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동네 이야기

법무부 블로그 2020. 3. 30. 10:00



어느 날 A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집에 초대받아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주최자인 권력자의 자리였던 것이었습니다. 실수로 잘못 앉은 것을 알아차리고는 바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갔는데, 이 모습을 보게 된 권력자는 괘씸하고 화가 나서 내 자리에 함부로 앉은 죄를 물어 그 자리에서 징역형을 선고해버렸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요?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

모든 나라의 형법은 범죄가 무엇인지와 그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떻게 벌을 받게 되는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형법상 규정으로 명문화되어있지 않은 일들은 범죄가 되지 않으며, 그래서 형벌을 내릴 수도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길을 가다가 몸이 불편하신 분의 보행을 안전하게 도와주는 것은 손가락질당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형법에 범죄라고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보아도 처벌받아야 하고 사회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을 저지른 경우에도 법률에 해당 행위가 범죄라고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형법상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형법에 범죄라고 미리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형법정주의라고 합니다. 권력자나 공권력이 마음대로 죄명을 만들고, 감정에 따라서 괘씸하다고 사형!”, 친하다고 무죄!”라고 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률에 따라서만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형법

1(범죄의 성립과 처벌)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

 

범죄란 무엇인가

어떤 행위가 형법상 범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3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는 저 사람의 행위가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의 조건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그 행위가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위법한 행위인가를 따지고,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책임이 있는 지까지 체크하고 모두 YES라면 범죄가 성립합니다.

 

하나씩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 A는 친한 친구 B가 해외여행을 길게 떠나서 집이 비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는 나쁜 마음을 품고 B가 떠나자마자 B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서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다시 몰래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거침입죄는 차치하고, A의 절도죄는 성립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절도는 마음을 먹은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훔쳐서 나오는 행위까지 완료해야 절도죄가 성립하게 됩니다. , 범죄를 결심하고 실행에 착수하여 결과가 발생해야 죄가 성립하게 된다는 것이 범죄의 조건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두 번째로, 평범하게 길을 걸어가던 내게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이유 없이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는 맞지 않기 위해서 그를 밀쳤는데, 그가 넘어지면서 다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 사람은 폭행을 저질렀고, 나는 상해를 저질렀지만 먼저 한 사람이 더 잘못한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였던 나의 상해죄는 성립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서,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유치원생인 아이가 또래와 놀다가 친구를 밀어서 다치게 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범죄가 성립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법상 부모가 지는 책임과는 별개로, 형법상 14세 미만의 자의 경우에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 없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신 상실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형법

9(형사미성년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10(심신장애인)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범죄 같아 보일지 몰라도 범죄의 성립 3단계 중 한 개라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범죄로 성립하지 않아 형벌을 선고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론에서 만취자의 범행을 봐준다고 느끼는 까닭도 심신 미약자의 책임을 경감해주기 때문이고, 불을 끄기 위해 문을 부수는 소방관에게 손괴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도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발생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형법의 기본 원칙은 무죄 추정의 원칙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데요, 쉽게 말해서 이 사람이 유죄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어 유죄로 판결되기 전까지는 무죄인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헌법

27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도대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무죄 추정의 원칙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사와 재판은 저 사람은 무죄인데 무엇을 근거로 유죄라고 말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가고,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증명해내는 과정입니다. 혹시나 모를 죄 없는 사람이 오해를 받는 만에 하나의 경우를 만약을 대비해서 모든 국민의 존엄과 권리 보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받는 경우가 있어 국민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파렴치한 피고인조차도 만에 하나 진짜 범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증거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내기에는 부족해서 의심할 여지없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François-Marie Arouet)무고한 자를 비난하느니 죄 있는 자를 풀어주는 게 낫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법은 범죄자의 규명하고 처벌하는 것보다는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파렴치한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거나 가볍게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무고한 나의 일이 되어버린다면, 80% 증거가 나를 범인으로 가리키지만, 나는 정말로 범인이 아닐 때, 법과 공권력 앞에 연약해서 충분한 조력을 받지 못하는 나에게 법이 20%는 작은 부분이니깐 무시하고 유죄를 선고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래서 법은 범인이라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풀어주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는 법

우리는 이제 실수로 권력자의 자리에 잠깐 앉았다고 해서 내 자리에 함부로 앉은 죄를 갑자기 만들어서 징역살이 하게 될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형법정주의를 거론하면서 형법에 적혀있지 않아서 이 행위는 죄가 되지 않다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부분이 생기셨나요? 이제 우리는 친구와 가위바위보를 하고 지는 사람이 딱밤 맞기를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딱밤을 때리는 친구에게 폭행죄로 연행하지 않는 이유는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재판에서 흉악범의 공소 사실의 일부가 인정되지 않는 것도 만에 하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법이 마련해 놓은 장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TV와 뉴스를 통해 보면서 왜 저런 판결이 나오고, 왜 저런 사람을 가만히 두는지 이해하지 못하셨을지 몰라도, 이 글을 읽고부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하게 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법은 원리를 알고 이해하고 바라보면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12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장민호(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