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11. 4. 17:53

중세 삽화로 읽는 요한계시록(3)

[기독일보=강정훈 교수] 요한은 고난당하고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전한 후에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늘 문이 활짝 열렸는데 '이리로 올라오라'는 벼락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이 하늘 구경을 하다니' 하고 놀란 요한은 즉시 올라가니 말로만 듣던 하나님이 계신 황홀한 보좌가 보였다.

옛날부터 유대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즉사한다고 믿고 있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은 시내산에서 돌에 새긴 십계명을 받은 모세뿐이다. 그러나 모세는 구름과 번개 속에서 보았기 때문에 자세한 모습을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환상이긴 하지만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보좌에 앉으신 그 분의 모습을 보고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 광경을 우리도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가.

파쿤도 베아투스에 실린 <어린 양, 네 그룹천사 그리고 24 장로들의 환상>은 사도 요한이 본 '하늘 보좌의 모습'을 삽화로 그린 것이다.

▲어린 양, 네 그룹천사 그리고 24 장로들의 환상(Vision of the Lamb, the four cherubim and the 24 elders)ㅣ파쿤도 베아투스(the Facundus-Beatus)ㅣ1047년ㅣ300mm x 245mm   ©마드리드 국립도서관(Biblioteca Nacional, Madrid)

■ ​무지개와 번개 속에 좌정한 하나님

위의 삽화 중 상층부 그림은 요한계시록 제4장에 기록된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그 분은 오른손에 일곱 번 봉인된 요한계시록 두루마리 책을 들고 있으며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 보좌와 얼굴이 너무나 눈부셔서 얼굴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둘렸으며 번개가 치고 뇌성이 들린다고 표현했다.

이 보좌 양쪽에는 그룹천사가 별들이 빛나는 아몬드 모양의 만도를라(mandorla)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만도를라는 기독교 미술에서 하나님의 전신 후광(Halo)을 말한다.

786년경 요한묵시록 주석서를 저술한 베아투스(730~800경)는 북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리에바나의 수도사로서 이 책은 종말론이 유럽을 휩쓸던 10세기 전후에 온 유럽을 흔들어 놓았다.

이 주석서는 베아투스가 죽고 난 후 10~13세기에 이슬람인의 박해 아래 살던 스페인의 여러 수도원 필사실에서 사본을 필사하면서 원본에는 없던 삽화가 곁들여졌다. 오늘날 25개 사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를 모두 합쳐서 베아투스본(本)이라고 한다. 이 삽화들은 주제는 그리스도교적이지만 표현양식은 이슬람풍으로. 이를 모사라베 예술(Mozarabic art)이라고 한다.

■ 봉인을 열고 있는 그리스도

보좌 아래의 원 안에는 십자가 아래서 어린양이 계시록 두루마리의 잠긴 봉인을 열고 있다. 어린 양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이다. 요한이 봉인된 두루마리를 열어볼 수 없어 울고 있었는데 그리스도 만이 닫힌 것을 열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계시록 제5장은 하늘보좌의 모습 중에서 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린 양 주위에는 크고 붉은 날개가 달린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과 거문고와 금대접을 든 장로들이 있다.

계시록의 이 네 생물은 에스겔서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큰 바퀴를 타고 있다.

▲하늘 보좌 앞의 예배(Worship before the Throne of God)ㅣ밤베르크묵시록(The Bamberg Apocalypse)ㅣ라이헤나우 수도원/콘즈탄츠호(the monastery of Reichenau/ Lake Constance)ㅣ1000~20년경   ©밤베르크 주립도서관, 독일(Bamberg State Library, German. public domain)

위의 삽화는 하늘보좌 앞에서 네 생물과 24장로가 그리스도에게 예배드리는 장면이다. 요한은 네 생물을 위의 삽화에서 뚜렷이 묘사한 바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 같다고 기록하였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다.(계4:6-7)"

네 생물이 하는 일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밤낮없이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일이다.

네 생물은 무엇을 나타내나?

네 생물들의 얼굴 모양은 하나님이 창조한 생물들을 대표한다. (NIV 스터디바이블) 사람에게는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었고 사자는 야생동물 중 가장 강하며 황소는 가축 중에서 가장 힘이 세며 독수리는 새 중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이다.

4 세기 후반의 성 제롬 (히에로니무스)은 네 생물과 복음서 저자를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마태복음서에는 신이 육화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므로 천사로 상징된다. 마가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광야에서 부르짖는 소리' 즉 사자의 포효만큼 외로우면서도 강력하다고 표현했다. 누가복음서는 희생제물이라는 주제를 강조했으므로 황소가 상징이 되었다. 요한복음서는 독수리의 비행과 닮은 높은 영성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독수리가 상징동물이 되었다. (주1) 제롬, 마태복음 주석서문 요약발췌문 St. Jerome - Preface to the Commentary on Matthew(summary and excerpts from NPNF2, 6.1036-37)

