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5. 12. 12. 16:52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1)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조덕영박사


고대 지명과 민족들 속에 남아 있는, 성경 속 노아 후손들(16명)의 흔적들


노아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으며 우리 민족의 조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성경 속 노아 후손들은 정말 세상 모든 민족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뿌리이자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성경은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세 아들의 이름은 셈과 함과 야벳이었다. 그리고 그 세 아들은 모두 16명의 아들을 낳았다. 대체로 성경을 살펴 보면 노아가 머물던 중동 땅을 중심으로 노아 16명 후손들의 진출로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경적 근거는 역사적 증거와 많은 부분에서 유연 계를 보여준다. 물론 좀 더 깊이 추적해 보아야 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고,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영원히 추적 불가능한 부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궤적을 추적해 보는 것은 인류의 기원과 타락과 구속의 여정을 보여주는 계시일 뿐 아니라, 인류 최고 역사서이기도 한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는 강력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성경을 기본 바탕으로 노아의 16명 후손들에 대한 역사적·고고학적·문화적·언어적·지리적 경로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인의 조상이 된 야벳(Japheth)의 큰아들 고멜(Gomer)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1-2)


고멜족은 누구인가


고멜(Gomer)은 노아의 손자들 중 처음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고멜’은 일반적으로 ‘완성’ 또는 ‘완전함’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는 노아의 자손(子孫)이요 야벳의 아들이었다(창 10:2-3; 대상 1:5-6). 일반적으로 아카드어로는 김미라이(Kimmirai)라 부르고, 고대 호머(Homer) 시대 헬라의 자료들에는 기메리아(Cimmeria)라고 부르던 사람들과 같은 족속으로 알려져 있다.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그나스(Ashkenaz)와 리밧(Riphath)과 도갈마(Togarmah)’였다(창 10:3). 에스겔서에 보면 고멜의 초기 자손들은 도갈마와 함께 북쪽 지역(극한 북방)에 살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에스겔 38:6). 이곳은 현재 신약 성경에 나오는 터키(Turkey)의 갈라디아(Galatia)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유태인 역사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던 시대인 AD 93년경에는 갈라디아인(Galatians) 또는 고올(Gauls)은 이전에는 고멜릿(Gomerites)으로 불렸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고멜족은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에 살던 스키티안(Scythians, 일명 스키타이족)에 의해 러시아 남부에서 추방당했다고 알려진다. 과거 천산산맥을 넘어 동서양의 실크로드(비단길)를 개척한 민족은 소그드(Sugd)인이었다. 아무나 비단길 상인이 될 수 없었다. 천산산맥 양편의 언어와 지리와 역사와 사회와 문화에 익숙해야 한다. 그리고 용감하고 개척 정신을 가진 상인들이어야 했다.


그들이 바로 비단길의 주인공 수구디아인이었다. 수그디아나 또는 수구디아네(Σογδιανῆ)는 현재 이란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기도 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속주(屬州)를 말하기도 한다. 수구디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로 흘러드는 아무다리아와 사르다리아 강 사이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후잔트와 케시 등과 타지키스탄의 소그드 주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 소그드인과 스키타이족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언어적 유사성으로나, 실크로드의 길목을 넘나든 족속이라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결국은 같은 족속임이 분명하다.


수구디아는 역사적으로 비록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우즈벡 지역을 관통하는 아무다리아 강과 시르다리아 강 사이(고대 폴리티메투스)의 비옥한 계곡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이들 수구디아인이 개척한 비단길에 동서양 문화의 고속도로를 놓은 것은, 놀랍게도 중앙아시아 지역 정벌에 나선, 멸망한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였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었다. 고선지는 파미르 서부에 대한 두 차례 원정을 통해 사실상 중앙아시아의 총독과 다름 없는 위치에 오른다. 또한 고선지 장군 천산과 파미르고원을 넘나든 고선지 장군이 개척한 길들은, 전쟁의 루트이기도 하였으나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중국 한지(漢紙)의 제지술이 전파된 루트였다.


비록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부대는 패배하였으나, 고선지 휘하의 병사에 의해 알려진 제지 기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를 거쳐 다마스커스까지 전파되었다. 이 제지술을 바탕으로 8세기 중엽부터 바그다드에서는 동서의 문헌들이 대량으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동서 문명의 고속도로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고멜족의 창대


고멜족은 기원전 8세기 말 경 마대(스키타이)족에게 밀려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루디아(Lydia) 왕국과의 전쟁에서 루디아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인 기게스(Gyges, B.C. 685-652)를 죽이고 왕국을 멸망시켰다. 이 루디아 왕국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고멜의 후손들 중 많은 이들이 훗날 이 교회들의 성도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고멜족들은 앗수르와 싸워 앗수르의 북쪽 지경인 우라르투(Urartu)를 점령하였으며, 소아시아 동쪽인 브루기아(Phrygia)와 루디아(Lydia) 지방에 안착하고 다시 서쪽 해안 지대 헬라 여러 성읍들과 대치 상태에서 공존하였다.


