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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엄마 둔 여고생, 다문화 청소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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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네 이야기

2011. 7. 14.

 

원제 : 그 아이들과의 만남 (글쓴이 : 김지영_청심국제고등학교)

 

 

오늘도 어머니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십니다.

‘선생님이 준비하지 않으면 학생도 바로 알아차린다’며 언제나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일본어를 가르치신 지도 어언 18년입니다. 언제나 어머니 곁에는 각종 일본어 교재가 즐비합니다. 시험기간이기라도 하면 시험문제에 한국어 오류가 하나라도 있는지 검사하느라 며칠 밤을 새우시곤 합니다. 대학원 시절에 한국어로 논문을 작성해야 될 때는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많이 울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이 모든 '이방인' 생활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꿋꿋이 살아가시는 것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언제나 뭉클해집니다.

 

 

 

 

 

어머니께서 언제나 제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영아, 넌 절대로 너 혼자만 배불리 먹기 위해서 살면 안 돼. 네가 이렇게 엄마 곁에서 사랑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을 꼭 세상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단다. 내 말을 꼭 명심해야 해."

 

그런 어머니의 말씀에 저는 언제나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속으로는 '먼 훗날 내가 잘 돼서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남의 일을 생각하자'라고 되새기며 오로지 제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먼 훗날’이 결코 먼 훗날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2010년 8월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현재 다른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2 학교 논문프로젝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과 관련된 논문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논문팀은 다문화 가정이 겪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그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그해 8월에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위한 캠프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저 다문화 가정 아이들만 조금 모아서 1박 2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잘 알지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금쪽같은 아이들을 보내주겠습니까?

 

우리 팀은 맨처음 학교 근처의 OO중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나 뵀습니다. 우리 캠프에 대해 소개하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캠프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어렵사리 만든 기회였지만, 아쉽게도 OO중학교는 안정상의 이유들 들어 학생들의 참가독려를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OO중학교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우리 교장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하지만 OO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이번에도 거절을 하셨습니다. 논문 집필 기간은 다가오는데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OO중학교 공부방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공부방에는 다행히 20명이 조금 안 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이 아이들과 함께 캠프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함께 한 캠프

 

캠프를 위해 티셔츠를 제작하려는데 공부방 선생님께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옷을 많이 사 입기 어려우니 되도록 교복 밑에 입을 수 있는 무늬가 작은 흰 티셔츠로 제작해 달라”고 말입니다.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같은 다문화 가정이긴 했지만, 저는 언제나 옷이 부족하다고 어머니께 떼를 쓰며 철없이 조르곤 했습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무시하고, 언제 올 지도 알 수 없는 ‘먼 훗날’을 기약하던 나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이 아이들은 이렇게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데, 나중에 성공해서 남을 돕겠다고 했으니 전 모순 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마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참가비용을 걷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연구비를 탈탈 털어서 어렵게 청심국제 청소년수련원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뜻 깊은 강의를 해주실 분을 찾았습니다. 운 좋게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다문화 연구에 밝으신 조광복 교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교수님께 아이들을 위한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차별'과 '편견'이라는 장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연극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아빠의 언어인 한국어 외에 엄마의 언어인 일본어, 베트남어, 중국어 등등 다른 외국어를 접해보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캠프인 만큼 운동회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8월 11일 수요일, 드디어 아이들이 하나 둘씩 수련원 강의실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지만, 저는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이나 되었지만 대체로 왜소해서 안쓰러웠습니다. 하나같이 수줍어하는 아이들과 벽을 허물기 위해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마음열기 게임)’으로 '당신은 이웃을 사랑합니까'라는 게임을 하였는데 놀라운 것은 그 게임에서 한국인은 모두 일어나서 자리를 이동해야 했는데, 모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제 눈에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아쉬운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반반'으로 당당하게 살엔 바꿔야 할 부분 너무 많아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완전히 한국인도 아닌, 완전히 일본(엄마의 나라)인도 아닌 이 둘을 합친 다문화 아이들이지만, 한국 사회에 살아가면서 반쪽 자아를 묻어버린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사회가 ‘반반’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확신하며 살아가기에는 아직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어 편견을 깨기 위한 연극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돕는 것부터 한국 문화에 서투른 외국인을 어떻게 이끌어 줄 건지 각 팀별로 공연을 하였는데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공부방 선생님은 분명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다문화'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고 회피하려고 하며 내성적”이라고 했는데, 그룹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다문화'라는, 어쩌면 또 하나의 차별적인 이 말이 내면의 가능성까지 가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계와 교류하며 여러 문화를 접한 다문화 사람인데 부모 두 분이 다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교수님께서는 '다름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얼굴이나 언어가 조금 ‘다르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이상한 것’이라 단정을 지어 많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강의 후 아이들이 학교에서 느낀 소외감을 직접 들으면서 여태껏 위선적이었던 나의 삶을 또 한 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1박 2일 간의 캠프를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발이 쉽게 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꼬마 아이들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차로 직접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잘 커서 한국에서 조화롭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문화 아이들 위해 영어 가르치고, 축제 만들고, 동화도 쓰고

 

아이들을 만난 후부터 저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학교에 앉아서 공부만 하던 제가 이제는 바깥으로 나가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고, 조그만 다문화 축제도 만들고,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연도에도 역시 다문화 캠프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다른 공공기관으로부터 후원금도 받았고, 함께 일할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8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함께 할 예정입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작은 불씨에 바람을 불어 넣어준 그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더 크게 보답하려고 오늘도 저는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 이글은 법무부가 주최한 ‘2011 재한외국인 생활체험 수기 공모’에서 자원봉사⋅멘토⋅후원자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광주광역시의 김지영(청심국제고등학교)님의 글 ‘그 아이들과의 만남’입니다. (원문을 거의 살려두었고, 사소한 오탈자는 수정을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지영 양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다문화 아이들을 만나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봉사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고등학생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각이 깊고, 행동이 빠른 지영양에게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봅니다. 두 나라의 문화를 골고루 흡수하고 자라나는 다문화 아이들은 국제화 사회에서 그 역할이 더 커질 인재입니다.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차이’와 ‘관용’에 대한 시민의식이 더욱 성숙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