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문명

조로아스터 2015. 7. 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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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경제학의 정책적 폐해 두 가지


2012-01-15 

글쓴이 : 최용식(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현 주류 경제학의 이론체계는 정태적 균형론에 입각해 있다. 쉽게 말해, 경제는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설령 일시적으로 균형에서 이탈하더라도 신속하게 복귀한다는 가설 위에 현 경제학이 성립해 있는 것이다. 이 가설은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그 극복을 위한 시도 역시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비록 매번 실패했지만.


최근에는 경제심리학(혹은 행동주의 경제학), 카오스경제학(혹은 복잡계 경제학), 진화경제학 등이 대두하여 경제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런 각각의 분파를 종합하여 복잡계 경제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론전개가 심미적으로 아주 뛰어나다. 현 주류경제학에 못지않아서 뛰어난 학자들이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으로는 실용성이 거의 없다.


복잡계 경제학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경제학이란 경제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 반복적인 경제현상에서 법칙성을 추출해내고 그 법칙성을 이론화한 것이 경제학이라면, 최소한 반복적인 현상은 얼마든지 예측해낼 수 있어야 하건만,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예측을 미리부터 포기하고 만 것이다. 예측이 자꾸 실패하더라도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장차 발전할 여지라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설령 ‘경제란 원천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수용하더라도, 복잡계 경제학이 경제현상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도 의문이다. 경제심리학, 카오스경제학, 진화경제학 등이 해명해내는 것들은 거의 모두 특수한 현상일 뿐 일반적이지 않으며, 해명해내는 특수한 것들조차도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하거나 심각한 일은 아니다. 이 점이 복잡계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대표적인 반증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 가장 심각하고 가장 중요한 경제현안은 무엇일까?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계 경제학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심리학, 카오스경제학, 진화경제학은 과연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을까? 그런 실적이 과연 있을까? 복잡계 경제학을 신봉하고 추구하는 경제학자들조차 고개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정태적인 균형이론이 문제라면, 문제의 해결책도 그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찾아질 수 있다. 일단 정태적인 균형이론이 빚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두 가지를 살펴보면, 경제학이 추구할 방향을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금융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케인즈 경제학의 문제점이다. 후자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케인즈 경제학은 재정지출(혹은 재정적자)의 확대가 승수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를 살려낸 역사적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공황 직후에 펼쳐졌던 미국의 뉴딜 정책이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만 성공했을 뿐이다. 만약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면 대공황이 10년 이상 지속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는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다. 재정지출이 계속 증가하여 국내총생산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부채가 지나치게 커지면 국가, 왕정, 정권 등이 무너졌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는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 확대가 멈추면 역승수 효과가 나타남으로써 경제 성장률은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 확대로 이룩한 성장률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증가율 역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재정정책이 필요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경제가 악순환에 빠져들 때에는, 그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책적 수단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해, 경제질병에 걸렸을 때의 처방약으로서는 아주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펼칠 때는 악순환을 막아낼 수 있을뿐 경제를 궁극적으로 살려낼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마디로 케인즈 경제학은 원천적으로 틀렸던 것이다. 또한 이걸 수십 년 동안 믿고 그걸 현실에서 정책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그 결과도 참혹했다. 케인즈 경제학을 가장 충실하게 따랐던 1950~60년대의 미국과 영국은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 ‘고(高) 물가와 저(低) 성장’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 바람에 패전국이던 독일과 일본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케인즈 경제학은 왜 틀렸고, 현실에서는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균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대전제’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속하게’ 균형이 이뤄지므로 시간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갈 경우에는 재정지출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고 말았다. 경제학의 진화는 이 대전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서 그 계기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경제를 올바르게 읽어내고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다(복잡계 경제학 역시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재정지출 확대의 효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즉, 총수요의 관점에서는 성장률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만, 총공급의 관점에서는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총수요의 관점에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성장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총수요 함수에 재정지출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총공급의 관점에서는 재정지출은 다음과 같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재정지출은 생산성이 낮아서 민간부문이 외면해온 부문에 주로 투입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정된 국가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더 많이 투입될수록 국가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평균적인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한계 생산성을 더욱 크게 떨어뜨린다. 한계효용이 가격을 결정하듯이 한계생산성이 소득을 결정한다고 보면, 재정지출 확대는 국가경제의 소득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정지출 확대가 경기를 살려낸다는 케인즈 경제학은 경제를 총수요의 관점에서만 접근했기 때문에 대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수요와 공급이 항상 균형을 이룬다는 현 주류경제학의 전제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요과 공급이 항상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총수요의 관점을 살폈으면 총공급의 관점을 굳이 추가로 살펴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총수요와 총공급은 항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경기의 상승과 하강이 자주 교차한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먼저 찾았어야 했다. 그래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최용식과 그 친구들의 경제학’처럼 말이다.