중세의 화가들에게는 성 제롬의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7세기의 카라바조 (Caravaggio)나 램브란트 (Rembrandt)의 성서화도 중세의 체계를 따랐으며 현대 성서화 연구자들의 사복음서 상징동물에 대한 해석은 제롬이론으로 통일되어 있다. (주2) 스테파노 추피 Stefano Zuffi , The J.Paul Getty Museum, p.12

우리나라의 길자연, 박성화, 박수암, 이요한 등 여러 목회자의 강해, 설교집에는 제롬 등 교부들의 이론이나 중세회화 흐름에 배치되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네 생물이 사복음서의 상징동물로서 교부들의 많은 논쟁과 화가들의 그림에 많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사복음서와의 실제 연관성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랭브르형제(Limbourg brothers)ㅣ밧모섬의 성 요한(Saint John on Patmos)ㅣ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Tre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ㅣ1411~16년경ㅣtempera on vellum, Height: 29 x 21 cm   ©콩대박물관, 프랑스(Conde Museum, France)

■ 이십 사 장로들의 찬미

위의 삽화는 1413-16년 랭브르(Limbourg) 형제가 제작한 <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에 실린 밧모섬의 성 요한이다. 나팔소리 같은 계시의 음성을 들으며 요한이 기록하고 있다. 요한 옆에는 요한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봉인 열쇠를 물고 있다.

네 생물 옆에는 이십 사 장로들이 있는데 그들은 하늘 보좌에서 천사보다 높은 제사직이다. 장로들은 어린 양 앞에서 경배하며 거문고를 들고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나이다"하며 찬미와 새 노래를 드린다. 특히 장로들이 들고 있는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중요한데 향은 인간들의 기도로서 주께 전하는 역할을 한다.

24장로는 구약의 12 족장과 신약의 12 사도, 또는 제사장의 24 반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초록색 별이 빛나는 보좌 가장자리에는 많은 천사들이 찬송하고 있다.

▲강정훈 교수(전 조달청장)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는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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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8. 24. 16:54

 

3년 반 (한때 두때 반때)

 

 

 

성경에는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일천 이백 육십 일(1260일), 혹은 마흔 두 달(42달), 삼년 반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모두 동일한 용어이며 동일한 기간이다.

이 용어는 주로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계시록에서 나타나는데, 사도요한이 이것을 계시록에서 기록할 때에 다니엘서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 기간은 ‘종말에 있게 될 적그리스도 통치 아래의 박해기간’을 말한다고 본다. 먼저 다니엘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자.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단 7:24-26)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 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7-13)

 

먼저 다니엘서는 일차적으로는 BC 170년경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통치하에서 겪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 기간을 예언한 것으로 본다. 물론 이차적으로는 종말적으로 겪게 될 적그리스도의 박해 기간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상징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상징적이라는 의미는 그 숫자의 실체를 추측하여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을 당부하였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계시록은 예언서적인 장르를 갖고 있다.

이러한 예언서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강조하여 임의적이며 독단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인적인 해석은 주관적이고 다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단들의 주장은 대부분 계시록과 다니엘서와 같은 예언서를 자신들 임의대로 해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니엘서가 의미하는 문자적이고 일차적인 해석은 그 당시 정치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은 바벨론과 메대-바사, 헬라, 로마제국을 가리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계시록과 그 시대 이후에는 상징적이며 비유적인 개념,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총체적인 반기독교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여 3년 반이라는 기간은 종말적으로 적그리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통치를 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그 기간이 장차 언제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혹간은 이 3년반이 어느 대통령의 임기 안에 일어난다고 주장하거나, 현재의 시간에 맞추기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아주 잘못되었으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즉 종말적으로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갖고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어느 특정한 기간이 있을 것이라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봉함하라고 말하고 있으며(단 12:4), 성경은 때와 기한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만의 고유한 권한을 인간이 상상하고 추측한다는 자체가 잘못이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17)

 

계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1-3)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5-6)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4-5)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이 기간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면 ‘종말에 있게 될 적그리스도 통치 아래의 박해기간’을 말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아직 닥치지 않은 장래를 뜻하며, 또한 성경은 이 기간이나 이 형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통신학적인 해석은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계시록은 일천 이백 육십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 이방인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 기간 이자,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는 기간 (계 11:1-3)

(2) 여자가 아이를 낳고 도망가서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서 양육을 받는 기간 (계 12:5-6)

(3)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 기간 (계 13: 4-5)

 

(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는 실제 지역이나 장소를 뜻하지 않으며 교회를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계시록에서 예루살렘은 실제 지역을 지칭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구약의 다니엘서를 반영한 것이지만, 다니엘서가 기록될 당시와 정치적 지리적 상황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두 증인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것을 어느 교회의 교주나 지도자로 비유하는 곳은 이단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2)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다는 것에 대해서 일차적이며 과거적인 해석으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초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을 피하기 위하여 AD 66년 벨라로 피신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장차 교회가 핍박을 피하여 보호와 훈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즉 ‘일천 이백 육십 일’은 핍박의 기간으로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양육기간으로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성도들을 피난시켜 양육하며 핍박에 대항 할 수 있는 능력과 인내를 허락하신다.

