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5. 12. 18:38

일유(日猶) 동조론(同祖論)에 대한 신비

[이청길 칼럼] 2014.08.22 09:57

이청길 목사(국제성서연구원 원장, 동경성시화운동본부 회장)

 

 

동경성시화운동본부 회장이자 국제성서연구원 원장으로 일본 선교에 수십 년간 헌신해 오신 이청길 목사님께서 본지에 일유(日猶) 동조론(同祖論)과 관련된 기고를 해 오셨습니다. 이에 본지는 총 8차례에 걸쳐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을 통해 일본선교의 새로운 비전을 함께 공유하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최근에 일본에서는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에 대한 논쟁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생각할수록 더욱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신비로운 베일을 풀면 풀수록 일본과 유대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잃어버린 동족(10지파)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왔다. 최근에 일본인과 유대민족의 동조론(同祖論)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옛날 일본과 유대 민족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에 대한 실상을 풀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일본 종족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한반도에서 도래한 한민족이 뿌리가 되었음을 증명하여 왔다. 그러나 일본 민족에 대한 연구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학자들에 의하여 더 깊은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과거 2700년 전에 앗수르에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10지파가 사라졌는데 그 행방을 찾기 위해 지구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동족을 찾기 운동을 전개하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전 지역을 찾아 다니면서 잃어버린 동족들의 행방을 찾아 조사 연구한 결과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의 발자취를 추적한 끝에 고대 일본에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하여 유대의 종교와 문화, 생활풍속 및 그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작년에(2013. 3. 20. 유다역 5763년) 일본 국가 만찬 기도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오신 특별한 분이 계셨다. 그는 이스라엘 교육문화성에서 이스라엘 전 대학의 감독관을 지낸 아빅도르 샤한(Avigdor Shahana) 박사이다.

 

그의 첫 인사말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들의 형제인 일본의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며 에브라임 지파의 여러분! 나는 억제할 수 없는 감동으로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10지파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한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인 여러분과 유다족, 베냐민족, 레위족의 대표자로 선 우리들이 3000년의 역사가 지난 후 비로소 함께 만난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천사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황홀함에 빠져 있습니다.”

 

인사말을 하는 동안 사한 박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그렸고 떨리는 음성으로 감동과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눈 후 이스라엘 역사를 강론하였다. 필자도 사한 박사의 강연을 들으면서 흥분과 깊은 감동받은 사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원전 1250년경 이스라엘인은 가나안의 땅(지금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였다. 레위족을 제외한 12지파는 제각기 영토를 부여 받아 자치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는 각 지파들이 단결하여 적을 격파하고, 상호 협력하며 공존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에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어 전 국토(각 지파의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나라는 각 지파에 의하여 분권 체제가 끝이 나고 통일왕국에 의하여 통치하게 되었다. 초대왕 사울에 이어서 다윗이 2대 왕이 되어 국토를 확장하고 이스라엘의 기반을 굳게 하였다. 다윗의 뒤를 이어서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유명한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기원전 900년경에 솔로몬 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나라가 둘로 분열되어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에는 유다 왕국으로 나누게 되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10지파(르우벤,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에브라임, 므낫세.)에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남쪽 유다 왕국은 2지파(유다, 베냐민.)로 솔로몬 왕위를 계승한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 남북 왕국이 대립하는 민족 분열의 비극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10지파의 동맹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은 약 250년간 지속하다가 B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귀족계급, 직능계급, 지식계급, 정치가 등 혁명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모두 포로로 잡혀 갔기 때문에 민족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유능한 인재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앗수르의 한적한 곳으로 강제 분산시키었다. 추방당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도망자도 있었고, 앗수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집단 이동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그 땅에 머물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들의 침략과 약탈이 없는 지상의 낙원을 찾아서 방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불안과 공포가 없는 완전한 삶의 공간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다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흩어진 10지파]의 사람들은 항로와 육로를 통하여 인도, 중국, 한반도 등을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 왕 당시에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로를 통한 항해력이 충분히 있었다고 예상하여 본다.

 

당시에 세계 최대의 종교와 문화와 기술을 가진 민족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유랑민족이 되어 세계 전역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 속에 잃어버린 자기들의 동족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화국의 역사학자인 요세프란 사람은 잃어버린 10지파의 동족을 찾기 위하여 동쪽으로 추적하여 여행을 계속하던 끝에 일본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유대인들의 생활습관, 풍속 및 종교의식 등이 유일하게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요세프 학자는 일본의 전국을 다니면서 너무나 신기한 현상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매년 행하는 종교적인 의식의 축제들이 일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침 잃어버린 고향에 다시 찾아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을 주장하는 이유와 그 배경들이 무엇인가를 추적하여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이청길 목사(국제성서연구원 원장)

유 대교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일본의 신도(神道)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는 않다. 다만 고대 유대인들이 일본에 와서 신도(神道)를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의식과 신도의 종교적인 의식들이 너무나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명치천황(明治天皇)의 손자이었던 고바야시 다가도시(小林隆利)는 명치천황(明治天皇)의 내친왕(內親王)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명치천황(明治天皇)의 명에 의하여 미국에 유학한 후 목사가 된 사람이다.

명치천황(明治天皇)은 고바야시 다가도시(小林隆利)의 어머니에게 “나는 천황의 권한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조사한 결과 일본은 신도(神道)의 나라이다. 그러나 신도(神道)는 원래 유대교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였다.

 

필자는 오래 전에 교또(京都)에서 유대교를 연구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고바야시 다가도시(小林隆利) 목사님을 만나 함께 대화하는 중에 직접 들은 이야기들이다. 만일 일본의 신도(神道)의 신자가 얼마나 되느냐? 고 묻는다면 일본인구와 동일한 숫자인 1억 3천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인의 전 국민이 신도(神道)에 속한 씨족(氏子)의 후손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출생하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신도(神道)의 신자로써 등록되어진다고 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결코 신도(神道)의 신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일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민족종교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는 유대교는 더욱 철저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유대교에 등록하고 신자가 되지만 외국인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외국인이 개종하여 유대교를 받아 드리면 그 때부터 그는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 되는 조건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유대교와 신도(神道)만이 민족종교로써 유일하게 존재한다. 일본의 신사의 구조와 신사에서 행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고대 이스라엘의 유대교의 신전과 의식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과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9,000Km 정도로 떨어진 곳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종교, 문화, 습관 등 유일한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이스라엘은 동아시아와 중동지역이라는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민족은 마침 쌍둥이와 같이 많은 동질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음에 놀란다. 일본의 신사는 대개 산수(山水)가 좋은 강변이나 연못, 또는 바다 가까운 곳이 건립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정결케 하는 종교적인 의식에 깨끗한 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도에는 미소기(禊ぎ:정결하게 하는 종교적인 의식)라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할 때는 반드시 물과 소금을 사용한다. 일본 신도의 신관(神官)들은 신사(神社)에 들어가서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결케 한 후에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수기19:7 “제사장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또한 모든 제물에는 소금을 사용하는 것도 정결하게 하는 종교적인 의식의 일종이다. 일본의 스모선수(씨름)들이 대전을 하기 전에 소금을 뿌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스모선수들이 대전하기 전에 소금을 뿌리는 이유는 씨름장을 정결케 하고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하는 종교적인 의식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일본의 요정이나 가정에 들어가는 입구에 소복하게 쌓아놓은 소금무더기를 보게 될 것이다. 신도에는 신전에 봉헌하는 제물에 반드시 소금을 뿌리도록 하는 관습이 있다.