실제로 수요와 공급은 전혀 다른 동인(動因)으로 작동한다. 즉, 수요는 효용이라는 동인에 의해서, 그리고 공급은 이익이라는 동인에 의해서 작동한다. 그래서 특정 현상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이거나 정반대다. 예를 들어, 가격이 오르면 수요자는 싫어하지만, 공급자는 좋아한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이 항상 균형을 이룰 수는 없다. 동인이 서로 다른데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항상 균형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저 균형을 지향할 따름이다. 모든 경제현상은 수요와 공급의 두 관점에서 따로따로 살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도 살펴보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측해낸 경제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상당히 진척된 뒤에도 지금처럼 심각한 경제난을 불러오리라고 진단한 경제학자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경제학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그렇다. 경제학계는 이렇게 심각하고 중대한 사태의 전개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무능했던 것이다.


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면, 해당 학계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당연히 먼저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이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 현재의 사태를 일으켰는지 살폈을 것이다. 원인과 전개과정을 알아야 현재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어떤 대책을 펼쳐야 효과적일지도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태가 장차 어디로 흘러갈지를 가늠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계에서는 이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의 주류경제학은 ‘경제는 신속하게 곧 균형을 이룬다.’는 대전제에 얽매여 원인과 전개과정을 따질 필요가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균형을 이루는데 원인과 전개과정을 따질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경제학계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파생금융상품, 그린스펀 버블, 금융시장 규제완화 혹은 신자유주의, 급속한 금융시장 발달, 과도한 국가부채, 부도덕한 금융인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근본 원인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결과에만 주목하여 그럴싸한 원인처럼 보이는 것들을 내세웠을 뿐이다. 만약 위에 열거한 것들이 근본 원인이라면 그것이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서 현재와 같은 결과를 빚었는지도 함께 따졌어야 했지만 그런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반복하거니와, 정태적 균형이론을 대전제로 삼고 있는 현 경제학이 그 전개과정을 살펴볼 이유가 없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그것들은 근본적인 원인이 결코 아니다. 반증 사례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위기는 파생금융상품이 융성하기 전에도 세계 도처에서 여러 차례 발생했다. 세계대공황 등의 역사상 나타났던 경제공황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를 전후하여 발생했던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뉴질랜드와 호주의 금융위기는 파생상품과 전혀 상관이 없다.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변수였을 따름이다. 월가의 시위대가 주장했던 부도덕한 금융인들도 마찬가지다. 부도덕한 금융인은 과거부터 쭉 존재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갑자기 금융위기를 일으키겠는가.