 

(3)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은 단 7:8의 넷째 짐승으로부터 돋아난 뿔에게 주어진 '큰 말하는 입'과 유사하며 다니엘서를 반영한 것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마흔 두 달'은 짐승이 교회를 핍박하는 기간을 상징한다. 이때 짐승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짐승의 이러한 권한은 용에게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 24:15-16)

 

마태복음 24장은 다니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함으로서 과거적인 의미로서 BC 170년경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통치하에서 겪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 기간을 기억시킴으로서, 일차적으로는 AD 70년경의 로마의 티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성전에 가증스러운 우상이 세워진 사건을 뜻한다고 본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계시록을 과거의 해석으로만 적용시킬 수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교회사적인 역사를 뜻한다고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해석을 인정한다면 계시록은 단지 열차 시간표와 같아질 것이며, 이러한 해석은 시간표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성경해석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는 장차 미래에 있을 교회의 고난기간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을 “예언의 다중적인 성취”라고 부르는데, 성경이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9)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wete 라는 학자는 계시록의 해석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전체로서 어떤 학파를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고 모든 해석체계들과 접촉점을 갖도록 할 것이다. 나는 과거파에게서 당시 상황의 역사를 배우며, 미래파에게서는 장차 올 시대의 성취를 배우고, 이상주의에서는 기독교의 철학을 배우며, 역사파에서는 사건의 진행들이 어떠한 원리에서 적용되었는가 하는 예증을 배울 것이다."

 

 

 

 

 

 

 

 

출처 :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글쓴이 : 빛과 소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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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7. 6. 08:43

예수신화의 원본 추적-호루스!

(호루스의 모든 것 그대로 예수신화로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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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문명 시작부터 인류는 밤하늘을 관찰하고 별들의 움직임에 모든 신화의 근거를 찾았다.

 

태고적부터 태양은 인류에게 최고의 숭배대상이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별들에 관해서도 꽤 정통했다. 

인류는 별의 관찰을 통해서 태양이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규칙적인 활동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일식이나 만월처럼 말이다.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별자리라 부르는 도표로 별들을 분류했다.

 

십자황도대:인류 고대 문명부터 별자리와 인간사를 모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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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황도대]

이것은십자황도대라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개념도이다. 

1년 주기에 12주요별자리의 경로를 따라 태양이 이동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1년의 12달과 4계절, Solstice(지점)과 Equinox(분점)을 나타낸다. 

도표는 별자리가 사람, 동물 형태로 ‘의인화’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초기 인류는 태양과 별자리를 단지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관련된 구체적 ‘신화’로 의인화했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불어넣고 유지하는 태양의 특성 때문에 인류는 태양을 ‘’ 또는 보이지 않는 창조자의 대리자로 의인화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수천년 전의 고대인이라고 생각해 보라.
 비가 오거나 천둥만 쳐도, 태양이 숨거나 무서운 열을 내 뿜을 때 저절로 신이라고 생각하고도 남을 것이다.
 수천년 전 사람들이 온갖 자연현상을 경외의 대상으로 보고 신과 신화를 생각해 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태양신’,‘세상의 빛’, ‘인류의 구원자’로 말이다. 

그리고 이 열두 별자리는 태양신의 이동경로를 내며 각각의 해당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자연활동과 관련된 이름을 갖는다. 

예를들면, 물병자리는 봄에 비를 내려 준다. 

 

 

당시 선진문화강국 이집트 태양신 호루스에서
약소 야만국 소수족 유대인 신화로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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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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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스와 세트신 

 

이것은 기원전 3천년경 이집트 태양신 호루스이다.

이집트 태양신이며 호루스 일생은 태양의 움직임에 관련된 우화적 신화이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보면 태양신의 신화에 관해 많은걸 있다.
빛의 아들 호루스 세트라는 적이 있었는데 세트는 어 또는 밤의 의인화이다.
은유적으로 얘기하자면, 매일 아침 호루스는 세트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지만 밤이되면
호루스는 세트에 패해 지하세계로 �겨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둠 또는 선과 의 대결구도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신화적 구도 중 하나라는 점이다.

 

고대 모든 구세주(예수포함)는 모두 동일 

호루스 그는 누구인가?
호루스에 대해 알아볼까?
[호루스 HORUS]
기원전 3천년 12월 25일 출생
Isis Meri
처녀수태
동방의 별이 출생을 지켜 보았고 탄생후 3명의 왕에 의해 숭배됨.
12살에 신성한 지도자가 됐으며
30살에 Anip(아누프)라는 성직자에게 세례를 받고 성직생활을 시작 함.
12명의 추종자와 함께 방랑하며 병자를 치료하고 물위를 걷는 등의 기적을 행함.
진리, 빛, 목자, 신의 양, 주의 아들 들으로 알려짐.
타이폰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은 뒤 3일 부활 함.
이러한 호루스의 특징들이 원조격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 구조의 같은 신화를 갖는
많은 다른 신들의 문화양식에 스며 들어간 것 같다.

