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영생과 神仙

조로아스터 2019. 1. 24. 09:41

보현(賢)보살 


 - 더 많다  넉넉하다, 가멸다(재산이 넉넉하고 많다) 두텁다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일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덕을 가졌다고 해서 보현연명보살,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소요송(逍遙頌)에 이르기를 

집이 허물어짐에 수리하기 용이하고,

약(樂)이 말라 죽어도 다시 나기 어렵지 않네.

다만 귀복법(歸伏法)만 알게 되며는,

금은 보화가 산처럼 쌓이게 되리라!


      

         연명관음(延命觀音)          중보관음(衆寶觀音)    

 

             


사람이 혹 얻으면 그 한냥이 천냥의 구리로 변하고 다시 모두 진금을 이룬다.

 

이것을 복용하는 자는 세상에 일겁동안 머무를수 있다. 
사람이 연령약을 복용하면 오래도록 건강하여 늙지도 여위지도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복식의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학문이다. 


도대체 불교 경전 어디에 단전이니 성명이니 하는 말이 있으며

단전 호흡과 같은것은 도교에나 있는것이고 불교는 그런것이 아니다. 라고 못박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에 가면 불교의 교조이신 석가 부처님을 볼수있고 그 좌우에 문수 보살님과 보현 보살님

이렇게 3존을 볼수가 있으며

이 문수와 보현이 바로 성(性)과 명(命)이 되는것이며 보현은 단전을 비유로써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보현 보살은 고대 인도어로는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 하며 

이를 의역하여 변길(吉)이라고도 하는데 

보현의 보(普)는 널리 두루라는 뜻을 

현(賢)은 더 많다, 넉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만(曼)자도 만연하다, 퍼져 자라다의 뜻이며  편(遍)자 또한 두루 널리 퍼지다의 뜻으로

상서로운것이 널리 두루 넉넉하고 많게 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수행이라는것을 한다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하는 

그런 수행을 해야한다는 뜻으로 그런 스타일의 그런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것입니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부처들의 지덕(智德),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여래의 오른쪽에서 이덕(理德),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고 있는데

이러한 수행에 대한 이치와 실천적이고 실리적, 실질적인 측면을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단전을 넘었을 때 점점 모이고 자라나고 

온 몸에 두루 퍼지게 되며 저축을 하듯이 축기가 이루어집니다. 


보현 보살이라는 보살님을 이야기할때는 실천적인 덕목을 중요시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실천이라는것은 실제적으로 그 이치가 이론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이법이 실제적으로 응용되고 적용되고 구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통의 수행은 이러한 구현에까지 이르지 못하는데 대부분 모의 시뮬레이션으로 그치게 되므로 

비슷한 이치는 알지언정 여기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행이 말 그대로 보현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체험하게 된다면

ㄱ 자를 아는 사람은 낫을 보면 그것이 ㄱ 자라는것을 알듯이

수행을 통해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은 보현이라는 두 글자 또는 한 글자만 보아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채고 알도록 되어 있는것이며 

그러한 수행을 하고 그러한 수행의 길을 가도록 되어 있는것입니다. 


사만다 바드라 (Samantabhadra)의

바드라 - 현(賢)은 지극히 원해서 선을 가다듬는다는 것으로 

우리 안의 악한 상황을 선한 상황으로 돌려놓는것을 의미합니다. 


수행과 연계되지 않은 사람이 보았을 때 보현이라는 글자는 보편의 법문이라든가 

열가지 원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보살로써 무엇인가 도덕적이라든가 철학적 종교적 추상적인것을 막연히

실천하는 행동적인 덕목을 가르치고 있는듯 보이지만

이러한것 모두가 실제적 수행법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러한 수행을 했을때 

어떤 실질적인 현상이 일어나는지 실천적 측면, 실행적 측면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것입니다. 


현(賢)이라는 글자에는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일 이라는 뜻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원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이것은 그러한 실질적이고 실제적 수행이 적용되는 실행되고 적용되고 구현되었을때

타인을 구제하는것에 앞서 바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 그런 방법이 여기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것입니다. 


떡 하나 주고 싶은데 마음만 굴뚝같을 뿐 실제 줄수 있는 떡이 없다면

말 그대로 말뿐이고 마음만으로 그치고 아무것도 줄수 없듯이

남이 되었던 나 자신이 되었던 실제적인 구원은 이법이 이론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깊은 이해가 아니면 자신의 수행과도 타인의 수행과도 아무 관련이 없는 

경전을 널리 퍼뜨린다 정도의 이해 수준이 아닌 

실제적으로 무엇이 어떤것이 어떤식으로 적용되고 구현될수 있어야 하는지 그런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것이 

그런 수행법의 주 특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것이 바로 보현 보살입니다. 



       


초선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때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깁니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합니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심)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희와 행복(락)>이 있는 초선에 구족하여 머무릅니다. 