그린스펀 버블 역시 마찬가지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너무 크게 낮춤으로써 주택대출이 급증했고, 그 바람에 주택가격 거품이 발생했다가 꺼지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 주요 비판내용이지만, 이것도 근본 원인은 아니다.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5년과 2006년에 이자율은 낮췄던 것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지역을 초토화시킴으로써 자칫 미국경제 전체가 악순환에 빠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2001년에 이자율을 대폭 낮췄던 것은 나스닥시장 폭락과 9·11사태로 빚어진 경기후퇴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자율을 낮추지 않았더라면 악순환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97년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서 외환위기가 터져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1998년에는 러시아가 디폴트(지불유예)를 선언했고 곧이어 LTCM이 파산하며 미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또한 1995년에는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당했고, 이것이 중남미 국가들로 전염되고 있었다. 더욱이 1987년에는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20% 넘게 하락하여 하루 하락폭으로는 대공황 직전보다 두 배나 더 컸었다. ‘1929년의 재현?’이라는 제목이 신문 1면에 등장했을 정도로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이런 모든 사태들을 헤쳐 나가는 데에 그린스펀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당시 재무장관이던 루빈도 재임 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약 위와 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이 찾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경제공황이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반면에 그린스펀은 여러 경제적 난제들이 연이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래 초장기 경기팽창국면을 연출했다.


무엇보다, 2006년1월에 퇴임한 그린스펀에게 2007년 하반기에 터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치다. 2년 가까이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거의 모두 경기팽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었지 않은가. 당시 불름버그 서베이에 응답한 76명의 경제전문가 중에서 경기후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성장률이 3%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거의 모두 예측했다.


셋째, 금융시장 규제완화 혹은 신자유주의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들은 규제 완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속하게 펼쳤었다.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나라일수록 금융위기를 더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 1990년을 전후하여 금융위기를 겪었던 뉴질랜드와 호주의 경제상황을 비교하면 신자유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 말에 금융위기가 터졌던 뉴질랜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경제난을 겼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고, 0%대 성장률을 기록했던 1987년부터 따지면 1993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극심한 경기부진에 시달렸었다. 반면에 호주는 1990년 초에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불과 2년 만에 경제난을 벗어났었다. 결국 뉴질랜드는 40만 명이 넘었던 공무원을 10만 명 아래로 줄이고, 감옥과 조달청까지 민영화하는 등 호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2000년대 중반까지 비교적 장기간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넷째, 과도한 국가부채 역시 근본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부채가 급증했던 것이 일반적이다. 즉 국가부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셈이다. 끝으로, 금융시장의 급속한 발달 역시 금융위기의 원인은 아니다. 금융시장의 발달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일 따름이다. 만약 금융시장의 발달을 억제하면 경제성장이 억제당하고, 이에 따라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난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 빤하다.


정리하자면, 위와 같은 원인분석들은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만 주목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그 전개과정은 물론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글로벌 금융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만약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면, 중대한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 따라서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변수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면 근본 원인은 이미 찾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부터 그것을 따져보자.


미국 부시 정권은 무주택자 550만 명에게 주택을 공급하기로 하고 각종 지원정책을 펼쳤다. 이것이 가장 먼저 나타났던 경제변수였던 것이다. 550만 채라는 엄청난 주택이 순조롭게 팔리기 위해서는 각종 지원정책을 펼쳐 주택경기를 부양해야 했고, 그 바람에 주택가격이 급등했으며, 이렇게 나타난 주택경기의 과열이 거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중요한 원인이 하나 더 있다. 감세 정책과 이라크 전쟁 등에 따른 재정지출 급증이 재정수지를 급속하게 악화시킨 것이 그것이다. 그 바람에 국채발행이 급증했고, 시장금리를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시장금리가 급등하자 취약계층에게 주택담보 대출을 해줬던 서브프라임모기지는 부실화됐고, 그것이 포함된 파생금융상품은 가격이 급락했다.


그 결과 신용창조의 역과정인 신용수렴 현상이 일어났고, 통화량이 급속하게 수축되었다. 그래서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했던 것이다. 특히 세계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고,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두 은행이 부도 및 파산을 당하면서 신용수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던 것이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조차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신용수렴은 심각했다.