 

*ATTIS(아티스) 그리스
Nana처녀수태
기원전 1,200년경 12월 25일 출생
십자가에 못박힘.
3일 후 부활

*krishna(크리슈나) 인디아
기원전 900년경
Devaki 처녀수태
동방의 별이 그의 출생을 알림
제자들과 기적을 행함
죽은 후 부활

 

*DIONYSUS(디오니소스) 그리스
기원전 500년 경
처녀수태
12월 25일 출생
가르침을 행하며 방랑함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함
왕들의 왕, 신의 독생자, 알파와 오메가로 불림
죽은 후 부활

*MITHRA(미트라) 페르시아
처녀수태
기원전 1,200년경 12월 25일 출생
12제자와 기적을 행함.
죽은지 3일 후 부활
빛, 진리 들으로 불림
흥미롭게도 미트라의 숭배일은 SUNDAY(일요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리온 과자(제과)?
    
     오리온(Orion)은 그리스 신화에서 Artemis에게 사랑받았다가 살해된 거대한 미남 사냥꾼이다.
    
     한국의 전설에도 키가 크고 미남인 사냥꾼이 사냥하고 산에서 내려오다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색끼가 다분한 여인을 만나 정분을 나눈다는 야설도 여럿 있다.
    
     오늘날에는 미해군의 대 잠수함 초계기 P-3를 오리온이라고 부를 정도다.
 
     오리온 벨트(별자리)는 3명의 왕 또는 기독교경 속의 박사(페르시아 제사장)을 의미한다.
     아하!-하고
     기독교에서 동방박사(왕)가 하필 3사람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이다.
     그리고 하필 별의 인도를 받았서 아기가 태어난 여관까지 인도했다는 황당한 예수전설은 바로
     동쪽의 별 시리우스(Sirius)를 의미한다.

    그리고 적도로 부터 가장 북쪽으로 치우쳤던 태양(Solstice;至點;極點)이 부활한다.
    고대인들은 이  부활하는 태양을 '신의 아들' 부활이라고 불렀다.
 
    이제 거대한 기독교 교리의 비밀이 다 드러난 것이다.
 
 
중요한 점은 각기 다른 시대의 세계의 수많은 구세주들이 이처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는 것일까?
 
왜 12월 25일 처녀수태 되었을까?
왜 죽은 지 3일 후 부활했을까?
왜 제자는 열 두명 이었을까?
 
그러면 가장 최근의 태양신 구세주와 관련된 신화를 살펴보자.

예수는 12월 25일 베들레헴에서 Mary(마리아) 처녀수태로 태어난다.
그의 탄생은 동방의 별로 불리는 동방의 세명의 왕에 의해 알려졌고 숭배되었다.
12세에 가르침을 시작했고 30세에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은 후 성직을 시작했다.
12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병을 고치고 물위를 걷거나 죽은자를 살려내는 등 기적을 행했다.
또한 왕들의 왕, 신의 아들, 세상의 빛, 알파와 오메가, 신의 양 등으로 불렸다.
제자 유다에게 은 30에 팔아넘겨지는 배신을 당한 후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며
3일 후 무덤에서 부활, 승천했다.
제자 유다에게 은 30에 팔아 넘겨지는 배신을 당한 후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며
3일 후 무덤에서 부활, 승천햇다.

 
예수신화의 천문학적 비밀은 이것!
무엇보다도 출생의 과정은 완전히 천문학적이다.
동쪽의 시리우스는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이다.
12 24 오리온자리의 3개의 밝은별과 일직선을 이룬다.
오리온 자리의 3개의 별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세명의 이라 불린다.
12 25일이 되면 세명의 과 가장 밝은 시리우스는 모두 태양이 뜨는 위치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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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왕은 일출(태양의 탄생) 가르키기 위해 동쪽의 시리우스 뒤를 따르는 것이다.
처녀 Mary 처녀자리(VIRGO) 뜻한다.
VIRGO THE VIRGIN이라고도 하는데, VIRGO 라틴어로 처녀라는 뜻이다.
HOUSE OF BREAD(굳이 번역하면 빵집) 의 상징은 추수 계절인 8월과 9월을 뜻한다.
 
그리고 베들레헴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HOUSE OF BREAD(빵집)이다.
베들레헴 지구상의 특정 장소가 아닌 하늘의 별자리 HOUSE OF BREAD(빵집)이다. 
12 25일경 혹은 동지에 일어나는 아주 흥미로운 자연현상이 있다.
지에서 동지로 가면서 낮은 점점 짧아지며 추워진다.
북반구에서 관측하면 태양은 남쪽으로 이동하며 점점 작아지고 빛은 약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동지에 가까워짐에 따라 짧아지는 낮과 시들어가는 작물은 인류에게는
죽음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 태양의 죽이었다.
태양은 여섯 달 동안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12월 22일이 되면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하므로
12월 22일이 되면 태양은 가장 작아진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사흘 동안(22, 23, 24일) 태양은 남쪽으로 이동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정지된 사흘 동안 태양은 남쪽 십자별자리(SOUTHEN CROSS) 또는 (CRUX)에 머무른다.
이후 12월 25일이 되면 낮 시간의 증가, 온기, 봄을 예기하며 이번에는 북쪽으로 1도 이동한다.
정리하면, 태양은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 동안 죽은 상태로 머무르다 부활하여 승천한다.