 

레위기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일본에는 명치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만 하여도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소량의 소금을 물에 타서 씻기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었다.(에스겔 16:4 참조)

 

필자는 일본인의 장례식에 참예할 때마다 소금종이를 받은 기억이 난다. 또한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부정을 씻기 위한 소금을 뿌리는 관습이 있음을 보았다. 이와 같은 의식들은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후손들이 영원히 지켜야 할 소금언약임을 상기하게 된다.

 

민수기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일본인들은 왜 소금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정월이 되면 제단에 술을 봉헌하고, 누룩 없는 빵을 진설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12:15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우리는 신도의 종교적인 의식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경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의 고대사에서는 유일신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으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온갖 잡신으로 가득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일본의 종교연감에는 “신도란 일본 민족의 고유한 신과 신령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발전한 종교를 총칭한다.”고 되어있다.

 

일본 민족의 고유한 신(하나님)을 찾아주는 역할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는 성서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모방한 삼신(三神)이 등장하여 혼돈한 천지를 창조하는 신화적인 내용으로 기록되어있다. 또한 하늘의 중앙에 계시는 최고의 주신(主神) 아메노미나가누시노가미(天之御中主神)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고대의 일본인들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엿보게 된다.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창조의 하나님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일본의 종교적인 문화 속에 흡수되어 사장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본의 고대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흔적이 너무나 많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쇼킹한 사실과 재미있는 학설 믿음의 노래 

 2015.04.06 20:23




첫번째 그룹 72명의 유태인들이 소련의 블라디보스톡 항을 거쳐 일본 츠루가 항에 도착하는 장면





Jews slave labour camps of Siberia. Finally, when exit permits were issued the Intourist Office demanded 200 American dollars from each for their trip across Russia to Japan. The first group of 72 Jews were then on their way to the Russian port of Vladivostok. From there it would be a short hop, skip and jump to Japan where it was hoped a visa for the USA would be issued. After crossing the Sea of Japan their ship docked at Tsuruga in Japan, the on ly country willing to welcome them. As more refugees began to arrive they found accommodation in Kobe and in Japanese controlled Shanghai where a on e square mile area was set aside for them. This in effect was the creation of the first Jewish Ghetto in Asia. Before the harsh winter of 1943/44 ended around 300 Jews had died from Typhus and other diseases. Worse was to come. A Japanese radio station within the camp was targeted by by US bombers. The raid killed 250 people including 31 Jews.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15,000여명의 폴란드 거주 유태인들이 리투아니아로 도망 갔으나당시 리투아니아를 점령중이던 소련 정부가 리투아니아를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누구던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떠나라고 하여 신청한 사람들은 전원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가둔후폴란드에서 피난온 유태인들은 영국도 이들이 팔레스타팔레스 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결국 일인당 200불씩 받고 여행 허가증을 주어 첫번째 그룹 72명이 블라디 보스톡을 거쳐 일본 쓰루가 가서 미국 비자를 얻은 자는 미국으로 갔고 일-유동조론 때문인지 나머지는 고베나 상하이에서 살게 일본 정부가 허락하여 첫번째 아시아내 유태인 주거지가 선정되었다. 1943-1944년에 티푸러스로 300명이 죽고 31명은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 졌다.

역사적 아이러키컬한 사실은 당시 유태인을 살게끔 허락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뿐이었다고 하니 나머지 국가들은 독일 홀로코스트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일-유 동조론


일유동조론(일본어: 日ユ同祖論)이란 유대민족과 야마토 민족이 공통의 조상을 가진 형제 민족이라는 이론이다. 주로 일부 일본인과 유대인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3가지 갈래의 설이 있는데,


  • 1. 고대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가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설
  • 2. 고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12지파)가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설
  • 3. 고대 일본인이 유대인의 조상 민족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중에 1번항이 힘을 실고 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여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원이다. 이들 12지파로 구성된 유대 민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데, 다윗 솔로몬에 이른 제3대 왕 때  이스라엘 왕국  유다 왕국으로 각각 분열된다.


 남쪽의 유다 왕국을 구성하는 유다 지파 베냐 지파는 그 후 정체성을 유지하여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이 되나,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을 구성하던 10지파는 아시리아에 멸망당한 후, 일부는 이민족과 혼혈되어 사마리아인이 되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후 1690에 방일한 독일인 엥겔베르트 켐퍼는 저서 《일본지》(日本誌)에서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 바빌론이라고 주장했다


 12지파란?


이스라엘의 12지파 및 가나안 땅의 분배



아담 이후부터 야곱의 12아들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셋-노아-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라인만을 제외하고 다른 혈통은 모두 다 배제되었다. 그러나 야곱의 12아들에 이르러서는 전원 다 택한 자, 곧 선민(選民)의 혈통에 들게 된다. 그리하여 '12'라는 숫자는 택한 자, 즉 구원 받은 자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게 되었다. (계 21:14)


한편 이스라엘 민족(Nation)이 야곱의 12아들의 후예로 이루어진 사실로 해서 이스라엘 내에는 12지파(tribe)가 형성되게 된다. 그런데 혈통적으로는 다음의 12지파가 거론되나 종교적으로는 훗날 출애굽 이후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소유로 성별된 이유로 (출 13:2-32; 민 3:1-51) 레위가 빠진다.


또한 전날 야곱이 요셉의 두아들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 한 지파가 되어 12지파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혈통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이스라엘은 12지파가 된다. 한편 이 12지파에 대해서는 야곱과 모세의 예언이 각각 있는 바 이를 중심으로 관련 사실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울러 이 12지파가 가나안을 정복한 후 각각 기업으로 분배받은 영토는 아래와 같다. 이 12지파의 구별은 바벨론 포수를 기점으로 비교적 쇠퇴하게 된다.



 

연령순

축복순

모친명

상징

야곱의 예언

모세의 예언

비 고

르우벤

괴로움을 권고하심

1

1

레아

끓는 물

탁월치 못함(창 49:3,4)

외세 위협을 받을 것임 (신 33:6)

부친의 첩과 통간, B.C.9세기 모압에 멸망당함. 가장 먼저 멸망당한 지파

시므온

들으심

2

2,3

레아

잔해하는 칼

저주를 받고 분산됨 (창 49:5-7)

-

분노와 혈기로 파괴적 활동함, 가나안에서 받은 땅이 박토인지라 유다 지파와 동맹, 흩어져 지냄

레위

더불어 연합함

3

레아

잔해하는 칼

저주를 받고 분산됨 (창 49:5-7)

율법을 가르칠 것임 (신 33:8-11)

분노와 혈기로 파괴적 활동함, 전국에 흩어져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티고 제사 업무를 주관 (민 35:2)

유다

여호와를 찬송함

4

4

레아

사자

왕권 위임 (창 49:8-12)

이스라엘 왕권 보유 (신 33:7)

영적 장자로서의 품격 소유, 유다 지파에서 다윗과 예수가 탄생함 (마 1:3)

