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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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 충성/군인이야기

2014. 2. 21.

 

1996년 5월 2일... 평범한 어느날... 누군가의 첫 출근일, 누군가의 생일, 누군가의 결혼기념일일수도

있는 매년 반복되어 오는 흔하디흔한 날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평생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특별한 날일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1996년 5월 2일은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정말 특별하고도

특별한 날이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라면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가야하는 군대 가는 날... 바로 입대일이다...

 

 

사실 나는 전역한 지가 벌써 15년이 넘었다. 요즘 TV방송에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던데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조차도 일요일에 한번쯤은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TV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내 예전 군 생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쯤 아주 우연히도 병무청에서

추진하는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 공모를 보게 되었다. 문득 내가 직장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군 생활과 사회 생활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준다면 조금이나마 취업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어설프고 서툴지만 이렇게 용기 내어 펜을 들게 되었다.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PC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 ‘테크트리(TechTree)’라는 말이 있다.

테크닉(Technic)과 트리(Tree)의 조합어인데 각종 유닛의 업그레이드 절차를 말한다. 왜 내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경력개발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나름대로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이것을 추진해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 해본 말이다. 나의 경력개발 첫걸음은 군대 입영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 이제부터 나의 군 입대 및 군 생활 등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남자라면 그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나도

군대 가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다. 답답하고 지겨우리만치 갇혀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즐겁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는데 다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등학교보다 수십 배 수백 배

힘들다는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 굴려봐도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피할 방법이 없다면 현명하게

생각을 전환하여 군복무 2년 2개월의 기간이 허송세월이 안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내 전공은 정보통신공학이다. 친구들과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시기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 가는 친구들을 하나, 둘씩 보게 된 나는 이 전공으로 과연 어떻게 군대를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전역 후에도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군복무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하였고 내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내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일단

대학교 2학년을 수료하지 못한 상태라 산업기사 등(그때 당시에는 기사2급 등)의 자격조건이

안되어 자격요건에 제한이 없는 통신관련 자격증 시험을 보게 되었다. 바로 아마추어무선기사

(HAM)와 특수급 무선통신사이다. 이 두 자격증 시험을 보고 모두 합격하여 육군

통신기술병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내 기억으로는 통신기술병 시험을 필기와 실기를 동시에

군에서 직접 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스럽게도 한 번에 합격하여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영하게

되었다.

 

 

훈련소 입영 후의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헤어진 가족과 애인, 친구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낯선 시설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고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이 안쓰럽고 적응이 잘 안될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훈련병 시절을 보냈고 6주간의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기쁜

순간도 지나가고 슬픈 순간도 지나가기 마련인 것’,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그렇게 동기들과

울고 웃으면서 솔직히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즐겁지만은 않았었던 훈련소 생활을 나름 보람되게

보냈었다.

 

 

이렇게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포병대로 가게 되었다. 내가 배치받은 포병부대는

본부포대 하나와 A(알파), B(브라보), C(챠리)라고 하는 세 개의 곡사포대로 구성되어 있던 부대였는데

난 C(챠리)포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자대배치 받고 내가 처음으로 받은 보직은 바로 ‘무전병’이었다.

 

 

무전병 하면 딱 떠오르는 생각이 영화나 게임 같은데서 항상 등장하는 등에 군장대신 무거운 무전기를

메고 총 들고 뛰어 다니는 병사들을 생각할 것이다. 바로 그거다!!! 내가 받은 첫 보직이 바로 이렇게

야전에서 무전기를 메고 뛰어 다니는 무전병이었다. 그것도 포병 관측반 무전병, 이 보직은

포병부대에서 지형과 적의 정세를 살펴 포의 정확한 사격을 유도하여 무전을 통해 신속하게 적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포병들이 원거리에서 화력지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임무를 맡기 때문에 어떠한

지역,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전망을 개통해야한다. 이것을 위해서 나와 같은 무전병들은 항상 열심히

주특기를 숙달해야 했다. 무전병의 기본 중의 기본은 무엇보다 전문 무전용어인데 사회에서 쓰는 일반

용어하고 상당히 달라서 배우고 익히는데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매 훈련 때마다 20kg에 달하는

무전기를 메고 보병들과 같이 행군하며 쉴 틈 없이 상황전파를 하는 임무도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취득한 자격증 공부하고 군에서 직접 경험하는 실전업무와는 꽤 많은 차이가 있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당황하고 있어선 안되었기 때문에 나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각종 통신교본을 정독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선임병들이 먼저 배웠던 기술 노하우들을

열심히 메모하고 암기하고 실습하면서 이러한 차이를 천천히 좁혀 나갔다. 이렇게 하여 무선교신,

무선기기 조작 및 운용, 무선안테나 설치 등 자격증 공부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기술들을

습득하게 되었다. 군복무 중 이러한 나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처음으로 실제 훈련에 참가하여 실수 없이

무사히 임무를 완수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한지 서너 달 되었을 때 기존의 무전병 보직을 유지하면서