 
동일 코드:십자가+죽음+부활
이것이 바로 예수와 수많은 다른 태양신들이
십자가에 못박힘,
3일간의 죽음,
부활이라는 동일한 컨셉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태양이 다시 방향을 북반구로 바꾸어 만물소생의 계절인 봄으로 가는 변환기의 현상.
다시 말해서 구원이다. 하지만 춘분 혹은 부활절이 오기 전까지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춘분이 지나서야 낮이 밤보다 길어져 어둠의 악마를 물리치고
봄이 올 수 있는 조건을 다시 부흥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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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천궁도상에서의 고대신화와 예수신화가 만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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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예수, 호루스,디오니소스...등의 제자는 12일까?
    한마디로 학원(school)에서 학원생를 12명만 모집하거나 모집된걸까?
    기독교경을 포함한 모든 신화에서 12은 모두 상징의미이지 실제 숫자가 아니다.

    12지파(이스라엘),
    12아들(야곱),
    12판관,
    12조상(이스라엘),
    12의 선지자(예언자),

    12왕,
    12공주

     그리고 12제자

      .....등
    12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조작된 상징코드이다.

 


 

예수를 둘러싼 천문학적 상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12제자에 관한 것일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천궁도 상의 12별자리이다.
예수는 가운데의 태양이며 12제자들과 함께 움직인다.
실제로 숫자 12는 기독교경에서 계속 반복되고 반복된다. 
십자 천궁도를 보면 가운데가 상징적인 태양의 표식이다.
이 표식은 단순히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미술적 표현이거나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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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십자가들이 기독교의 십자가인양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 위의 십자가는 십자 천궁도와 태양을 의미할 뿐이다.
     사형틀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이교도들의 정신적 상징인데 약식표기는 이런 모양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다.

이것은 이교도들의 변형된 천궁도이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만들어지기 수천년 전부터 이집트 등에서 사용한 종교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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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 만들어지던 초창기 왜 예수상 뒤에 황궁십자도를 새겼는지 이해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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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초창기 예수상 뒤의 십자표시는 십자가 형틀이 아닌 황궁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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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예수상 뒤의 저 표시가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고대인들의 구세주 신화와 별자리 황궁도의 관계를 표시한 것이다.


사실은 초기 예수 미술에 항상 십자가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예수는 바로 태양이다.
신의 태양(신의 아들), 세상의 , 재림하는 구세주
예수는 매일 아침 부활하는 어둠의 활동에 대항하여 싸우는 신성이며
천국의 구름 위에 가시왕관 즉, 햇살을 머리에 두르고 나타나는 태양이다.

기독교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점성, 천문학적 우화 중에 가장 중요한것은 AGE(시대)이다.
기독교경에는 AGE(시대) 대한 언급이 수없이 많다.
이해를 위해 춘분점 세차라는 자연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대인들의 시대개념과 춘분점 세차
 (유대인의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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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분의 일출과 부활개념의 싹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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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야 평분 세차(歲差)까지 정확히 인식한 고대 천문학

     대략 26,000년 주기까지 알아냈다.

 

고대의 이집트인은 춘분의 일출은 대략 2150년을 주기로 천궁도 상의 일어나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지구가 자전시 유지하는 약간의 기울기 때문이다.
이때 별자리는 1년의 정상적인 주기로 이동하는것이 아니라 뒤로 이동하는데
우리는 이것
세차(歲差) 한다.
세차가 천궁도의 12별자리를 모두 통과하는데 대략 25,765년이 걸리며
주기를 GREAT YEAR라고도 부른다.
고대인들은 이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12개의 별자리를 통과하는 시간은 25,765/12=2150년이 나오는데
고대사회는
이 주기를 AGE(시대)
라고 불렀다.

⊙BC4300년 ~ BC2150년은 토러스(Taurus) AGE, 황소 AGE
⊙BC2150년~ AD1년은 에리스(Aries) AGE, 양  AGE
⊙AD1년~ AD2150년은 파이시스(Pisce) AGE, 두마리 물고기 AGE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AGE이다.)