그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 구석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는데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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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영생과 神仙

조로아스터 2019. 1. 19. 12:28

5장. 불타는 집(火宅)의 비유


   

    

사리불아, 옛날 옛적에 어느 나라의 한 마을에 큰 장자가 살고 있었느니라. 

나이는 매우 늙었으나 재산이 한량없이 많고 토지와 가옥과 하인들이 대단히 많이 있었느니라.


그 집은 매우 크고 넓었으나 대문은 오직 하나뿐이고, 그 안에 백 명, 이백 명 내지 오백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느니라.

그 집은 모두 낡아서 벽과 담은 무너지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마저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 집들이 한창 타고 있었느니라. 

그때 그 집안에는 열 명, 스무 명 혹은 서른명이나 되는 장자의 여러 아들들이 있었으니라.


장자는 이 큰 불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두려워하며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비록 이 부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왔지만, 내 여러 자식들은 이 불타는 집 속에서 장난하고 노느라고 

불난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불길이 곧 몸에 닿아서 고통을 한없이 받으련만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나오려는 생각도 아니하는구나.” 


사리불아, 장자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기운이 세니 옷담는 상자나 궤짝을 가지고 가서 담아 들고 나오리라.” 하였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이 집의 문은 하나뿐인데 매우 좁고 협소하다. 아들들은 너무 어려 놀이에만 정신이 팔여 있으니 

자칫 잘못하여 어린 것들이 땅에 떨어지면 불에 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 어린 것들한테 이 집이 한창 불에 타고 있으므로 무섭다는 말을 들어 주어 

지금 빨리 뛰어 나오지 아니하면 불에 타서 죽는다고 하리라.” 

이와 같이 생각한 장자는 그 여러 자식들한테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느니라.


아버지는 애가 타서 불쌍하게 생각하고 좋은 말로 타이르고 달랬으나, 아이들은 장난에만 정신이 팔려 즐기느라 

믿지도 아니하고 놀라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하여 나오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또 불이 어떤 것이며 집은 어떤 것이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다만 이리저리 동서로 달리고 뛰놀면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느니라.


이때, 장자는 이런 생각을 또 하였느니라. 

“이 집은 벌써 맹령한 불불길에 휩싸여 타고있어, 나의 아들들이 지금 나오지 아니하면 반드시 불에 타게 되리니, 

내가 이제 방편을 써서 아들들이 화재를 면하게 하리라.” 


그 아버지는 여러 자식들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줄을 아는지라,

 가지가지 기이한 장난감을 보면 반드시 기뻐하리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이 좋아하고 갖고 싶어하는 진귀한 장난감이 여기 있으니 너희들이 지금 가지지 아니하면 

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여러 가지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들이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너희들은 이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오너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겠노라.”


이때, 여러 아들들은 아버지가 말하는 진귀한 장난감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기뻐하며 서로 밀치면서 앞을 다투어 불타는 집에서 뛰쳐 나왔느니라. 


이때, 장자는 여러 자식들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와 길 네거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걱정이 없어지고 

편안하게 흐믓하여 기쁨에 넘쳤느니라. 이때, 여러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하던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의 장난감을 지금 주시옵소서.”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그때 장자는 여러 아들들에게 각각 평등하게 큰 수레를 나누어 주었느니라. 

그 수레는 크고 높아 여러가지 보배들로 꾸미었으며 주위에는 난간을 두르고 사방으로 풍경을 달았으며, 

그 위에는 일산을 펴고 휘장을 쳤는데 모두 진귀한 보배로 꾸미었으며, 

보배 줄을 엮어 늘이고 모든 꽃과 화려한 영락을 드리웠으며, 부드럽고 고운 자리를 겹겹으로 깔아 

붉고 아름다운 베개를 놓았으며, 흰 소에게 멍에를 메웠으니 

빛깔이 깨끗하고 몸이 좋고 기운이 세며, 걸음걸이가 평탄하고 그 빠르기가 바람 같으며 많은 시종들이 호위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이 장자의 한량없으므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나의 재산이 한량없이 많으니 변변치 못한 작은 수레를 아들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어린 아이들이 모두 나의 아들이니 사랑에 치우칠 것 없이 칠보로 꾸민 보배의 큰 수레를 

평등한 마음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되 여기에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되리라.

 왜냐하면 나는 이런 물건으로 온 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모자라지 아니할 것이거늘 하물며 

나의 아들들에게 주는 것이랴.” 

이때, 모든 아들들은 각각 큰 수레를 타고 일찍이 없던 좋은 것을 얻었으니 본래 바라던 것만이 아니었느니라.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장자가 아들들에게 보배로 된 큰 수레를 평등하고 골고루 나누어 준것이 허망하다고 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장자가 자기의 아들들로 하여금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와 목숨만 보전케 하였을지라도 허망한 것이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만일 목숨만 보전할지라도 

이미 좋은 장난감을 얻은 것과 같거늘 하물며 방편으로 저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게 하여 구제함이오리까.”


