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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값을 받을 수 있는 시간! 시효는 왜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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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네 이야기

2020. 9. 22.

성폭력 피해에 있어서 시간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 법은 어떠한 사실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경우, 이것의 진실 여부를 묻지 않고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시효’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효도 그 종류에 따라 공소시효, 소멸시효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공소시효는 형사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공소시효’는 과거 사건에 대한 현재 시점의 수사 또는 기소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법률적 쟁점입니다. 공소시효란 어떤 범죄가 발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소의 제기를 할 수 없는 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범죄의 유무를 떠나 범죄에 대한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국가의 형사소추권이 소멸하는 것이지요. 소추를 할 수 없으니 재판을 열 수 없고 죄의 유무를 따져 물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국가의 형벌권도 발동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공소시효는 ‘범죄자에게 죄를 벗어날 구멍을 만들어 주는 제도가 아니냐’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최근 전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이춘재 역시 2006년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이는 공소시효의 한계를 잘 나타내는 단적인 예입니다.

 

 

소멸시효는 민사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민사상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경우,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권리가 소멸한 이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도 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테니스 선수 출신의 A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을 1년간 성폭행했던 테니스 코치 B를 14년 만에 형사 고발하였습니다. 지난 2012년,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약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테니스 코치 B씨에 대한 징역 10년의 실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사건이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된 점을 들어 테니스 코치 B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A씨는 형사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수면장애, 불안, 악몽에 시달리는 등 삶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A씨는 가해자 B 코치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A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시효’였습니다. 가해자 B는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항변하였습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입니다. 기존의 판례는 성폭력이 발생한 때를 손해가 발생한 시점으로 보고 시효를 인정해 왔습니다. A 씨는 성폭행을 당한 날로부터 17년이 지난 2018년, 가해자 B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A 씨의 피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17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A 씨에게는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재판부는 기존의 해석과 달리, 해당 사건에서 A 씨의 손을 들어줍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재판부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손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다가, 원고가 최초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날인 2016년 06월 그 손해가 현실화하였고 이날이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 이자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일이 된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는 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소멸시효 항변이 배척된 최초의 판결로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통해 더욱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해볼 수 있는 아주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위 사건은 아주 예외적인 하나의 경우입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성범죄 피해자들은 여전히 시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도가니 사건’으로 잘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서 피해자가 성폭력 범죄 피해로 인한 외상후 스트래스 장애와 우울장애를 진단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지만, 법원은 소멸시효 도과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최근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미투 운동을 돌이켜 보더라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30년도 훌쩍 지나버린 사건들에 대해 고소, 고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고소조차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쯤이 되면 우리 사회에 시효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집니다.

형법상 공소시효가 필요한 이유는 첫 번째로, 범죄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증거의 보존이나 확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해자나 목격자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왜곡되기 쉽습니다.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로 처벌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공소시효는 필요한 제도입니다. 두 번째로,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도 일정한 제한을 두기 위함입니다. 형벌권 행사의 목적에는 ‘사회 안전 확보’와 ‘범죄자 교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범죄가 발생한 뒤 오랜 기간이 지난 경우라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처벌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건에 경찰의 수사력을 배치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합니다.

 

다음으로 민법상 소멸시효의 존재 이유입니다. 혹시 ‘권리는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권리자의 권리 불행사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하여 온 상태에서 갑자기 그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해서 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사회질서의 안정을 깨트리거나 상대방에게 입증하기 곤란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즉, 더 큰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권리의 행사에 태만했던 것에 대한 제재로서 계속되어 온 사실 상태를 존중하여 사회질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합니다.

 

 

그러나 성범죄의 경우, 범죄 특성상 사건이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고소, 고발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시효 문제에 대해 달리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피해에 대한 수치심, 사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 2차 가해에 대한 우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사기관에 신고하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 너무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거나 친족 또는 지인에 의해 성폭행이 발생한 경우라면 피해 사실을 알리는 시기가 더욱 늦어집니다. 실제로 2019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당시 대응방법을 조사한 결과 ‘자리를 옮기거나 도망침’ 64.1%로 가장 높게 나왔으며, 피해 당시 대응하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44%, ‘당시에는 성폭력인지 몰라서’가 23.9%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시효의 규정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동안 뭐하고 왜 이제야 신고해?’라는 또 다른 책임을 추궁하게 합니다. 우리 사회는 성범죄 피해자의 용기에 적합한 응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그 당시 사회적 이슈나 사건에 따라 여러 해를 걸쳐 지속해서 신설·개정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범죄마다 적용되는 공소시효는 각기 다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DNA와 같이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 공소시효는 10년 연장될 수 있습니다. 또한, 13세 미만의 사람 또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에 대한 성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강간으로 인한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공소시효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최근 N번방 사건 이후,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범죄에 대한 정책들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결과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의제강간·추행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공포안이 국무회의에 의결되어 오는 11월부터 시행이 됩니다.

 

더욱 중대한 성폭력 범죄인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된 것입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물 제작 행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폐지하여 성범죄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성범죄 근절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입법적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성범죄에는 시효가 존재하고 현재까지의 법 개정이 성인 피해자를 모두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시효가 필요한 제도임은 틀림없지만 이러한 시효 제도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해자의 보호, 피해자의 인권이 더욱 투영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꽤 그럴듯한 위로가 성범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 제12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이은지(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