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8. 3. 30. 16:10

문제란 무엇일까? 우리말 문제(問題)는 한자로 물을 問, 제목 題라는 뜻입니다.

사전적 해석은 강아지 지꼬리잡기라는 식입니다. 

사전의 풀이로서는 낱말(個文言)의 살아있는 뜻은 잡을 수 없죠.

글(낱말)을 다루는 이(글꾼)들의 같은 고민이 그런 것이겠지요.

겨울 고드름같은 사전적인 해석을 어떻게 해야 보달보달한 봄풀같이 살아 있는 감각이 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소설 蘇紲(되살아날 소, 고삐 설. 고삐가 무엇이기에 실 사에 인간 세를 더해서 표현을 했을까요? 고삐란 것이 끈으로  十 세 개를 뭉친 것처럼 흩어진 것들을 모으는 기능을 뜻하겠지요 날아 흩어지는 것을 잡아놓는 기능을 고삐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내겠지요.


물을 제목이라니..「물을 」 은 뭐며 「제목 」은 뭐죠? 라고 저는 묻게 됩니다.

개체어(낱말)들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물었다가 늘 사악한 사탄 같으니라고 믿음이 없는 것 같으니라 고 호통을 당하곤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면 저의 이런 소분화, 개체화한 작은 물음에 답을 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이고, 답을 얻지 못하면서 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구나 알게 된 것이고

아하..이런 것은 개별적인 유전자에 새겨진 시스템의 특성이구나 인식하게 됩니다.  

저 처럼 드러내놓고 되묻는 사람이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저 홀로 그 답을 찾아가는 이들은 늘 있는 법이다는 것은 압니다.


사전을 보는 사람은 사전적인 정의라도 나열하지만 사전적 정의라도 아는 사람은 글을 쓰는 이들이 먹고 살기위한 도구이기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예의이겠지만 명함에 덧붙이기 학력조항이 빵빵한 사람들도 소분적으로 물으면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한 답을 망설입니다.

뭔가 알듯도 한데 풀어 밝힐(설명) 자기만의 지문을 입혀놓은 언어가 없는 것이지요 어휘력없음이라고도 달리 표현을 하나요. 언어감각이 없다는 것이 예수가 말한 죄지요.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의 대상은 말이거든요. 말을 씀하는데 그 말씀이 쓰임의 이치를 알고 해야 하는데 모르고 한다...이게 죄라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규명한다고 기도도 많이하고 ..했습니다만 이제 아주 쪼끔은 가름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언어가 가진 본질적인 감각, 처음의 온도를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이라고요.

물을 問. 물을은 뜻(내용)이며 문은 그릇입니다. 물을이라는 뜻을 담은 그릇이 問이다는 것이지요.

허면 問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을이라는 내용이 무엇이였나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빈그릇으로 상 가득 차려 놓아야 배고픔은 채울 수 없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빈그릇(문장)으로 상을 차리는 일이라고 됩니다. 상차린 이도 뭔가 부족하고 돈으로 상차림(책)을 산 이도 뭔가 부족하고 목마름의 노예가 된 탄탈로스라고 표현을 하지요.

지적인 허기를 채움하려는 의지가 책을 본다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지적인 허기가 생기는 이유가 글을 말로 쓰는 과정에서 알맹이가 빠지고 껍질만 가져와서 쓰기때문입니다.

뭔가 부족함을 설명하는 신화로 탄탈로스를 가져오는데 타야 할 것일 잃어버림,

글을 말로 타면서 글에 담았던 온기를 잃어버림이라고 제가 해석을 합니다.


그릇은 남고 내용은 없는 지금 그릇에 담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복원하는 일이 題입니다.

문제라는 낱말 자체가 답입니다. 따로 정해진 답이 없고 문 問과 제 題를 풀면 문이나 제라는 그릇에 담았던 알맹이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그릇(器)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릇 크기 안에 들어가는 것은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큰 그릇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큰 그릇은 가를 쳐가면서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하기에 긴 세월이 걸리는 것도 맞지요.