세존이시여, 이 장자가 만일 작은 수레 하나를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허망한 것이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방편을 써서 아들들을 불타는 집에서 나오도록 하리라.” 하였사오니, 

이러한 인연으로 거짓됨이 없거늘 하물며 장자가 자기의 재물이 한량없음을 알고 모든 아들들을 이롭게 하려고 

큰 수레를 평등하고 나누어 줌이오리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옳은 말이 너의 말과 같으리라.”


                          


삼계가 치열한 불구덩이 속에 있건만

중생들이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가련하게 여겨서 세간에 나타난 것이니,

중생의 생로병사와 헤아리기 어려운 여러 번뇌의 결박을 소멸시키고,

 

그들이 집착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무너뜨림으로써

3승을 유도하여 점차적으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권유하고 제시하느니라!

 

 

♡ ♤ ♡ ♡ ♡ ♤ ♡


수행승들이여!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하고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고 나서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보배 수레 비유로 
  이 수레를 타고 유력함으로써 
  여래의 도량에 이른다고 하네. 
   
  무수한 불자들이 
  이를 오락으로 여겼지만 
  귀를 기울여서 들은 자는 
  제자로서 안주하리라!

  

              ㅡ 선지식 석가모니


][] 

  

   春宮桃李夭夭兮 智士男兒樂樂哉 


 봄궁전의 복숭아꽃 오얏꽃이 곱고도 고움이여,
 지혜로운 사나이는 즐겁고 즐거워라.

   

                <동경대전 和 訣 詩 (화결시)> 



태산송(태山頌) 에 이르기를,

고소성(姑蘇城) 아래 한산사(寒山寺)에서,

야반(夜半)의 종소리가 저절로 울릴 때라네.

가을 달 봄 바람에 무한한 그 흥미는,

그 중에서 다만 자신만이 알게 한다네!



자수송에 이르기를

비취 병풍 사이에 촛불을 밝혀놓고

봉황 장막 속에서 금 잔을 기우리네

백랑(白郞)이 일어나 붉은 치마를 잡고 춤추고

봄바람에 취해 누워 그 즐거움 스스로 아네!

       (옛말에 쌍룡이 구슬을 희롱하니 상운이 일어난다고 함을 비유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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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영생과 神仙

조로아스터 2019. 1. 19. 12:27

⑦ 화택(火宅)의 비유
2013년 04월 05일 (금) 11:36:22금강신문  ggbn@ggbn.co.kr

불타는 집은 사바세계, 아버지는 부처님 상징

  
▲ 천안 만수사 관음전의 '화택의 비유' 벽화

큰 기와집에 불이 났다.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집 안에서 놀고 있다.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집에 불이 났으니 어서 나오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고함 소리는 듣지도 못한다. 절박하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 가지 꾀를 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밖에 있으니 나오너라.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가 여기 있다”고 소리를 친다. 그제야 아이들은 장난감이라는 말에 좋아하며 밖으로 나와 불길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아이들에게 커다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주었다. 수레는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웠다.

〈법화경〉 제3 ‘방편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아버지의 지혜로운 방편이 줄거리다. 〈법화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대표적인 비유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화택(火宅)의 비유’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 중생계를 불난 집에 비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계는 불난 집이고 그 안에서 놀이에 빠져 불이 난 줄도 모르는 아이들은 바로 우리들 중생의 모습이다. 먼저 밖에 나가서 아이들을 구출해 내는 아버지는 부처님이다.

이 비유의 일차적인 줄거리는 중생계를 불난 집에,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중생에 그리고 아버지를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부처님)가 아이들(중생)을 어떻게 불난 집(중생계)에서 구출(해탈)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오라 비구여!”

깨달음을 얻은 뒤 부처님은 귀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라 비구여!’라는 이 짧은 말 한 마디에는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부처님에게 귀의하면 진리의 실체를 듣고 깨치고 알아 행하는 모든 길이 열려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얘들아. 불난 집에서 나오너라.”

이 역시 부처님이 중생들을 향해 고통의 육도를 벗어나 열반적정의 대자유를 맞이하라는 외침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두꺼운 업식은 집에 불이 났다는 말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선물을 준다고 방편을 쓴다.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가 선물이다. 양이 끄는 수레는 성문승(聲聞乘)이다. 중생의 근기가 일천하여 듣고 보고 체험하는 인연을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도 어지간한 일은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 전에는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마음이 닫혀 있고 순결치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소가 끄는 수레는 연각승(緣覺乘)의 상징이다.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단계이니 달리 벽지불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스스로의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불이 나자 곧바로 불이 난 줄을 알고 집 밖으로 나간 아버지처럼. 그러나 중생은 불길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화상의 위험에서도 집안의 유희를 뿌리치지 못한다. 수레라는 선물이 있기까지는 불난 집을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소가 끄는 수레는 보살승(菩薩乘)의 상징이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연기적 질서를 다 깨치고 그 궁극의 공함을 체득한 단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성문 연각 보살승의 단계는 결국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라는 것이 〈법화경〉 방편품의 핵심이다. 그래서 ‘화택의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커다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선물한다. 이 흰 소를 ‘대백우(大白牛)’라 하는데 일불승(一佛乘)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성문 연각 보살승의 다 회통하여 들어가는 깨달음의 자리 말이다.

