 끝이 나고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자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대 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저희 대대를 자랑할

만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저희 이목정 대대는 신 막사를 갖추고 있고, 침대 형 생활관을 비롯한 풋살장, 연병장(축구장),

족구장, 씨름장, 탁구장, 테니스장, 헬스장, 야구 타격 연습대, 노래방, 플스방, PC방, 청정사우나

(목욕탕) 등 많은 문화 체육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느 군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쾌적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군복무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 마음의 편지 그리고 무사고 대대

 

마음의 편지란 청정병영을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서 병사들의 애로사항이나 질문, 건의사항,

칭찬할 병사나 간부들을 써서 대대장 마음의 편지함에 넣으면 대대장님께서 주기적으로 마음의 편지를

확인하여 매주 금요일 오후 대대장 정신교육 시간에 한 주간 나온 마음의 편지에 대해 병사들과 토론을

하고 대대장님께서는 대부분의 문제를 조취 해줍니다.

 

이렇듯 마음의 편지를 활용함으로서 힘들어하는 병사가 혼자 고립되지 않게 하고 대대장님께서 즉각

조취를 취해 주셔서 현재까지 저희 이목정 대대에서는 단 한건의 사소한 사건, 사고가 없는

'무사고 대대'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 사단에서 저희 이목정대대가 최우수대대로 뽑혀

사단을 대표하는 '선봉대대'가 되어 6월에 있을 KCTC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대대장님을 비롯한 간부님들과 전우들 모두 KCTC 훈련 준비로 인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대대원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목표를 향해 전진 하자는

바람입니다.

 

 

# 군대스리가에 부는 변화의 바람

 

군대에 입대하기 전 군대스리가에 대한 소문을 동네 예비역 형을 통해 익히 들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공격수는 계급 순, 패스는 오로지 멀리 찬다고 했습니다. 먼저, 공격수 같은 경우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그나마 민간에서 축구 좀 했다는 선수여도 계급이 이등병이면 그는 골키퍼나 수비수일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그래도 명색이 유소년상비군 출신인 내가 군대스리가에

진출해서 수비수나 골키퍼를 서겠냐고 애써 부정했지만 내심 그렇게 되지는 않을 런지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동네 예비역 형이 말하길 군대스리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최고의 약점인데, 바로 패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최전방 공격수에게 뻥뻥 차주면 만사OK 라는 것인데 공격수가

잘 해서 골을 넣든지 그 공을 뺏기든지 그것은 그 다음의 일이며 멀리 차서 선임들에게 공을 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등병이라면 다음경기의 베스트 멤버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대에 배치 받은 저는 동네 예비역 형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군대스리가의 상당한 수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모양새가 달라졌습니다. 중대별로

맞춘 유니폼과 축구화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고, 경기 수준도 무조건 뻥뻥 차는 일명 '동네축구'를

벗어나 전술적인 패스와 공간패스, 척척 들어맞아 가는 호흡과 빠른 원투패스에 의한 공격들은 선수시절

당시의 경기 모습을 떠오르게끔 했습니다. 아직까지 선수구성은 계급 순이긴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군대가 변화하고 있듯 군대스리가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군대스리가의 수준은 기대이상입니다. 즉, 군대스리가에서 약 22개월 동안 열심히 뛰다보면 사회에

나가서 남부럽지 않은 축구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를 좋아하지

않은 전우들도 군대스리가를 즐기기 바랍니다. 끝으로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재미없어 하는

여자 친구가 군대스리가의 전설을 정말 재밌게 들어줄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 다시 찾게 된 꿈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군 입대 후 비로서 어른들이 항상 하는 그 말의 참뜻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군에

입대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사이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있을 당시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아왔지만 군 생활을 통해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2007년 여름을 끝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와서 저는 멘티(Mentee)가

되었고, 멘토(Mentor)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희 중대 이지양 중대장님, 김형수 행정보급관님을

비롯한 중대 간부님들입니다. 중대장님 같은 경우는 저에게 군대에서도 충분히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며 군 복무를 하면서 제게 맞는 전공을 살려 자격증을 취득할 것을 조언해주셨고 행정보급관님은

저와 마찬가지로 워낙 축구를 좋아하셔서 같이 축구를 함으로써 축구를 제게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속해 있는 포반의 김ㅇㅇ 포반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포반장님은 축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양궁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운동을 그만둔 제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포반장님과 저는 잘 맞았고 많은 면담을 통해 군 생활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끝으로 다시 찾게 된 제 꿈은 축구감독입니다.

 

고등학교 이후로 선수생활을 그만둔 제가 좋은 축구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꿈을 찾게 된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 목표의 첫 번째는 전역하기 전까지 축구 지도자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불과 십여 년 후 훌륭한 축구감독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올해는 6.25전쟁이 60주년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60년 전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전우님들과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워준 UN군

참전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아직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휴전상태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안보의식을 새롭게 확립해야 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 된지 어느덧 8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이기간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군대에 오게 된 것이 국방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몸과 정신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남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의무 보다는 특권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5월 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 가족과 스승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달입니다. 이런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국군 전우들뿐만 아니라, 국민 여러분들도 가족들이나 스승님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거나

편지 한 통 써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는 아버지께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청춘지기 (제7회 병무스타 여원혁씨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