물을의 물은 물勿(말 물), 物(만물 물), 沕(아득할 물)이고 을은 乙(새 을)입니다.

물을이라는 이 낱말에 보이는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物이 어떤 길(乙)을 따라 진화하여 (沕) 내 앞에서 멈추었는가(勿) 물을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빛이 보이는 색이 되는 시공이며 그 시공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問입니다.

乙을 새 을이라고 한다 해서 조류를 생각하신다면 乙의 한 부분만을 아시는 것이지요.

오리가 물에 동동 떠다니는 윗부분만 보고 을乙과 수 2를 만들었다고 이야기도 하지요.

새를 조류로 생각해서 떠 올린 발상일테지요. 새는 사이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乙이지요.


태극의 문양에서 가운데 곡선이 乙입니다. 영어로는 S 곡선을 그리는데도

동양은 좌(서)에서 우(동)으로, 서양은 동에서 서로  출발점이 다르죠.

서는 동을 통해 인식하고 동은 서를 통해 인식하는 구조.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동양철학의 출발점은 여자에게 있고 서양철학의 출발점은 남자에서 시작합니다. 동양철학의 출발은 열매(가을)에서 시작하고, 서양철학은 씨앗(봄)에서 출발한다고나 할까요. 열매는 죽음이고 씨앗은 삶이죠. 동과 서가 가운데서 합해지는 것이 間이며 問이고 聞이지요.


동양(좌수)과 서양(우수)이 가운데서 짝하고 마주침으로 입자가 생성되어 점점이 찍히고 수직이 생깁니다. 빛은 입자이며 파동이라는 물리학적인 정보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좌우손뼉을 치면 됩니다.

가운데서 생성되는 공명장을 중력(中力)이라 합니다.

성경이야기 중에서 요셉의 두 아들(에브라임[Ephraim ] ‘두 배로 열매를 맺는’, ‘풍성한’, ‘이중의 풍작..

과 므낫세 (Manasseh)


아들의 이름을 형은 ‘므낫세’라 지었고 동생은 ‘에브라임’이라 이름하였다. ‘므낫세’란 형의 이름은 ‘과거청산’을 뜻한다. 그가 겪였던 쓰라리고도 억울했던 “과거의 한(恨)과 아픔을 하나님이 잊을 수 있게 도우셨다”는 뜻이 담긴 이름. 동생의 이름인 ‘에브라임’은 ‘미래번영’. 과거지사는 흐르는 물에 띄워 흘러보내듯이 ‘므낫세’로 청산하지만 “미래는 청청하게 번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야곱이 축복할 때 우수를 에브라임에게 좌수를 므닛세에게 올렸다는 이야기 교차. 과거를 청산해야 번영하고 번영하게 되면 결실하게 되고 그것을 또 청산하여야 새로은 번영이 되고...우르보로스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며 야곱이 두 손을 어슷하여 얹고 축복을 하는 기호가 유전자 교차를 나타내는 것이구나..생각을 합니다.


동양의 乙과 서양의 S가 이중나선으로 교차하면서 정보의 길이를 담아낸 것이 物입니다. 야곱이 손의 교차 중심에는 이스라엘인 야곱이 있지요 과거를 청산하여 번영한 체험을 가진 살아있는 정보. 