그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빚은 미국의 금융위기는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전했을까? 미국의 금융위기 직후에 라트비아, 폴란드, 헝가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등 세계 곳곳에서 외환위기가 빈발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신용창조의 역과정인 신용수렴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신용수렴의 과정에 들어가며 세계경제의 통화가 축소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국제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던 국가들도 그동안에는 외채를 비교적 쉽게 빌려올 수 있었지만, 신용수렴에 따라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가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고, 국제수지 적자가 큰 나라들은 당연히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생했던 것이 라트비아, 폴란드, 헝가리, 아일랜드, 그리스 등의 외환위기였던 것이다.


위와 같이 원인과 전개과정을 따지는 일은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던 경제변수가 있었다고 쉽게 판단할 수 있으며,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던 경제변수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 중대한 사태의 원인은 이미 찾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 경제학의 정태적 균형이론은 이런 아주 쉬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부터 먼저 밝히자면, 금융위기는 하나의 중대한 경제질병이라고 보는 게 옳다. 현실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종종 병에 걸리듯이 건강한 경제도 종종 금융위기를 겪는다. 폐암 전문의사도 폐암에 걸리듯이, 금융위기를 여러 차례 겪고 잘 아는 나라에서도 금융위기는 터지는 것이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가장 막강한 경쟁력과 성장력을 갖췄던 나라도 금융위기를 겪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는 온 세계에서 ‘일본을 배우자. 일본 기업을 배우자,’라는 열풍이 불었을 정도로 일본의 경쟁력과 성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금융위기가 터졌다.


도대체 경제의 질병인 금융위기는 왜 터지는 것일까? 사람의 질병과는 다르게, 그 원인이 크게 두 가지로서 비교적 단순하다.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이 거품을 일으켰다고 붕괴되는 경우국내경기가 과열되어 국제수지가 지나치게 악화되는 경우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원인이 빤하다면 금융위기도 비교적 쉽게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비교적 쉽게 예방을 해낼 수 있다면 금융위기를 경제질병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어느 수준이 거품이고, 어느 수준이 과열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경기진단이 누구보다 뛰어났던 그린스펀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뛰어난 경기진단을 바탕으로 선제적인 금리정책을 펼침으로써 미국 경제가 초장기 경기팽창 국면을 누릴 수 있도록 했지만,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던 적이 다음과 같이 두 차례나 있었던 것이다.


먼저, 1996년 10월 중순 그린스펀은 기업연구소 연례 만찬에서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1990년대 초에 3천을 넘나들던 다우지수가 1996년에는 6천에 육박했으므로, 거품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해도 좋을 법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시장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다우지수가 1997년에는 7천을 넘어섰고,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디폴트까지 겪은 뒤인 1999년에는 1만도 넘어섰으며, 나스닥 시장의 붕괴를 겪은 뒤인 2천년대 중반에는 1만4천까지 넘기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우지수 6천은 거품이 결코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다우지수가 한 때 8천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도 1만2천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따라서 다우지수가 1만을 넘어섰던 것도 거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부동산시장의 거품에 대한 그린스펀의 경고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12월에 열린 금리조정을 위한 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모기지’라는 단어가 40번이나 언급되었을 정도로 그린스펀은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심각하게 여겼다. 2002년 4월에는 의회에 출석하여 ‘현재의 주택시장이 상승하는 추세는 주택가격이 버블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고 직설적으로 경고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주택가격은 2006년까지 꾸준히 올라 당시보다 거의 두 배나 더 상승했다. 2001년과 2002년의 주택가격은 거품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낮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만약 1996년에 주식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금융긴축 정책을 펼쳤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만약 2002년에 주택시장의 거품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금융긴축 정책을 펼쳤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 뒤로도 2006년까지 4년 이상 이어진 경기팽창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며, 미국 국민의 경제생활은 그만큼 윤택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학자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은 이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일은 어느 무엇보다 어렵다고 보는 게 옳다.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얼마나 빨리 처방하느냐가 관건일 따름이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처방이 너무 늦게 이뤄졌고, 경제질병이 이미 상당히 어려운 지경까지 진척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는 세계 경제체제를 무너뜨릴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으나 다행히 지금은 차츰 치유되는 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병에 걸렸다가 회복되는 과정에는 후유중과 합병증이 나타나 건강이 다시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듯이, 세계경제도 다소 우여곡절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과정에서 정책적 실패가 또 벌어진다면 이 경우에는 진짜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현재의 경제학에는 경제병리학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현 경제학에는 병리학이 없는 것도 현 경제학의 중대한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경제는 잠시 균형을 이탈하더라도 신속하게 회복한다.’는 대전제가 원인과 전개과정을 외면하게 하여 발생시킨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살펴보자. 유럽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살펴볼 의의는 충분하다. 그 원인과 전개과정을 잘 따져보면 어떻게 대처해야 바람직했는지 알 수 있으며, 향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가늠할 수가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게 바로 경제병리학적인 진단과 처방인 것이다.