재판장

5

7

빌하

뱀, 독사

재판권 위임 (창 49:16-18)

전투에 강함 (신 33:22)

강한 힘과 강직한 성품 소유 (수 19:47), 구원받은 인친 자의 목록에 나오지 않음 (계 7:4-8)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빌하

암사슴

아름다운 소리를 발함(창 49:21)

풍요로움 (신 33:23)

갈릴리 호수 주변의 기름진 땅을 소유했고 웅변과 음악적 기질이 풍부함 (삿 5장)

복됨

7

8

실바

전사

용감성 (창 49:19)

호전적인 기질 (신 33:20,21)

이방인과의 접축이 필연적이었음 (대상 5:18)

아셀

기쁨

8

9

실바

기름진 식물

비옥한 토지를 소유할 것임 (창 49:20)

기름진 옥토 소유 (신 33:24)

갈멜 산 북방 해변의 옥토를 불하 받음 (수 19:24-31)

잇사갈

값,보상

9

6

레아

나귀

힘센 노동력 보유 (창 49:14,15)

왕성한 내륙 상업 활동 (신 33:18)

느긋한 기질과 강한 힘 소유 (대상 12:32)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레아

해변의 배

해변에 거할 것임 (창 49:13)

왕성한 해상 무역 활동 (신 33:18)

지중해 해안 지역을 불하받음 (수 19:10-16)

요셉

더하다

11

11

라헬

무성한 가지

가장 탁월할 것임 (창 49:22-26)

물질적 축복 기원 (신 33:13-17)

에브라임, 므낫세 두 지파를 배출하여 두 지파 몫의 축복을 누림 (창 48:8-22)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라헬

이리

호전적 가문 형성 (창 49:27)

안전과 보호 기원 (신 33:12)

호전적 생활 와중에도 안전을 유지함 (삿 20:12-48)

 

 

 

 

<12지파의 가나안 기업 분배 현황>

 

밑에 소개하는 사설은 크리스찬 투데이에 나온 어느 목사님이 쓰신 사설을 복사한것임


일본은 참으로 신비로운 나라요, 환상적인 민족이다. 왜냐하면 일본인의 근원을 추적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이 보이고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본 역사의 미스테리”란 제목으로 방송한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본인의 뿌리는 유대인이다”라는 테마로 고대 일본 역사의 미스테리를 추적하고 조명하는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함께 동참한 일본인들의 반응도 매우 놀라움과 의혹하는 다양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본과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9,000Km 정도로 떨어진 곳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종교, 문화, 습관 등 유일한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대 유대 민족은 BC926년에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쪽의 이스라엘(10지파)와 남쪽의 유다(2지파)로 분국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BC722년 경에 앗수르에 패망하여 모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나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대부분의 백성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자기들의 동족(10지파)을 찾기 위하여 전 세계를 탐방하고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한 공통점을 일본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로는 유다의 동족 찾기 위한 전문 위원들이 일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실시되고 있음으로 사후(
事後)의 결과가 매우 주목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일본인들의 민족 종교인 신도를 통하여 조명하여 보았고, 또한 이들의 풍속과 습관을 통한 유대인들의 흔적을 추적하여 보았다

필자는 고대 일본 역사를 추적하면 할수록 고대 유대인들의 신앙과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대 유대인들의 삶의 모형을 그대로 전승하면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 황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장을 보아도 유대인들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 황실의 문장인 국화 모형이 고대 이스라엘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예루살렘의 서쪽의 성벽 위에는 선명하게 새겨진 국화 모형의 문장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를 끌고 있다


약 2천 년 전에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서쪽의 성벽(통곡의 벽)만이 남아 있는데 그 성벽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문장의 형태는 일본 황실의 국화의 모형과 거의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왜 예루살렘의 성벽에 있는 국화의 모형과 똑같은 문장을 일본 황실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그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일유(
日猶)의 깊은 관련성을 추측해 볼 뿐이다. 이 문장의 꽃잎은 12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2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여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본의 명치신궁(
明治神宮)에서도 12개의 꽃잎으로 구성된 국화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어 유대와 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일본 황실이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고대 황실의 유물 등에 국화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역사가 깊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어떤 학자가 유대인과 일본인들의 공통점에 대하여 비교한 것을 보면 매우 흥미있는 관찰이기도 한다


1) 머리의 색깔이 검은 색이다

2) 대개의 사람들의 키가 작다

3) 앙개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4) 히브리어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와는 달리 반대로 쓴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히 유대인과 일본인들은 닮은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일본인은 오랜 옛날에 북방계, 남방계, 한민(
漢民)계통으로부터 건너와 정착한 민족이라고 한다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유대인과 일본인의 동조론(同祖論)에 대한 이론이 계속되어 왔지만 앞으로 풀어가야 할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 같다.


이 학설이 사실이라면 게르만 민족의  아리아인이 티벳으로 넘어갔다고 하여 해ㅣ틀러가 1939-1940년에 거쳐 2차례나 탐사대를 보낸것과 더불어 재미있는 2대 학설이며, 또한 그러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본인들 조상을 섬기는것?


출처 : 갤러리 | 글쓴이 : henry8세 | 원글보기

출처 : 맹꽁이의 찬양
글쓴이 : 맹꽁이 원글보기
메모 :
Congratulation and appreciation,

 
 
 

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5. 12. 18:37

 

사라진 이스라엘의 지파들-일본


 

이스라엘인들은 일본에 왔다(아래 출처의 그림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biblemysteries.com/library/tribesjapan.htm


 

일본의 많은 전통 축제들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들이 고대 일본에 왔던 흔적으로 보인다.

아리마사 구보

LOST TRIBES - Japan
ISRAELITES CAME TO JAPAN
http://www.biblemysteries.com/library/tribesjapan.htm


Arimasa Kubo


 

이삭 이야기가 들어있는 일본의 축제


일본 나가노현에는 “스와-타이샤(Suwa-Taisha)"라는 커다란 신도(神道)의 사원(신사)이 있다.
(“신도는 일본만의 독특한 전통 종교이다.) 스와-타이샤에서 매년 4월 15일 ”온토사이(Ontohsai)“ 전통 축제가 열린
다. 이 축제는 성서 창세기 22장의 이삭에 관한 이야기를 묘사한다. 즉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려는 찰라에 관 한 이야기이다. ”온토사이“ 축제는 고대로부터 열렸으며 ”스와-타이샤“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스와-타이샤” 신사의 옆에는 일본어로 “모리야산(Moriya-san)”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그리고 스와 지역사람들은 모리 야 산의 신을 “모리야 노 카미(no kami)로 부르는데 ”모리야 산의 신“이란 의미이다. 축제에서 한 소년이 나무기둥에 밧줄 로 묶이고 대나무 깔판위에 놓여진다. 신도의 사제가 칼을 준비해 그에게 온다. 그때 한 메신저(다른 사제)가 그곳에 오고, 소년 은 풀려난다. 그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온 뒤 풀려났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또한 이 축제에서는 동물희생이 바쳐진다. 75마리의 사슴이 희생되지만, 그중에 귀가 갈라진 사슴 한마리가 있는 것으로 믿어지 고, 그 사슴은 신이 준비한 것으로 믿어진다. 그것은 이삭이 풀려난 뒤 신이 준비해서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숫양과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역사시대 사람들마저도 사슴의 희생풍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동물희생은 신도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축제를 “미사쿠치(Misakuchi)-신(god)”의 축제라 부른다. “미사쿠치”는 "mi-isaku-chi"로 볼 수 있다. “Mi"는 ”크다는(great) 것을 의미하고, “jsaku"는 아마 이삭(Isaac: 히브리 단어로는 ”Yitzhak")이며, “chi"는 단어 끝역할을 한다. 스와의 사람들은 아마 우상 숭배자들의 영향에 의해 이삭을 신으로 만 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소년이 희생제물이 될 뻔 했다가 풀려나는 이 축제는 더 이상 거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희생 기둥을 의미하는 "오니예-바시라(oniye-basira)"란 목재 기둥의 축제를 여전히 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실제 동물 희생을 거행하는 대신 박제된 동물들을 사용한다. 동물 희생과 더불어 소년을 묶는 것은 명치 시대 (약 100년 전)에 야만적으로 여겨져, 이들 풍습들은 중지되었다. 그러나 그 축제 자체는 오늘날에도 계속 남아있다.