⊙대략 AD2150년에 새로운 아쿠아리스(Aquaris) AGE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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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스(Aries) 시대(AGE), 양의  시대(AGE)의 상징인 양으로 나팔을 부는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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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적으로 토러스(Taurus) 시대(AGE)의 상징, 황소 AGE를
   
에리스(Aries) 시대(AGE) 양(구세주, 어린양)인 미트라가 구시대의 상징 황소를 죽이고 있다.
    이런 상징조각은 미트라교가 횡횡하던 시대에는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기독교경은 3개  AGE(시대)의 우화적인 역사와 동시에 4번째  AGE(시대)의
도래에 대한 암시의 기록이다.
구약경에 의하면 모세가 십계명과 함께 시내산으로 내려왔을때 그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는것을 보고 모세는 매우 화가났다고 한다.
모세는 십계명 석판을 부숴 버
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사하도록 서로 죽이게 했다.
대부분 기독경 학자는 유대인들의 우상숭배가 모세를 분노케 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유대인들이 숭배했던 황금송아지는 천궁도의 토러스(Taurus) AGE(시대) 황소이고
모세는 에리스(Aries) AGE의 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아직도 양의 뿔로 나팔을 부는 이유이다.

모세는 새시대인 에리스 (Aries) AGE, 양 AGE(시대)를 나타내며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구시대를 버려야 했다.

미트라 등의 다른신들도 이와 유사한 신화를 갖는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 미트라도 같은 상징으로 황소를 죽였다.
 
예수도 다음 시대인 파이시스 시대(두마리의 물고기)로 안내하는 상징이었다.
물고기 형상은 신약성서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

예수가 빵과 두마리의 물고기로 5천의 백성을 먹이니
  (마태복음 14:17)

예수가 갈렐리 호수 근처에서 함께 도보 성직을 시작하는데
두명의 어부가 친구가 되어 그들 따른다.
(왜 하필 갈릴리 호수근처로 예수의 근거지를 삼았을까?
 실제로 그 근처에서 태어난걸까?
  왜 하필 두명의 어부일까?
  왜 하필 두마리의 물고기일까?
  이런 신약의 숫자설정에는 모두 천궁도와 신화를 상징으로 연결하는
  고대인들의 습관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다.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도 하다못해 집터 하나를 잡더라도 하늘의
  해와 달, 별의 움직임에 맞추었다. 
  신라의 경주 첨성대는 신라가 얼마나 별자리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모든 왕실의
  행사와 농사와 제사에 적용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속에서 살았던 유대인들도 이처럼 그대로 하늘의 움직임에
  그들 부족의 운명을 예견하고 적용한 끝에 양자리 예수신화가 그전의 구세주 신화를
  그대로 반영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세주이며 어린양인 미트라를 따라 유대인들은 예수를 미트라 대신 갈아끼운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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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 상징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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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마리 물고기 자리와 십자황궁도는 기독교의 근간이다.

자동차 뒤에 부착된 물고기 문양을 우리는 자주 본다. 
그러나 문양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 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은 파이시스시대의 태양의 제국을 나타내는 이교도들의 천문학적 상징이다.
또한 추정되는 예수의 생일은 본래 파이시스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누가복은 22:10
예수의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잔치는 어디서 열립니까? 라고
묻자
예수가 이렇게 대답한 걸로 나와있다.
 
보라 너희가 도시에 들어가면 물병을 남자를 만나게 될것이다.

그를 따라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들어가거라
라고 예수는 대답한다.

이 문장은 기독교경의 모든 천문학적인 비유가 가장 확연하고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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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마리 물고기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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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병을 든 한 남자, 아쿠아리스(물병) 자리(오는 2150년 경부터 시작된다.)

이문장(유월절 잔치, 물병을 든 한 남자 이야기)은 기독교경의 모든 천문학적인 비유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병을 든 한 남자는 아쿠아리스(물병자리)이다.
아쿠아리스는 항상 물병의 물을 쏟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쿠아리스는 파이시스시대 다음의 시대를 나타내는데 태양(신의 태양)

파이시스(예수)시대(AGE)를 지나 아쿠아리스 시대로 진입한다.
예수는 (자기시대인) 파이시스시대 후에 아쿠아리스 시대가 도래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끝과 종말에 대해 들어왔다.
요한계시록에는 마태복음 28:20을 근거로 종말을 묘사한 그림
이 있다.

마태복은 28:20 - 
예수 왈 “나는 세상의 끝까지 너의와 함께 하겠느니라”
그러나 ‘킹 제임스’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수 많은 오역 중의 하나이다.
실제 쓰인 단어는 ‘AEON(영겁, 무궁한 시간)’ 즉, AGE(시대)’이다.

“나는 (파이시스 시대까지만) AGE(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느니라”가 정확한
해석이며 태양이 아쿠아리스 시대에 진입하면서 예수의 파이시스 시대가 끝나는 것과 상통한다. 기독교경의 ‘시간의 끝’, ‘종말’의 발상은 천문학과 관련된 우화의 완전한 오역이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자!
더욱이 문학과 천문학의 혼성물인 ‘예수’라는 캐릭터는
이집트의 태양신’호루스’의 명백한 표절물이다.