도대체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왜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까? 한마디로, 원인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처방이 적절치 못했고, 그래서 마냥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내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해열제를 먹으면 체온이 내려갈까? 만약 급성 간염에 걸려 체온이 올랐다면 해열제만으로 체온이 내릴까? 그렇다, 급성 간염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봉착했던 근본원인을 먼저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근본원인에 관심을 기울인 경제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재정위기’라는 용어부터가 적절치 않다. Financial Crisis를 우리말로 재정위기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Financial이란 단어는 ‘재정’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금융’이라는 뜻으로 훨씬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금융위기라고 번역하는 게 옳다. 해외 경제학계 역시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재정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 역시 잘못이다.


금융위기는 외환위기가 금융시스템 위기를 부름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금융위기를 Twin Crises 즉 쌍둥이 위기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경제위기 역시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됐다. 그럼 그리스 금융위기는 왜 발생했을까? 우리나라가 십여 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와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했고 그 전개과정도 비슷했다. 외환위기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하면서 발생했던 것이다.


물론 금융시스템 위기는 단독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1929년 미국에서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나, 1990년 일본에서 부동산시장이 폭락하며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그리스는 주가나 집값이 먼저 폭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외환위기와 금융시스템 위기가 거의 동시에 나타난 전형적인 금융위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 경상수지 적자는 2008년에 GDP 대비 무려 13.6%에 달했다. 이처럼 국제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전형적인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그리스는 유로통화체제에 가입하여, 유로를 화폐로 쓰기 때문에 그나마 잠시 버틸 수 있었지만, 유로화가 끊임없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해하기 쉽게 또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 몸에서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활동이 둔해지고, 10% 이상 빠져나가면 목숨을 잃는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돈과 금융기관은 우리 몸의 피와 혈관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국제수지 적자가 지나치게 컸고, 그 바람에 혈액 역할을 하던 돈이 너무 많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는다.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크게 줄었으니, 당연히 은행 등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시스템 위기의 시작이다.


우리 몸의 심장 등 혈관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경제의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하면 경제활동은 빠르게 후퇴한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득도 줄어든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수지와 가계의 경제사정은 악화되고, 은행은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져 더 큰 위기에 봉착한다. 경제난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조세수입도 줄어들고, 재정수지도 악화된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그리스 재정적자는 최근에 더욱 급증하여 국내총생산의 10%를 넘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10년 만기 국고채의 이자율은 무려 20%를 넘어선지 오래다. 10년 후에는 원금의 7배 이상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그리스 재정위기는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제는 1년물 국고채 이자율이 380%를 넘어섰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몸의 질병도 그렇지만, 그리스 정부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지금처럼 경제난이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는 우리나라 외환위기 극복을 들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흔히들 단군 이래 최대 난리, 즉 환란이라고 불렀다. 경제전문가들과 주요 언론들은 막 출범한 국민의정부에 대해 ‘5년 안에 환란만 극복해도 역사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기록할 것’이라고 당부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외환위기는 심각한 사태다. 실제로 1980년대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중남미 국가들은 10년 가까이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는 물가가 한 해에 5천 퍼센트 이상 오르기도 했고, 경제난은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불과 1년 만에 극복했다. 고갈 직전이었던 외환보유고를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지 1년 만에 과거 최고 수준보다 두 배나 더 많이 쌓았고, 경기 회복도 세계사에서 가장 빠르게 이뤄냈다. 국부유출이나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빈부격차 악화 등 부작용과 후유증도 세계사에서 가장 적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보자면, 1976년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영국은 경제난이 거의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사회혼란도 심각했다.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철강산업, 석탄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은 거의 모두 초토화됐고, 살아남은 기업들마저 대부분 소유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극복을 반증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을까? 그것은 맞불 작전이었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는 맞불을 놔서 진화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극복했을까? 1998년 성장률이 -5.7%로 떨어졌는데, 이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장률이 이렇게 뚝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 수요가 줄어들어 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1998년 경상수지는 약 43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의 외환보유고보다 두 배나 많은 흑자를 한 해에 남긴 셈이다. 이로써 외환보유고 고갈사태는 완벽하게 벗어났다.