그 소년의 풍습은 명치 시대 초기까지 남아있었다.
에도시대(약 200년 전)의 일본 학자이자 여행 작가였던 마스미 스개는 그의 여행에 관해 기록했는데, 스와에서 보았던 것을 남겼 다. 그 기록은 “온토사이”를 세밀히 그린다. 거기에는 소년이 희생될 뻔 했다가 궁극적으로 풀려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당시에 는 존재했던 동물 희생의 풍습이 그려져 있다.


그의 기록은 스와-타이샤 근처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온토사이” 축제는 고대 시대부터 모리야 가문(Moriya family)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모리야 가문은 “모리야-노-카미
(Moriya-no-kami: 모리야의 신)”를 그들 조상들의 신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리야 산”을 그들의 성지로 생
각한다. “모리야”란 이름은 창세기 22:2의 “모리아(Moriah: 히브리어로 ”Moriyyah")에서 왔을 수 있다.


모리야 가문은 78세대동안 그 축제를 주최해오고 있다. 온토사이 축제는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일본 이외의 어떤 나라에서도 이삭 이야기를 묘사하는 축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없다. 나는 그 전통이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 일본에 왔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일본 왕실의 문장은 예루살렘의 문 위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
일본 왕실의 문장은 16개의 꽃잎(오른쪽 사진)을 가진 꽃 형상으로 된 둥근 표식이다. 오늘날의 형상은 국화 같지만 학자들은 고 대에는 해바라기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상 예루살렘의 헤롯의 문의 상징과 같은 형태이다. 헤롯의 문의 문장 또한 16개 의 꽃잎(왼쪽 사진)을 갖고 있다.

일본 왕실의 문장은 헤롯의 문에서와 같이 매우 고대부터 존재했다.
또한 다윗의 별은 일본 왕실을 위한 신도 사원인 이세 진구(Ise-jingu)에서도 사용되었다.
일본 미에현에 있는 이세 진구는 일본 왕실을 위해 세워진 신도 사원이다. 신사로 연결되는 길 양편에는 석등들이 있다. 등의 꼭대 기 양쪽에 다윗의 별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세-진구에 있는 (Izawa-no-miya) 사당 안쪽에 사용된 문장(紋章) 또한 다윗의 별이다. 이것은 고대 이래 존재해왔
다.


교토현에는 “(Manai-jinja)” 사당이 있으며, 이것이 원래의 이세-진주 사당이다. “마나이-진자"의 문장 또한 다윗의
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대 이래 사용되어 왔다.

나는 다윗의 별이 3세기 유럽에서도, 유대 회당에서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일본의 종교 사제들인 “야마부시(Yamabushi)"는 유대인들의 그들의 이마에 성구함을 붙였듯이 이마에 검은 상자를 붙인다.


“야마부시”들은 일본에만 있는 종교적 수도자들이다. 오늘날 그들은 일본 불교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중국, 한국 또 는 인도의 불교에는 그러한 풍습이 없다. “야마부시”의 풍습은 7세기 일본에 불교가 수입되기 전에 일본에 존재했다.


“야마부시”가 입는 옷은 기본적으로 흰색이다. 이마에는 “토킨”이라는 작은 검은 상자를 매는데 이것은 검은 끈으로 머리에 부착 돼 있다. 그는 정말로 성구함(검은 상자)를 검은 끈으로 이마에 부착하고 있는 유대인을 닮았다.


이 검은 상자인 “토킨”의 크기는 거의 유대 양피지 상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토킨”의 형태는 둥글고 꽃처럼 보인다.

원래 유대의 이마에 붙이는 성구함은 (출 28:36-38) 대제사장 아론이 끈으로 붙였던 이마의 “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
다. 민속학에 따르면 그것은 약 4센티이고,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꽃모양이었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일본의 “야마부 시”가 붙이는 “토킨”의 형태와 비슷하다.

이스라엘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마상자를 사용하는 2개 나라이다.
더욱이 “야마부시”는 큰 바닷조개를 뿔피리로 사용한다. 이것은 쇼파나팔(shofar) 또는 양뿔을 부는 유대인과 매우 흡사하 다. 이것을 부는 방식인 “야마부시”의 뿔피리의 소리는 쇼파나팔과 대단히 비슷하다. 게다가 일본에는 양이 없으므로 “야마부 시”는 양뿔피리 대신 바다조개를 사용해야만 했다.


“야마부시”들은 종교적 훈련을 위해 산을 신성한 장소로 간주한다. 이스라엘의 사람들 또한 산을 성지로 여긴다. 토라의 10계명 은 시나이 산에서 받았다. 예루살렘은 산위의 도시이다. 예수(Yeshua)는 기도하기 위해 그곳 산에 오르곤 했다. 또한 그의 변화사건도 산에서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산에서 사는 “텐구(tengu)”의 전설이 있으며 “야마부시”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는 현저한 코와 초자연적 능력 을 갖고 있다. 고대 주군을 위해 일하는 대리자 또는 첩자였던 “닌자”는 초자연적 능력을 얻고자 산에 있는 “텐구”에게 간다.


“텐구”는 그에게 초자연적 힘을 부여한 뒤에  “토라-노-마끼(tora-no-maki: ”토라”의 두라마리)“를 그에게 준다.
이 ”토라의 두루마리“는 위기 시에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책으로 간주된다. 우리 일본인은 심지어 오늘날의 일상생활에서도 종 종 이 말을 사용한다.


유대의 토라가 일본의 역사적 장소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토라의 두루마리”가 이 날까지 유대인들에 의해 “토 라”로 불리는 성경의 용도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오미코시(Omikoshi)”는 법궤를 닮았다


성서 역대기 상 15장에는 다윗이 예루살렘의 주께 법궤를 가져갔다고 써있다.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 을 입었고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 라“(15:25-28)

이 구절을 읽을 때, 나는 이것이 축제 기간중 ‘오미코시(omikoshi)’를 운반하는 일본 사람들의 장면과 너무 유사하다고 생
각한다. 일본의 ‘오미코시’는 정말로 법궤와 닮았다. 일본 사람들은 악기 소리와 맞춰 그 앞에서 환호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이것 은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과 비슷하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은 2개의 막대기와 함께 어깨로 “오미코시”를 운반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역대상 15:15)
이스라엘의 법궤는 두 개의 막대기를 가졌다(출 25;10-25). 몇몇 사람들이 추정해서 법궤의 모델을 재현했는데 법궤의 위부분  두 개의 막대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성서는 이 막대들이 “네 다리위”에 네 개의 고리로 법궤에 부착되었다고 말한다(출 25:12). 그러므로 그 막대들은 법궤의 바닥에 부착되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일본의 “오미코시”와 비슷하다.