이들의 일부는 오늘날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쪽까지 이주하였다. 수 세기 동안 프랑스에 정착한 고멜의 자손들은, 이후 고올(Gaul)이라 불렸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 자손들(Gomerites) 일부는 바다 건너 오늘날 잉글랜드 웨일즈(Wales)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웨일즈 사람들은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에서 영국의 섬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에서 약 3백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에 의하면, 웨일즈의 언어도 Gomeraeg(그들의 조상인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라 불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가 된 고멜족 후손 아르메니아


이들 고멜 족의 또 다른 무리는 아르메니아(Armenia) 땅에 정착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도갈마와 아스그나스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고대 아르메니아는 지금의 터키 내륙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선교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가다. 이 나라는 12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 다대오가 선교했다. 아르메니아는 A.D. 301년 로마보다도 먼저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된 아라랏산 주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는 것은, 우연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르메니아는 작지만 대단히 독특한 국가다. 구 소련 연방 구루지아와 함께 기독교권 국가 가운데 이슬람권 국가(이란, 터키, 아제르바이잔)에 둘러싸여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 외에도 아르메니아인은 핵자기공명영상법(MRI)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으며, 근대적 성형수술법을 개발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손잡이가 하나인 냉·온수 겸용 수도꼭지도 발명했다. 유명한 구 소련의 미그기 개발자도 아르메니아인이요, 유대인이나 한국인처럼 외국에 자국인이 많이 사는 독특한 민족(총 인구 700여만명 가운데 400여만명이 외국에 거주)이다. 노아 가족이 도착한 곳이요 수도 예레반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신앙의 명산이다.


오늘날 아라랏산 주변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Turkey)의 지명은 도갈마와 언어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독일로도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게르마니(독일, 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어원적으로도 고멜과 게르마니가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고멜의 세 아들 중 또 다른 아들인 리밧에 대해 요세푸스는 파플라고니안(Paphlagonians, 아나톨리아의 북쪽 흑해 연안 지역에 살던 고대 민족의 이름)의 선조임을 밝히고 있다. 헨리 모리스는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조차 리밧(Riphath)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고멜의 후손들은 오늘날 서·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를 구성하는 주요 민족이 되었다. 야벳의 장자임이 분명한 고멜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창 9:27).


고멜족의 미래


종말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고멜족은 야벳의 다른 아들들(마곡, 메섹, 두발)과 함의 아들들(구스와 붓)의 후손들과 함께, 메섹과 두발의 왕으로 불린 곡(Gog)의 군대를 구성하게 된다(겔 38장). 이들 연합 세력은 미래의 언젠가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북방에서 쳐들어 온 이들 군대에게서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고 북방 군대는 파멸될 것이다(겔 39:3). 이들 침략자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데만 7개월이 소요되고(겔 39:11-15),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자그마치 7년 동안의 연료로 사용될 것이다(겔 39: 9,10). 도대체 이 전쟁의 때는 언제이고 7년 동안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과거 해석자들은 이 전쟁을 구(舊)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보았다.


그럼 지금은 이란과의 핵전쟁을 말할까? 섣불리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전쟁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종말의 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의 아마겟돈 전쟁을 연상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39:17-20; 계 19:17-18).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묘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에스겔서에 묘사된 전쟁 계시를 통해, 우리는 성경이 고멜족의 후손들의 미래 모습을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 고멜족을 구성하는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모습은 영적으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은 이 전쟁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과 능력을 목격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생활과 고난도 죄 때문임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겔 39:21-23). 이스라엘이든 고멜족이든 죄에 대한 심판은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들은 이스라엘사람이든 헬라인이든 어떤 이방인일지라도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누릴 것이다.


고멜 자손들이 살던 지역은 대부분 초대교회 복음의 진출로와 일치한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지금은 복음의 열정이 많이 식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멜의 후손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최초의 기독교국가를 세웠고 지금도 그 어느 민족보다도 경건한 신앙의 삶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멜의 후손들이 다시금 복음의 은총을 누리고, 하나님이 야벳의 후손들에게 셈의 복을 함께 누리게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창 9:27)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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