남은 것은 경기 회복인데, 이것도 급격한 경기하강이 실현시켰다.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김대중 정권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1/3을 파산시키거나 합병시켰고, 부실기업도 3만 개 이상 정리했다. 정부와 정부산하기관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경제의 공급능력이 크게 줄어든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때이므로 국내 경기는 이미 하강하고 있었고, 기업의 경영수지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경제난이 지속되면 겨우 살아남은 기업들도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도산할 기업과 은행 들을 미리 도산시킴으로써 공급능력을 선제적으로 위축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총수요도 줄고 있었지만, 총공급이 더 빠르게 줄었다. 그래서 총수요가 총공급보다 더 많은, 즉 살 사람은 더 많고 팔 사람은 더 적은 공급자 시장이 조성된 것이다. 공급자 시장이 조성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 사려고 할 것이므로, 기업은 재고비용, 판촉비용, 수송비용 등을 아낄 수 있게 된다.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기업의 경영수지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면,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고용을 더 늘려야 하고 시설투자도 증가시켜야 한다. 우리 경제는 그렇게 경기를 회복시킴으로써 외환위기를 불과 1년 만에 극복했던 것이다. 실제로 1999년 성장률은 무려 10.7%를 기록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도산하여 공급능력이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이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IMF 요구가 가혹했다 혹은 IMF 요구를 거부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당시의 외환위기를 IMF위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틀렸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1982년 외환위기를 맞은 멕시코는 미국과 IMF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여기에는 멕시코 반미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멕시코는 19세기 후반에 미국과의 전쟁에서 캘리포니아 등 국토의 1/3을 잃었었다. 반미감정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랜 협상 끝에 멕시코는 외채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까지 일부 탕감 받았다. 그러나 3년 동안이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물가상승률이 백 퍼센트 내외에 이르는 등 극심한 경제난이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경제난이 이렇게 심화되고 장기화하자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당연히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멕시코는 1995년에 또 외환위기를 겪는다. 이때는 과거의 씁쓸한 경험을 되살려 IMF와 미국 요구조건을 즉각 받아들였다. 원금 탕감은 물론이고 이자 탕감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고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단행했다. 그래서 2년여 만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경제란 이렇게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지는 정책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제법 많다. 따라서 모든 경제문제는 통계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스도 우리나라와 멕시코가 성공했던 정책을 진즉 받아들였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실패했던 정책을 고집했다.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하다. 1년 만기 국고채 이자율이 380%에 달할 정도로 재정위기가 심각하다. 그동안 꾸준히 개선되어 3%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수지 적자의 대GDP 비율이 수출기업들까지 도산사태를 맞으면서 8%대까지 다시 상승한 것이 드디어 악순환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1980년대에 중남미 국가들이 장기간 겪었던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최근 글로벌 위기가 터진 직후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다른 나라들을 보더라도 그리스가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라트비아, 폴란드, 헝가리,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루마니아 등도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 나라들은 IMF 구제금융 조건을 비교적 신속하게 받아들였고, 지금은 그리스보다는 경제사정이 훨씬 양호한 편이다.