이스라엘의 법궤는 꼭대기에 두 개의 황금 케루빔 (하느님을 섬기며 옥좌를 떠받치는 천사) 모형이 있었다. 케루빔은 일종의 천사로 서 비밀스런 천상의 존재이다. 그들은 새처럼 날개가 달렸다. 일본어 “오미코시” 또한 꼭대기에 “호-오(Ho-oh)"로 불리는 황금 새를 갖고있다. ”호-오“는 상상의 새이며 비밀스런 천상의 존재이다. 이스라엘의 법궤는 전체가 금으로 덮여졌다.

 

일본의 ”오미코시“ 또한 대부분 금으로 덮힌다. ”오미코시“의 크기는 거의 이스라엘의 법궤와 같다. 일본의 ”오미코시“는 고대 이스라엘 의 법궤의 자취일 수 있다.

법궤와 관련한 많은 것들이 일본의 풍습을 닮았다.
다윗왕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 앞에서 악기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춤췄다. 우리 일본인들 또한 “오미코시” 앞에서 악기소리에 맞쳐 노래하고 춤춘다.


몇 년 전, 나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다윗왕(King David)"이란 영화를 보았는데 다윗왕의 일생을 충실히 그려냈다. 영화에
서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오며 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만약 예루살렘의 배경이 일본의 장면으로 대체된다 면, 이 장면은 일본 축제에서 보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음악의 분위기 또한 일본을 닮았다. 다윗의 춤은 정말로 일본의 전통 춤과 닮았다.
쿄토의 "기온-진자(Gion-jinja)" 신사 축제에서는 남자들이 “오미코시”를 운반한 다음 물로 들어가서 강을 건넌다. 나
는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요르단 강을 건너 법궤를 운반했던 기억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 다.


일본 내륙에 있는 세토해의 한 섬에는 “오미코시”의 운반자들로 선발된 남자들이 “오미코시”를 운반하기 1주일 간 한 집에서 합숙 한다. 이것은 부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오미코시”를 운반하기 전날에는 바닷물에 목욕하며 자신들을 정화시킨다. 이것 은 고대 이스라엘인들과 똑같은 풍습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의 법궤를 운반하기 위해 자신들을 정화했다.”(역대상 15:14)
성서는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후 행진이 끝났다고 말한다.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역대상 16:3). 이것은 일본과 같은 풍습이다. 일본에서도 축제 후 모든 사람들 에게 단 과자를 나누어 준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쁨이었다.

일본 사제들의 의복은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의복과 닮았다.
성서는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올 때, “다윗이 세마포 겉옷(a robe of fine linen)"을 입었다(역대상
15:27)고 말한다. 사제들과 노래하는 자들도 그러했다. 일본 성서에서 이 구절은 ”흰 세마포 예복(robe of white
linen)"으로 번역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은 화려한 복장을 입었지만 다른 일반 제사장들은 단순한 흰색의 아마포를 입었다. 제사장들은 성스러운 행사에서 흰 의복을 입었다. 또한 일본 사제들도 신성한 행사에서는 흰색의 겉옷을 입는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신사의 한곳인 이 세-진구(Ise-jingu)에서는 모든 사제들이 흰 예복을 입는다. 일본의 많은 신도 사원에서,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오미코시”를 운반할 때 흰 복장을 입는다. 부처의 승려들은 고급스런 화려한 복장을 입는다. 일본 신도에서는 백색이 최고의 성스 런 색으로 여겨진다.


일본 왕은 대관식을 마친 직후 신도의 신 앞에 홀로 간다. 그가 그곳에 갔을 때, 그는 순전히 흰 예복을 온 몸에 입는다.

게다가 맨발이다. 이것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느님 앞에서 샌들을 벗고 맨발이 되었던 것과 같다(출 3:5, 여호수아 5:15).


일본에서 10년간 거주했던 랍비 마빈 토케이어는 그의 책에서 “일본 신도 사제들이 입는 아마포 의복은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흰색 아마포 의복의 모습과 같다.”고 적었다.

일본 신도 사제들의 의복은 모서리에 20-30센티의 끈이 달려있다. 이 장식은 이스라엘인들의 풍습이다. 신22:12은 “입는 겉 옷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고 말한다.


술(장식술)은 그가 이스라엘인이라는 표식이었다. 신약의 복음서에도, 바리세인들이 “옷술을 크게 하고 ”(마태23:5)라고 기록되 어 있다.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예수(Yeshua)께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마태9:20)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 스라엘 복장을 상상으로 그린 그림에서는 종종 장식술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의복은 실제 술이 달려있었다.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걸치는 탈리스(Tallit:기도용 숄)는 전통에 따르면 모서리에 장식술이 달려있다.
일본 신도 사제들은 어깨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는 직사각형의 예복을 입는다.

이것은 다윗이 입었던 에봇과 동일하다.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역대상 15:27) 비록 대제사장의 에봇이 보석이 달린 화려한 색이었지만, 그 밑의 일반 제사장들은 단순한 흰 세마포 에봇을 입었다(삼상 22:18).


토케이어는 일본 신도 사제들의 직사각형의 흰  예복이 유대의 제사장을 의미하는 코헨(Kohen)의 에봇과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고 말한다.


일본 신도 사제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같이 머리에 모자를 쓴다(출 29:40). 또한 일본 사제들은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같이 허 리에 띠를 두른다. 일본 신도 사제들의 의복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추수한 곡식다발을 흔드는 것 또한 일본의 풍습이다.
유대인은 샤부오트(Shavuot:오순절(유대의 수확절)) 7주전 추수한 곡물 한단을 흔든다(레위기 23:10-11). 또한 그들
은 장막절(Sukkot, 레위기 23:40)에서도 이를 행한다. 이것은 모세의 시대 이래 전통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또한 누군가를 정결케 할 때 식물가지 하나를 흔들었다. 다윗은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시편 5:7 (9)]하였다. 이것 또한 일본의 전통적 풍습이다.

일본 사제가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정결케 할 때, 그는 나무가지 하나를 흔든다. 아니면 나무 가지를 닮은 하라이누사
(harainusa)를 흔든다. 오늘날의 “하라이누사”는 단순화되었고 작은 번개와 같은 지그재그 형태로 접히는 흰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고대에 그것은 식물의 가지 또는 곡물이었다.


내가 아는 일본의 한 여성 기독교인은 이 “하라이누사”를 이방의 풍습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미국에 가서 장막절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가 유대의 곡식단 흔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오, 이것은 일본 사제가 하는 것과 동일하다! 여기에 일본의 고향이 있네.“


일본 신사의 구조는 고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성막과 유사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성막 내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성소이고 다른 한곳은 지성소이다. 일본 신사 역시 그러 하며 둘로 나누어져 있다.