이 ‘화택의 비유’는 선종의 선사들도 많이 인용했다. 마음의 불길을 잡지 않고는 무애해탈의 대도를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불길에 갇힌다. 마음을 잘 다스려 불을 내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뚝불뚝 솟구치는 불길을 끄는 지혜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소개한 벽화는 천안 만수사 관음전 왼쪽 벽에 그려진 벽화다. 비유를 알고 보면 화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http://www.ggbn.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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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신)중에 神 最高神(최고신) Supreme God께서 오셨습니다. 제법 도닦았다는분만 보세요.
인터넷서점 책소개 ; 조상령, 天宮(천궁), 天(천), 도통천존하강, 생사옥새 등,
갱소년은 신과함께 천수장생 책을 보시구 지구상 어디에두 갱소년하는데 없습니다. 天宮외에는
세상을 말씀으루 창조했는데 곧 振動(진동), 波動(파동)을 말하구 저승, 사후세상은 理論物理學(이론물리학)을 알아야 이해하며 40권짜리책 生命의 實相(曲九雅春 著)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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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s budda adam(=환웅)
환웅; 桓雄天皇(환웅천황,아미타불, adam) 제왕운기, 삼국유사참조
검색창, 유트브, kakao tv에太上神人(태상신인),그리스도 미카엘, 유란시아, 그리스도 미카엘 아톤, 한민족의 비밀과 사명이라구 치세요, 천황국 카페 ,정도령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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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종교에 남아야 되는지 각자 조상님께 기도루 물어보세요. 저승에서 (시장 통 등의) 나와바리 조폭귀신에게 얻어터지구 동물령에게도 도망다니며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폐지줍구) 먹을 게 없어 쓰레기통 뒤지는 헐벗구 주린 배를 움켜쥔 구슬피 울구있는 조상님들을 먼저 입천제(천도제)로 구원해야 자신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지구상 모든 종교 550만개가 전부 사이비이구 종교자체가 사이비입니다. 시간 얼마없습니다. 태을주말구도 말세에 적절한 좋은 주문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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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천도제해도 좋은 곳으로 못가는 이유는?
영가 천도는 딱 한번이면 된다. 매년 또는 수시로 행하라구 하는 건 그들에게는 가족과 부모 조상령들을 구해 줄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 사기친 것이다. 종교인과 인류 모두가 죄인이기에 天宮(천궁)에 와 유일한 죄사면권자이신 천상의 절대자께 죄를 빌지 않구는 누구도 천상으로 올라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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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죄루 인해 벌받은 질병,죽은 가족,부모,조상님들루 인한 질병,악귀 잡귀 귀신들루 인한 질병,인간으루 인한 질병의모든 우환과 질병,불운,비운,사업실패,가정불화,우울증,불면증,각종 질병원인이 자신,가족들,집안,차안에 수십에서수천의 귀신들이 들어와 동고동락하는데 눈에 안보여 모르구 질병과 인생 풍파는90%가 조상령과 귀신들 때문이다. 해서 귀신퇴치해야하구 조상을 먼저 구해야 지 인생이 편해진다.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 불안초조, 인생이 답답하구 막혀 각종 질병과 온갖 풍파가 몰아치는 건 조상님들이 북극성에서 죄를 짓구 지구루 내려 왔는데 북극성 기운을 못받았기 때문이구 허면 만사불통이구 귀신들이 무수히 침범해 병마,풍파, 인생의 아픔,슬픔,고통,불행으루 이어진다. 해서 죽어서 말 못하는 부모, 조상령들의 원과 한을 먼저 풀어드려야 한다.

허구 말세에 종교인들부터 심판한다는 말은 하늘을 사칭하며 하늘의 고유영역 침범해 수많은 인간, 조상, 영혼, 신명들을 울리구 사기쳤기 때문이다.기존의 종교인들을 통해선 아무두 천상으로 돌아갈수 없다.
전생에 누구에게 무슨 죄를 어떻게 짓구 지구로 내려왔는지 알아야 죄를 빌 것 아닌가? 여긴 전생의 죄가 무엇인지 천상입천 의식 때 낱낱이 밝혀주구 필요시 전생록을 뽑아줄 수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