그리스 경제위기가 이미 악순환에 들어갔다면, 과연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발전할까? 그리스가 장차 취할 경제정책이 그것을 판가름할 것이다. 그리스가 이제라도 경제를 살려낼 거의 유일한 길은 1990년대 중반에 뉴질랜드가 경제위기를 돌파했던 길을 뒤따르는 것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뉴질랜드가 그랬듯이, 공무원 숫자를 1/10로 줄이는 등 강력한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글로벌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다행이 경제정책만 실패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판단이다. 실제로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9~10% 대의 성장률을 지속 중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시 지난 1997년 말에 단군 이래 최대 난리라던 ‘환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바가 있지 않은가.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LTCM이 도산하는 등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10.7%와 8.8%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야 우리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1980년대 초에 세계적인 경제난을 극복했던 역사적 경험은 오늘에 되새겨야 할 아주 좋은 교훈이다. 외환위기에 처한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디폴트(지불유예)를 선언하고 미국의 대형 은행들마저 도산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전반적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어야 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인 경제난을 무난히 극복하고 1980년대 중후반에는 소위 ‘3저 호황’이라는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냈었다. 따라서 이때에 성공으로 이끌었던 경제정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1970년대 말에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위기가 심각하게 전개되었으며, 때를 맞춰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지고 정변까지 겹치자 1980년의 성장률은 -3.7%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경기를 살려낸다는 미명 아래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그 증가율을 1980년 37.4%와 1981년 29.3% 등을 기록하게 했지만, 국내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고 국제수지 적자만 눈덩이 구르듯이 커졌다. 외채를 대규모로 들여와 외환보유고 고갈사태는 어렵사리 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2년에 터졌던 멕시코의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것이 곧바로 우리나라에 전염되었다. 그 결과로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경제신탁통치라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를 개선시킴으로써 외환위기를 탈출시키고, 구제금융도 상환 받아야 했던 IMF는 우리 정부에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그래서 재정지출 증가율은 1982년에 4.4% 그리고 1983년에는 6.1%로 억제 당했다. 그러자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재정을 극단적으로 긴축시켰던 첫해인 1982년에 성장률이 오히려 크게 상승하여 7.6%를 기록했고, 1983년에는 성장률이 11.5%로 더 높아졌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1980년 28.7%와 1981년 21.3%에 달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획기적으로 안정되어 각각 7.1%와 3.1%를 기록했다. 간단히 말해, 강력한 긴축정책이 당시의 경제난을 일거에 해소시켜버린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로서 재정긴축이 경제를 살려낼 유력한 방법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반복하거니와, 수요 측면에서 보자면 재정 긴축은 경기를 후퇴시키는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고, 재정 팽창은 경기를 살려내는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공급 측면에서 보자면 재정지출은 국가경제의 생산성을 낮추고 경기마저 하강시키는 역할을 한다. 재정지출은 생산성이 낮아서 민간부문이 외면하는 분야에 주로 투입되므로 국가경제의 평균적인 생산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한계생산성은 더 크게 낮아짐으로써 국내경기를 하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민소득을 결정하는 것은 한계생산성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정된 국가자원을 생산성이 낮은 분야에 소모하면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은 당연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재정지출을 축소시키는 것이 경제를 살려내는 첩경인 셈이다.


다만 세계경제의 동향에 대해서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경제의 여건도 우리 경제에는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라톤을 2시간 10분 이내에 뛰는 아주 뛰어난 마라톤선수도 오르막에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만약 무리를 하면 머지않아 탈진하고 만다. 따라서 국제경제 환경이 어렵다면 성장률을 낮춰 경기과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끝)

출처 : 이가(利家)생각
글쓴이 : 이가(利家)생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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