일본 신사의 기능은 이스라엘의 성막과 비슷하다. 일본 사람은 성소의 앞에서 기도한다. 그들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신도의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신도의 사제들은 오직 특별한 때에만 지성소에 들어간다. 이것은 이스라엘 성막과 동일하다.


일본 신사는 지성소는 이스라엘 성막에서와 같이 서쪽 끝에 있다. 또한 신사의 지성소는 성소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있으며 그 사이에는 계단이 있다. 학자들은 솔로몬에 의해 세워졌던 이스라엘의 성전에도 역시 지성소가 더 높은 곳에 있었고 그 사이에는 약 2.7미터 폭의 계단이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 신사 앞에는, 코마이누(komainu)로 불리는 사자 형상이 길 양편에 세워져있다. 그것들은 우상이 아니고 신사의 수호자들 이다. 또한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성전과 솔로몬의 궁전에는, 사자상이 있었다(왕상 7:36,10:19)

일본 초기 역사에서는 절대적으로 사자가 없었다. 그러나 고대시대 이래 사자상들이 일본 신사에 놓여왔다. 학자들에 의해 일본 신사의 앞에 놓인 사자상들은 중동에서 비롯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일본 신사 입구 가까운 곳에 참배객들의 손과 입을 씻는 "테미즈야(temizuya)"란 장소가 있다. 이것은 유대 회당의 풍습
과 같다. 고대 성막과 이스라엘의 성전 또한 입구 가까이에 손과 발을 씻는 물두멍이 있었다.


일본신사의 앞에는 “토리이(torii)라는 문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문은 중국 또는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만 존재한다. ”토리이“문은 두 개의 수직 기둥과 윗부분을 연결하는 가로장이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오직 두 개의 수직 기둥과 위 부분을 연결하는 줄로 구성되어 있다. 신도의 사제가 문에 예를 할 때, 그는 두 개의 기둥에 각각 예를 한다. 그것은 ”토리이“문이 원래 2개의 기둥으로만 되어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문으로 사용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왕상 7:21).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했던 아람어로, 문이란 단어는 “타라(taraa)”였다. 이 단어는 조금 변형되었을 수 있으며, 일본어 “토리이(torii)”가 되었다.

 

 일부 “토리이”들, 특히 오래된 신사의 경우는 붉게 칠해져있다. 나는 이것이 출애굽 전날 밤 문 기둥들과 상인방에 양의 피를 칠했던 장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신도에는 “시메나와(shimenawa"로 불리는 바닥 끝 쪽에 흰 종이 조각들이 삽입된 밧줄로 성소를 둘러싸는 풍습이 있다. ”시메나와“ 밧줄은 경계용으로 쳐진다. 성서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을 때,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경계를 쳤다“(출 19:12). 비록 나는 이 ”경계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밧줄 또는 그 밖의 무엇인가가 경계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본어 ”시메나와“ 밧줄은 모세시대로부터 비롯되는 풍습일 수 있다.


일본의 신사와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사이의 유일한 큰 차이점은 신사는 동물 번제를 위한 제단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왜 신도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동물 번제의 풍습이 없는지 의문을 갖곤 했다. 그때 나는 신명기 12장에서 해답을 발견했다. 모세는 가나안의 특별한 장소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어떤 동물 번제도 바치지 말 것을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12:10-14). 그러므로 만약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일본에 왔다면, 그들은 동물 번제가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일본 풍습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을 닮았다.
일본인들이 신사의 성소 앞에서 기도할 때, 첫째 그들은  입구의 중앙에 걸려있는 금종을 친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이다. 대제사장 아론은 옷단에 “금종”을 달았다. 이것은 그가 직분을 수행할 때 죽지 않았는지 들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출28:33-35)

일본 사람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두 번 박수를 친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는 약속을 지킨다”를 의미하는 풍습이었다. 성서에서 “맹세(pledge)”로 번역된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원래의 이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는 “손뼉을 치다”(겔17:18, 잠6:1)이다. 이스라엘의 고대 사람들은 맹세할 때 또는 중요한 일을 행할 때 손뼉을 쳤던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기 전후 신사 앞에서 절하고 기도한다. 또한 그들은 서로 만날 때 정중히 절을 한다. 절하는 것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이었다. 야곱은 에서에게 다가가면서 절을 했다(창33:3). 현대 에티오피아인들은 절하는 풍습을 갖고 있으며 아마 에티오피아로 이민 왔던 고대 유대인들 때문일 것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절은 일본인들과 비슷하다.


우리 일본인은 정화를 위해 소금을 사용하는 풍습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불쾌한 사람이 떠나간 뒤 소금을 뿌린다. 나는 사무라이시대의 TV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자신이 미워하는 남자가 떠나자 소금을 뿌렸다. 이 풍습은 고대 이스라엘과 동일하다.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필경은 취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삿9:45). 우리 일본인은 이것이 도시를 정결케하고 정화시키기 위한 것임을 바로 이해한다.


나는 유대인들이 새 집에 이사갈 때 그곳을 정화하고 성결하게 하려고 소금을 뿌린다는 것을 듣는다. 일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식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입구에 소금을 놓아둔다. 유대인들 또한 정결한 고기를 위해 소금을 사용한다. 모든 정결한 고기는 소금으로 정화되고 모든 식사는 빵과 소금으로 시작한다.


일본인들은 상가의 입구에 소금을 놓아둔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후,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에게 소금을 뿌려야한다. 신도에서 그것은 장례식에 간 자 또는 사체를 만진 자는 누구라도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개념이다.

일본의 “스모”선수들은 시합 전 소금을 스모판에 뿌린다. 유럽 또는 미국인들은 그들이 소금을 뿌리는 이유를 의아해한다. 그러나 랍비 토카이어는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재빨리 이해한다고 기록했다. 일본 사람들은 종교적 헌납을 할 때마다 소금을 제공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사람들도 이용하는 같은 풍습이다. 성서에서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레2:13)고 말한다. 고대 일본인들은 처음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는 풍습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소금으로 부드럽게 문지르고 난 후 물로 씻겼다(겔16:4). 소금 및/또는 물에 의한 정화는 일본과 이스라엘 공히 일반적 풍습이다.


히브리어 성서에, “정결” 또는 “부정”이란 단어가 종종 나타난다. 유럽과 미국인들은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쉽게 그것을 이해한다. 정결함에 가치를 두고 부정함을 피하는 것은 신도의 중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또 다시 아마 고대 이스라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일본의 신도 종교에는 이스라엘 종교와 같이 숭배물이 없다.
불교 사원들은 부처와 다른 신들의 형상을 조각한 조각상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신사에는 숭배물이 없다.