관측병 업무도 같이 수행하게 되었다. 군복무 시작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전병 역할만 수행하다가

선임병이 되니 무전 주특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임무도 같이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관측병은 쉽게

말해 포병사격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적의 위치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FDC(Fire Direction Center)

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병사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를 볼 수 있는 독도법과 나침반 사용법,

레이저거리 측정기라 불리는 장비 등에 숙달되어야 한다. 이등병 때부터 조금씩은 접해보았지만

정식으로 보직을 받아 임무수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대에서 주관하여 3개포대가 같이

참여하는 주특기 집체교육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분대장을 달고 후임병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교육에 임했다. 교육 초반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사소한

문제들도 많았지만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대장을 달고 병장 진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던 나의 군복무

기간 중 최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바로 ‘대대포술경연대회’... 대대 구성원인 네

개의 포대에서 선발된 장교, 부사관, 병사들이 개인․팀으로 참가하여 포병 주특기를 서로 겨뤄서 순위를

정하는 일종의 시험같은 것이다. 이 경연대회에서 관측 주특기로 내가 대대 1등을 하였다. 애석하게도

우리 포대에서는 단 한명의 1등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1등을 했었던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미래를 위한 준비로 주특기 교육에 성실히 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나를 준비시킨 결과물이

이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로 인하여 남은 군복무기간 동안 누구한테도 무시 받지 않고

군대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

 

 

1998년 7월의 첫날 나는 드디어 2년 2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만기전역이라는 영광을 손에 쥐고 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무거웠던 무전기를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하였다. 기쁘고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학업을 다시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또 다른 시작임을 알고

있었다. 전역이후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복학을 하였고 군복무의 경험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가장 달라진 것은 입대 전 지루하고 보기 싫었던 전공서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전공학업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성적으로도

나타났는데 입대 전 평균학점이 3.0점이 될까 말까한 나였는데 복학후의 성적이 평균

3.5점대를 넘어 4.0점대로 진입한 것이다. 성적이 어느 정도 향상되자 나는 졸업 후의 내 진로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역시 군입대전에 생각했던 대로 나는 내 전공 및 군 경력을 살려 통신계열 회사로

입사하여 경력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입사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나는 통신관련 자격증들을 거의

모두 취득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 이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였기에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전문학원에서 수강도 하고 집에서 연습도 하고 해서 정보통신산업

기사․기사, 무선설비산업기사․기사, 통신선로산업기사 등 통신관련 자격증들을 모두 무난히 취득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을 전공한 나였기에 앞으로 이쪽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산 및 인터넷,

컴퓨터 지식도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어 정보처리기사, 인터넷정보검색사,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등의 자격증도 같이 취득하였다.

 

 

이렇게 나름 미래의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여 4학년 졸업 전 취업을 하게 되는데 첫 직장은 지금 서울

도곡동에 있는 군인공제회 공우ENC라는 회사였다. 정보통신업무에 종사할 기사직을 모집하는

거였었는데 나의 통신병 경력과 내가 가진 자격증들로 인하여 비교적 손쉽게 취업이 되어 다른

친구들보다는 약간 빨리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텔리젼트빌딩인 군인공제회관의 방재센터에

근무하면서 IBS(Intelligent Building System) 통합운영시스템과 사내 인터넷망 등 네트워크에 대한

유지보수와 관리운영, 구내통신 시설의 유지관리 업무를 2년여 동안 수행했다. 이러한 업무수행 중 나의

적성이 통신 분야 보다는 전산분야에 더 잘 맞는 것 같아 과감히 사직서를 내고 정보기술원에서

1년여 동안 IT기술을 교육받고 훈련하여 시스템 관리 및 운영 등의 관련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국제공인자격증 등 다른 자격증도 몇 개 더 취득하는 등 자기계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보기술원 수료 후 기업 전산실에서 단기계약직 등의 일을 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던 중

중랑구시설관리공단이라는 공기업에서 전산직 사원을 채용하는 것을 보고 여기에 지원하여 합격하게

되었다. 역시 이번 합격도 그 동안 꾸준히 준비해온 자격증 및 사회경력, 군 경력 등이 도움이 많이

됐다. 통신병으로 군 입대를 하고 중간에 전산으로 직무를 변경하긴 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경력개발을

하고 기회를 위한 준비를 해 온 것이 이런 좋은 결과를 얻게 했던 것 같다.

 

 

두서없이 많은 말들을 한 것 같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의 계획을 프로세스화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 전역 후 전공을 살리기 위한 나의

첫 번째 계획이었던 육군 통신기술병 지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거나 읽게

되는 후배님들이 있다면 군복무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지워 버리고 어떻게 하면

군 경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삼을지를 먼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앞으로 여러 가지 일을 만나면서

당황하고, 망설이고, 실수하는 일도 많겠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연마하고 준비한다면 언제든지 기회는 오기 마련인 것 같다. 이 기회를 붙잡거나 놓치거나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