이스라엘 이기는 자(수직, 입자)가 있는 것이지요. 좌우공명이 만든 입자가 발에서 머리까지를 환히 비추는 크기가 되는 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발에서 머리끝(두정)까지빛으로 채움하는 것을 구원, 그리스도의 신성을 회복함이라는 영화지요. 영화단계에 이르면 언어감각이 완전해집니다. 말에 대하여 완전한 것, 의인이 되는 것이지요. 의인이란 언어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물을 문이라는 한 글자만 자신이 풀어보려하는 의지가 생긴다면 그것에서 삶의 길과 질과 결과 골이 바뀝니다. 사이 간間과 새乙(사이 을) 사이間이 問과 문 문門자를 두고 가운데 日과 口의 차이로 물을과 사이로 나눠졌지요. 물을 문과 사이 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門을 이해함이 우선이겠지요. 외연의 문으로 아시는 것도 아시는 것이겠지만 몸에서 문을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題)입니다. 몸의 문은 7문(七竅)입니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몸의 모습에서 안으로는 눈을, 가로는 귀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매맴.....하는 듯이 들려 흉내를 내어보고 매미라고 이름하는 것이 問입니다. 맴맴하기위해서 매미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움직이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題입니다. 멍멍이라고 하는 듯해서 멍멍이라 한 것이 問입니다. 멍멍이라고 소리를 내는 멍멍이의 과정을 알아내는 것이 題입니다. 귀뚤귀뚤 하는 듯해서 귀뚤이 라고 따라해보고 이름을 한 것이 問입니다. 귀뚤..이라는 소리를 내기위해서 귀뚤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題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언어감각이라 했습니다. 물에서 나는 소리를 귀가 듣고 눈이 보고 입에서 따라해보는 것이 물을 문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때 했던 과정입니다.

세종만 하고 다른 사람은 안하면 세종만 문제를 푼 사람이지 다른 사람은 여전히 무지한 그대로 입니다.

세종이 궁녀들과 발성체계를 풀었으면 동일한 구조를 가진 나도 발성체계를 따라 풀어내면 됩니다 세종의 훈민정음은 세종의 문제풀이였지 지금을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아야하는 것이지요.

붓다의 사리(가르침)는 붓다의 것이고 예수의 보훈(말씀)은 예수의 것이고 세종의 훈민정음은 세종의 것이지 지금 나에게 어떤 인과(유전자기호)로 연결이 되는지를 알아내어야 하는 것이 문제라는 낱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저마다 유전자 기호의 길이가 다릅니다. 붓다에서 멈춘 자, 예수에서 멈춘 자, 세종에서 멈춘 자...

저마다 유전자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와 꿈도 다른 법입니다. 외연에서 가방끈의 길이를 말하고 학력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겠지요. 외연의 가방끈길이가 유전자정보를 해독해서 풀어낸 길이는 아니니 삶을 행복하게 하는 재미나는 이야기길이가 되지 않고 그저 명함에 낱말을 언어놓은 먹물로 끝나지요.


한국어는 수직과 수평을 둥시에 수용하는 언어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가 가진 언어감각을 따라 올 다른 나라의 언어체계는 없습니다. 한국어가 만들어내는 언어감각을 題해보면 신묘막측, 영묘, 영물이라 합니다. 외연의 만물의 소리들을 다 따옴할 수 있는 언어 몸이니까요. 수직구조인 문을 수평화시키면 ㅁ ㅜ ㄴ,  기운의 총합을 의미하는 ㅁ아득한 곳에서부터 내려온 沕을 나타내는 ㅜ, 그리고 내 앞에서 고정된 정보로 ㄴ 이 되지요. 한국어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 영어가 피드백 되어야 합니다.  영어가 한국어에서 나간 것이라는 정보도 있듯이 영어를 잘 살펴보면 그 말이 맛습니다. 한자도 사실은 한국어에서 나간 것이지요. 한국어....몸(桓)나라(國)에서 만들어낸 감각(語)체계거든요


물을 問은 내가 보고 듣은 것에 대하여 그것이 정확하게 자연에서 증명하는 것인지를 입으로 발성해보아 확인하는 것이라면 제는 제목 제題 바를 시是에 머리 혈頁이 붙어서 기호로 삼고 있습니다. 문은 보고 들은 것을 입으로 따라해 봄으로 언어감각을 알아내는 일이고 제는 바를 시에 머리혈로 이뤄진 만큼 발품을 팔아 환경을 관찰함으로 생태계의 흐름을 알아내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거기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를 되짚어 가려 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것은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problem의 어원은 그리스어 problema로서 내 앞에 던져진 것’ 이란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내 앞에 던져지게 되었을까의 과정을 되짚어가게 하는 것이지요

일어난 일을 놓고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어나지 않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늘 일어난 일을 놓고 그 일을 해석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입니다. 일을 만드는 것은 모르면서 사용한 말입니다.