신도의 지성소 가운데에 는 거울, 검 또는 주옥이 있지만 신도의 신자들은 이들 물건들을 그들의 신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도에서 신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거울, 검, 주옥은 숭배물이 아니며, 단지 보이지 않는 신들이 내려오는 신성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물건들일 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법궤에는 십계명 석판들, 만나를 담은 병과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있다. 이것들은 우상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내려오는 신성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물건이다. 우리는 일본 신사의 이들 물건들에 관해 같은 점을 얘기할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야훼의 신앙을 가졌었나?
신도 종교는 많은 신들을 믿고 반면 이스라엘 종교는 오직 하나의 진실한 신을 믿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대교와는 달리,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특히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지파들은 우상숭배와 다신교 신앙의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진실한 신 야훼만이 아니라 바알, 아스다롯, 몰렉과 다른 이방의 신들을 믿었다. 실질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일신이 아니었다. 신도의 다신 신앙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신 경향에서 왔던 것 같다.

 

신도 학자들은 신도의 신 “스사노(Susanoh)”는 몇가지 측면에서 바알 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신도의 여신인 “아마테라스(Amaterasu)"는 아스다롯을 닮았다. 40년 전까지 일본 오오이타 현의 이노무레 산에서 사람들은 강우제를 지냈다. 그들은 재단을 만들기 위해 목재를 다윗의 별 형태로 쌓아올렸고, 그 위에 나뭇가지들로 만든 탑을 쌓았으며 그 꼭대기위에 뱀피로 엮은 대나무 막대기를 놓았다. 그들은 탑을 태우고 비오기를 기도했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히스기야 왕 재임시까지 행했던 막대기위의 (모세가 만든)청동뱀에 향을 피웠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왕하18:4)

비록 신도는 다신의 종교이기는 하지만, 나는 고대 신도는 한때 야훼 또한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도 신들 중 첫째로 태어난 신은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Amenominakanushi-no-kami)”라 불린다. 이 신
은 처음으로 나타났고, 우주의 중심에서 살며, 형태도 없고, 불사이며 우주의 보이지 않는 주제자라고 전해지는데 절대신으로서 우주의 주제자인 성서의 신을 닮았다.


고고학자들은 바빌론과 이집트의 종교들이 원래는 “하늘의 신”으로 불리는 하나의 신을 믿었다고 말하며, 이것은 성서의 “하늘의 신”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뒤에, 그들의 종교는 다신교로 추락했다. 나는 신도 종교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나는 고대의 신도가 야훼 신의 신앙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뒤에 다신교로 추락했다. 나는 일본 사람들이 성서를 가르치는 진실한 유일신 신앙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한 기독교 친구인 츠지가 한번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어느날, 열렬한 신도의 신자인 츠지의 친구가 그에게 왔다. 그 친구는 성서를 가져와서는 츠지에게 흥미로운 말을 했다.


“나는 토라를 읽었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의례들을 알고는 매우 놀랐어. 그 방식이 신도와 똑같아! 그들의 절기 방식, 성전의 관습, 정결함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신도와 똑같네!”


그때 츠지 씨가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네. 그것이 나 또한 목격한 것이네. 만약 자네가 그것을 알아차렸다면, 성서가 가르치는 신을 믿으면 어떻겠는가? 나는 그것이 자네가 믿는 진실한 신도를 세우고 회복하는 길이라 믿네.” 그것을 듣다가 그는 너무 놀라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츠지 씨의 말은 내가 모든 일본의 신도 신자들에 대해 갖는 같은 감정이다. 나는 모든 일본인들이 성서의 신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또한 일본나라의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축제는 고대 이스라엘의 절기들을 닮았다
오늘날 우리 일본인들은 1월 1일을 신년으로 기념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는 음력을 사용했고, 1월 15일이 공식적 신년일 이었다. 7일간의 축제기간 내내 “모찌(mochi: 쌀떡)"를 먹는 것이 일본의 관습이다. 이것은 유대인의 풍습과 비슷하며, 성서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 23:6)
“무교병”을 만드는 방법은 밀가루 대신에 쌀을 사용할 경우 일본의 “모찌”와 동일하다. 무교병의 히브리어는 “matsah"로서 이들 두 단어는 비슷하게 들린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은 축제 기간 중 7가지의 쓴 나물과 같이 포리지를 먹는다.

역사 시대에 일본 사람들은 1월 15일 날 그 나물들을 먹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출 12:8)” 먹었다.


일본에는 여름에 여러 지역에서 “기온”축제들이 열린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쿄토의 “야사카-진자(Yasaka-jinja)”신
사에서 열리는 것이다. 쿄토의 축제는 매년 7월 내내 계속된다. 그러나 축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7월 17-25일 사이에 열린다(일본인들은 그것을 “7번째 달”이라 부른다). 7월 1-10 또한 중요하다. 이것은 고대시대 이래 전통이었다.

 

 그러나 7번째 달의 17일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표류한 날이다.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창 8:4)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날 추수감사절을 드렸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이후, 초막절로 교체되었으며 7번째 달의 1, 10일, 15일부터 8일 동안 열렸다(민 29:1, 7, 12, 35).


쿄토의 “기온”축제는 유행병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솔로몬 왕이 나라에 유행병이 돌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7번째 달 17일부터 8일간(마지막 모임날을 포함) 계속해서 했던 축제를 시작했던 것과도 비슷하다(역하7:8-10). 120년 이전에 스코틀랜드에서 N. Mcleod란 사업가가 일본에 왔다가 일본의 풍습을 조사했다. 그는 “일본의 고대 역사 개략(Epitome of Japanese Ancient History)”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그는 쿄토의 “기온”축제는 유대의 축제들과 대단히 닮았다고 적었다. 토카이어 랍비는 비슷한 언급을 했다.  그는 “기온”이란 이름이 예루살렘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된 “시온(zion)”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사실 쿄토는 “평화”를 의미하는 “헤이안-쿄 (Heian-kyo)로 불리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역시 ”평화“를 의미하며, ”헤이안-쿄“는 ”예루살렘“에 대한 일본어 일 수 있다. 쿄토의 ”기온“축제에서, 사람들은 ”엘-야라-야(en-yara-yah)"라는 함성과 함께 축제를 시작한다.

 

리 일본인들은 이 일본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 학자이자 히브리어에 정통한 기독교 목사인 에이지 가와모리타씨는 그의 책에서 이 단어가 히브리어의 표현 “eni ahalel yah"에서 왔으며 ”나는 야웨를 찬양한다“를 의미한다고 썼다.

히브리어 기원의 고대 일본 단어들


일본의 한 신사에서 수년을 체류했던 유대인 요셉 아이델버그는 "일본인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들(The
Japanese and the Ten Lost Tribes of Israel)“란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일본어의 많은 단어들이 고대 히브리어에서 기원했다고 적었다.


예를 들어, 우리 일본사람들은 창피 또는 수치의 의미로 “하즈카시메(hazukashime)"라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그것은 ”하닥 하셈(hadak hashem:이름을 짓밟는다는 뜻; 욥40:12 참조)"이다.

 발음과 의미가 둘 다 거의 비슷하다.


우리는 “당신(you)”의 의미로 “안타(anta)"라고 말하는데 히브리어와 같다. 고대 일본의 왕들은 ”미코토 (mikoto)"란 말과 함께 불리웠는데 이것은 히브리어로 “그의 왕국(his kingdom)"을 의미하는 "말후토 (malhuto)"가 기원일 수 있다. 우리는 일본 왕을 ”미가도(mikado)“라고 부른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고귀한 자(the noble)를 뜻하는 단어 ”미가돌(migadol)"과 닮았다. 고대의 일본어에서 지역 지도자는 “아가타-누시 (agata-nushi)"로서 ”아가타(agata)"는 지역을 의미하고, “누시(nushi)"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히브리어에서는 ”아구다(aguda)“ "누시(nusi)"이다.