 

 
 
 
예수라는 유대 태양신은
이집트 호루스 태양신의 명백한 표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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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잉태, 임신을 알림, 기적을 베품, 숭배의 개념이 잘 나타난 이집트 룩소스 사원의 벽화
  이 모든 신화 코드가 유대인 예수 신화로 거의 그대로 유입되었다.
이집트 룩소스사원의 3,500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에는 기적의 개념, 출생
그리고 호루스 대한 숭배사상이나타나 있는데, 벽화는 처녀
아이시스에게 호루스 잉태할 것이라 알리는 모습과
신성한 유령 네프 아이시스를 임신시키는 장면,
그리
고 처녀수태와 숭배의 기념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예수 기적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실상 이집트 종교와 기독교의 유사성들은 수도없이 많다.
 
 
길가메시 홍수 이야기를 99% 표절한 구약경
표절은 계속된다.
노아와 노아의 방주는 전설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대홍수의 개념은 고대의 세상에서 일반적이었으며 다른시대, 시기에도
200개의 인용된 대홍수의 개념이 있다.
기독교 이전 기원전 2,600년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신의 대홍수와 방주로 피한 동물들
심지어 되돌아와 놓아준 비둘기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데 많은 다른 유사성들과 함께 구약경의 그것들과 거의 유사하다.

모세, 바구니, 강, 공주, 왕, 십계명, 석판...모두 표절
모세에 관한 서사시도 표절된 것이다.
모세는 출생시 죽임을 피해 바구니에 담겨 강으로 흘려보내졌는데 왕족의 딸에게 구출되어
왕자로 자란다. 모세에 관한 서사는 기원전 2,250년경 아카드의 사르곤신화를 거의 그대로
도용한 것이다. 
사르곤은 출생직후 죽임 피해 갈대 바구니에 담겨 강으로 흘려 보내진다.
아키라는 왕의 처에의해 구출된 양육된다.
게다가 모세는 모세의 ,  십계명 제정자로 알려져 있는데 산위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제정되는 법전의 개념은 아주 오래된 고대의 모티브이다.
모세는 단지 신화속 역사의 많은 법제정자들 하나일 뿐이다.
인디아에는 위대한 법제정가인 '마누'가 있고 크레타에는 미노 딕타산에서 내려와서
제우스로부터 신성한 법전을 전수받는다는 설화가 있고,
이집트에는 미시 신의 법전이 새겨진 석판을 지녔다고 한다.
마누 à 미노 à 미시 à 모세
(모세라는 이름은 유대인의 고유명사가 아닌 이집트의 고유명사가 발전한 것이다.)

십계명은 이집트 Book of the Dead(사자의 ) Spell 125(125번 주문)를 노골적으로 인용한 것인데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à 너희는 도둑질 하지 말지어다
나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à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à 너희는 거짓말하지 말지어다
로 변형되어 인용되는데 나머지도 다르지 않고 그대로이다.
(유대인들의 십계명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집트의 사자의 서인 것이다.)

사실, 이집트 종교는 유대-기독교신학의 주요한 근본기초와 비슷하다.
세례 사후세계 최후의 심판 처녀수태 죽음과 부활 십자가에 못박힘 방주 할례
구세주 영성체 대홍수 부활절 성탄절 유월절 등등 이 특징들은 기독교와 유대교
훨씬 이전에 이집트 종교의 관념의 특성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있는 '요한의 세례, 최후의 심판, 처녀잉태, 부활, 십자가, 방주, 하례, 구세주, 영성체 성찬식,
 대홍수...' 이 모~~~든 것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이집트, 페르시아의 종교코드다.
 유대인들이 배워서 로마→ 영국→미국을 통해 미련한 일부 한국인들에게 전염시킨 것에 불과하다.)


초기 기독교 역사학자와 옹호론자들 하나인 유스티누스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처녀수태로 탄생한 지도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부활, 승천하셨다. 
주피터의 아들들과 관련된 신화들과 아무런 다른점을 발견할 없다.
유스티누스의 또 다른 기록에는 예수의 처녀수태 탄생설화와 그리스신화
페르세우스 그것과 같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유스티누스와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이교도의 종교와 얼마나 유사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스티누스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다.
그는 이것이 악마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악마가 예수를 미리 예견했고 이런 유사성들을 이교도들의 세계에 미리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이 '악마의 표절론'은 '우리 아버지가 싫으니 나는 다른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요'하는
 웃지못할 비극적  코메디론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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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경 속의 요셉은 예수인물의 캐릭터 형성의 원형이다.
요셉의 판박이 예수의 이야기
기독교경은 기독교 이전 대부분의 종교적 신화와 마찬가지로 단지 천문. 신학적 혼성물이다.
한 인물의 특성이 다른 새로운 인물의 특성으로 전이되는 현상은 기독교경에서도 발견되어 진다.
구약경 속에 요셉 이야기가 있다.
요셉은 신약성경의 예수의 원형이다.
요셉의 탄생도 기적적이었으며, 예수의 탄생도 기적이었다.
요셉은 12명의 형제였고, 예수에겐 12명의 제자가 있다.

요셉은 20조각의 은에 팔렸고, 예수는 30조각의 은에 팔렸다.
형제 유다가 요셉을 팔것을 제안했고, 제자 유다가 예수를 팔것을 제안했다.
요셉은 30살에 일을 시작했고, 예수도 30살에 일을 시작했다.