말을 해놓고는 결과로 일이 생기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이 만든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만물은 소리감각으로 소통을 합니다. 사람은 소리감각을 익히고 그 위에 언어감각을 놓아서 말을 부립니다.

만물보다 인간이 뛰어난 것이 소리위에 언어를 놓을 수 있어서입니다. 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말값은 말을 사용한 이에게 청구서를 올립니다. 말값을 갚아가는 것이 문제를 푸는 일입니다. 말소리를 녹음하기도 하지만 우주아카샤라고 하는 도서관 진동률에 내 성문이 헤르츠로 기록됩니다 . 지문만큼 성문도 고유하기때문에 아카샤에 헤르츠로 남은 내 성문이 모여서 결을 만듭니다. 그것을 구업, 카르마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요.

만물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진동률 헤르츠입니다. 문자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도구지만 소리라는 헤르츠는 만물의 공통소통체계입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뜻이 그 뜻입니다.

말을 소리(진동률, 헤르츠)에 태우면 말값은 반드시 있습니다.  소리는 아무리 해도 빚지는 일이 없지만

말을 하면 그 말이 생성된 어떤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 구조를 이용하는 교통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면 구업을 짓지 않겠지요. 구업이라는 것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길값을 내지 않으면 부과되는 벌금이지요.

 

건강을 건강할 때 지킨다는 것을 듣지 않으면 병나고 나서는 이미 늦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과정을 관찰해서 병을 유발하는 환경이 무엇이였나를 관찰해서 내 살이에서는 병을 유발하는 습관이 있으면 삭제하면서 사는 것이 생명을 사는 공부입니다. 무엇이 무엇을 발생할지 모르면 빚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 손뼉과 발바닥치기와 아설순치후 모음을 열심히 하면 모르고 진 말빚도 갚고 병이 들게되는 길도 막게 되고 든 병도 나가게 됩니다. 자음에 도로주행료가 붙습니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지요. 자음이거든요

문제라는 것은 알면 문제 자체가 답입니다. 손뼉 많이치고 이치를 딱 맞게 딱딱치고 설음으로 무거운 기운을 털고 순음으로 불어내면 몸은 건강하게 됩니다. 하루 천번 손뼉, 발바닥 양쪽 1000번씩, 아설순치후...훈련하면 병원하고는 상관없이 살게됩니다. 가르쳐 줘도 못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입니다. 千이라는 한자는 땀날 때까지 라는 뜻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도 손을 좌우로 내리고 쉬는 것은 잘해도 펼쳤다가 중심에서 공명장을 만드는 일은 안하는 것이 죄인들의 게으럼입니다. 가르쳐 줘도 안합니다. 수억씩 받고 가르쳐 준다면 아마 할려지도 모르지요

돈을 들였으니...아까봐서라도...해서 아무리 귀하고 귀한 비법이라도 돈을 내지 않고 들으면 값을 치루지 않았기에 실천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돈이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돈을 들인만큼 믿음이 생깁니다. 플라시보라는 것...돈의 힘입니다. 돈으로 생명을 사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투자한 돈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이 자본주의의 법칙입니다.

자신의 몸값(언어감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두르는 것에 투자하여 든 돈만큼의 가치를 스스로 누리려 합니다. 백만원짜리 티를 입으면 자신의 값이 백만원은 됩니다. 자기만 아는 가치죠

남이 보면 만원짜리와 구별의 안되어도.... 명품은 명품으로 자기가치를 만든 그 사람에게만 중요합니다.

남은 못 알아봐도 자기가 자기 멋에 즐거워하는 것이지요.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듯이요.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는 비법을 이렇게 가르쳐 줘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지요.해서 줘도 못 먹나....가 되는 것이지요.


2012년 9월 6일 11시 34분에 쓰고 2018년 3월 30일에 다시 손보다





출처 : 천부동(天符洞)
글쓴이 : 청향빛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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