유사성은 계속된다.
더욱이 12명의 제자와 방랑을 하며 병자들을 치료하고 마리아라는 어머니를 둔 예수라는
인물 혹은 이와 비슷한 기록이 기독경 이외의 곳에서
얼마나 발견되었을까?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지중해 혹은 그 주위에 수 많은 역사가들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역사가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관해 기록했을까?
단 하나의 기록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상  예수의 존재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4명의 역사학자가 있다.
 
플리니/수에토니우스/타키투스가 첫 번째 세 명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라는 역사성 하면 기껏해야 위 3인물의 기록과 요세푸스 정도를 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4인물의 기록은 사실상 예수의 역사성을 오히려 반대로
 부인하는 기록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은 기껏 크리스터스 혹은 크라이스트라는 단어에 관련된 문장의 근거이다.
그러나 '크리스터스/크라이스트' 이름이 아닌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호칭에 불과하다.
 
네번째 요세푸스의 근거는 수 백년 동안 허위로 판명됐지만 슬프게도 그의 주장은
여전히 사실로 인용되고 있다.
 
예수의 부활과 천국의 승천과 수많은 기적의 행함이 많은 사람으로 인해 목격되지 않았기에
역사에 남지 않은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그랬다면 많은 증거들이 고찰될 것이고
-그정도 엄청난 기적을 행한 사람이 실제했다면 엄청난 역사적 파장이 있었을 것이나 단 하나의 기록도 없다.-
따라서 예수라고 알려진 인물은 존재치도 않았다는 확률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태양숭배 신화의 패러디이다.
그들은 태양의 자리에 크라이스트라는 사람을 놓았고 본래 태양에 향해졌던 숭배를 그에게 행했다. Thomas Paine(1737~1809)

그러나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정확하길 원한다.
기독교는 결코 사실에 근거한 종교가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했다.
기독교는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윤색한) 로마신화 그 이상의 것도 아니며
또한 로마 정치로 발전한 정치신화라는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을 중앙권력집중에 이용한 것이다.)

사실 예수는 그노시스 기독교분파의 태양신이었다.
다른 모든 이교도의 신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신화속의 인물이었다.
기독교는 예수라는 인물을 역사화시켜 사회를 조종하고자 모색되어진 정치적인 시스템이다.
(예수신화는 고대에 수백 수천의 신화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은 로마의 정치 시스템에 가장 적합했기에 로마 정치에에 의해 선택되고 조작된 것이다.)

AD 325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한다.
이 의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동기화된 기독교의 교리가 (만들어지고)제정된다.
이렇게 기독교의 (종교적 이교도 학살)과 정신적(조작 교리적) 사기의 기나긴 역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1,600년 동안 로마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따위의 기독교 계몽 사건으로
그들에겐 너무도 즐거운 암흑의 시대(476~1000) 로 인도하며 전 유럽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하게 된다.
(로마는 정치적으로 망했으나 종교적으로 유럽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로마의 성공시대인 것이다.)

기독교와 다른 모든 유신론적 신앙은 시대의 사기이다.
종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자연계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사용되
권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굴종을 지속시킨다.
종교는 신이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미명아래 인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소시킴으로서 신의 계시라는 핑계로 참혹한 범도 정당화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인적 감정으로 사람을 죽였다.→살인.
 주님을 부인하고 적개하는 이교도들을 도륙했다.→천국에서 상을 받음)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을 알면서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를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사람들에게 권력
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지금껏 고안된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다른 신화들이
그 안에서 번성할 수 있는 정신적 토양
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화를 믿지만 신화는 거짓이다.
깊은 종교적 판단으로 신화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을 결집시킨다.
신화는 진실과의 관계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기능'에 맞춰져 있다.
사회나 국가에 의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신화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사람들이 신화의 끔찍한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해도 논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념을 가진 종교인들은 그들과 논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단지 그들을 무시하거나 신성모독으로 비난한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하늘의 성령으로 처녀잉태하였고 온갖 기적과 영험한 일을 하셨다고  
세종시대나 그 후의  야사에 기록되었다고 치자.
'세종교'가 성종 이후로 만들어져 종교로서 전해내려왔다고 치자. 
세종교 신자들은 세종대왕께서 성령으로 처녀잉태하였다는 기록이 신화라고
말하는 일반인들을 향해 사실 관계를 떠나 세종대왕을 모욕했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이런식으로 황당한 고대 신화를 사실상은 믿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믿는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신화.초자연의 합리화가 주는 심리적 쾌감을 지키려는 것 뿐이다.
대부분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수신화의 황당한 구라이야기가 유치하고 황당한
고대의 거짓뿌렁이 신화라는 사실을 신학과 신화학을 통해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밥줄과 권력을 위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세뇌시킨 뒤
철저히 유린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마의 권력처럼...)
출처 : 복음과 현존
글쓴이 : 스룹바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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