일본 사람들이 “일, 이, 삼...십” 수를 셀 때, 종종 "Hi, fu, mi, yo, itsu, mu, nana, ya, kokonotsu, towo."라고 한다.
이것은 전통적 표현이지만, 우리 일본인들이 그것을 일본어로 생각한다면 이 의미를 모른다.


이 표현은 고대 일본 신화에서 기원한다고 전해진다. 신도의 전설에, 세상의 햇빛을 관장하는 여신 “아마테라스
(Amaterasu)"가 한번은 하늘의 동굴에 자신을 감추었고, 세상은 암흑이 되었다. 그때, 일본의 오랜 역사서에 따르면,
”“코야네(Koyane)"로 불리는 사제가 동굴 앞과 다른 신들의 앞에서 ”아라테미스“가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기도에서 한 말들이 책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한 전설에서는 이들 단어들이 "Hi, fu, mi...." 라고 한다.

요셉 아이델버그는 이것이 만약 우리가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음에 일부 변형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한다면, 아름다운 히브리어 표현이라 고 적고 있다. 이들 단어들은 "Haiafa mi yotsia ma naane ykakhena tavo."

와 같이 문자화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러한 의미이다. “누가 그 미녀를 데려나올까? 그녀가 나오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신화의 상황과 놀랍도록 들어맞는다.


더욱이 우리 일본인들은 "Hi, hu, mi...,"라고 말할 뿐 아니라, 똑같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도 말한다.
"Hitotsu, futatsu, mittsu, yottsu, itsutsu, muttsu, nanatsu, yattsu, kokonotsu, towo."
여기에서, "totsu" 또는 "tsu"는 단어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각각 "Hi, hu, mi..."에 붙어있다.

 

그러나 마지막 의 "towo"(10을 의미)는 그대로인 상태다. "Totsu"는 히브리어의 “그녀는 나온다”를 의미하는 "tetse"일 수 있다. 그리고 "tsu"는 “나온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tse"일 수 있다. 아이델버그는 이러한 단어들이 "코야네” 사제
를 둘러싸고 있던 신들이 한 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즉, "코야네“ 사제가 처음에 ”Hi"라고 말할 때, 둘러싸고 있던 신들이 "totsu"(그녀는 나온다(She comes out))라고 대답하고, 두 번째 "코야네"가 "Fu“라고 말할 때, 그 신들이 "totsu" (tatsu)라고 응답하고 등등. 이런 식으로 "Hitotsu, futatsu, mittsu...."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단어 "towo"는 "코야네"와 둘러싼 신들이 다 함께 말했다. 만약 이것이 히브리어 단어"tavo”라면, 그것은 "(그녀는) 나올 것이다((She) shall come)"를 의미한다. 그들이 이 말을 했을 때, 여신 “아라테미스”가 나왔다.

 "Hi, fu, mi..." 그리고 "Hitotsu, futatsu, mittsu..."가 나중에 수를 세는 단어들로 써 사용되었다.


덧붙여, "코야네"사제의 이름은 사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코헨(kohen)"와 가깝게 들린다. 아이델버그는 히브리어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이는 다른 많은 일본어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의 목록에는 수 천 단어들이 들어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라 믿지않는다.

 
고대 일본 민요에는 일본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단어들이 나타난다. 에이지 카와모리타 박사는 이들 중 많은 것들이 히브리어 라고 말한다. 구마모토 현의 한 일본 민요는 "할렐루야, 할리야, 할리야, 토오세, 야웨, 야웨, 요이토나...
(Hallelujah, haliya, haliya, tohse, Yahweh, Yahweh, yoitonnah...)" 라고 불린다. 이것 또한 히브리어처럼 들린다.

이스라엘의 사라진 지파들은 고대 일본에 왔다.
고대 이스라엘은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하나는 남유다 왕국이고, 다른 하나는 북 이스라엘 왕국이다.

 AD 70년, 남 유다 왕국의 사람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유대인들이 실크로드를 여행해서 멀리 일본까지 갔다는 일부 증거가 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 왕국의 경우에는 어떠했을까? 고대 역사서 'the fourth book of Ezra'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10지파들이 동쪽으로 갔으며, 1년 반을 걸어서 먼 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성서 또한 이사야 11: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He (God)...will assemble the outcasts of Israel, and gather together the dispersed of Judah from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이산)dispersed"란 단어는 유대 민족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outcasts"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위해 사용되었다. 북
쪽의 10 지파들은 "(이산)dispersed"라기 보다는 어떤 나라(to a land)로 쫓겨 갔다(driven away).


주요 무리는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나라로 쫓겨 갔음이 틀림없다.
아프가니스탄, 카시미르, 인도와 중국에는 강력한 고대 이스라엘의 존재 증거가 있다. 중국 역사서에 따르면, 2세기 중국의 유사이 전 시기에 할례의 풍습이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10지파들의 주요 무리가 멀리 일본으로 왔다는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고대시대에, 일부 사람들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또한 일부는 러시아와 일부는 남동 아시아로부터 왔다. 그들 대부분은 몽 골로이드 혈통이었다.


나는 일본의 신도 종교와 그것의 모든 풍습들이 남유다 왕국에서 왔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사라진 지파들이 고대 역사의 일본에 왔다면, 그들의 종교와 풍습들이 일본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카와모리타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일본 민요들에 신의 신성한 이름 “야웨(Yahweh)가 여러번 나타난다. 유다의 유대인들은 유사이전 3세기 부터 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중단하기 때문에 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의 첫 번째 왕 “진무(Jinmu)"의 공식적 이름은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스메라-미코토(Kamu-yamato- iware-biko-sumera-mikoto)”이다. 요셉 아이델버그는 히브리어로 "사마리아의 왕, 야훼의 히브리 국가의 고귀한 건국자(The king of Samaria, the noble founder of the Hebrew nation of Yahweh)“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진무“ 자신이 진짜 히브리 국가의 건국자임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 국가의 기억이 일본의 첫 번째 왕 ”진무“의 전설에 들어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례의 풍습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 왕실의 한명인 메이지-텐노(Meiji-tennoh)의 손자 중 한명이지만 현재는 기독교 목사인 Rev. Takatoshi Kobayashi는 일본의 왕과 왕자는 할례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증언은 할례
의 풍습이 일본에 존재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증거이다.


 

혈액 유형 연구로부터 토쿄대학의 범죄의학 권위자인 타네모토 후루하타(Tanemoto Furuhata)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일본인과 유대인의 혈액유형이 매우 비슷하다고 적고 있으며, 그는 그것을 알고는 놀랐다. 나 또한 파리 대학의 한 교수가 일본인의 “Y" 염색체가 유대인 의 것과 크기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추가적인 연구가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길 기대한다. 10지파들이 일본에 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해 줄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일본의 “이세-진구(Ise-Jingu)"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 신성한 거울위에 고대 이래 신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는 소문을 소개한다.

 

신의 이름이 이세 신사의 신성한 거울에 쓰여 있다는 소문에 관해

 

일본 왕실에는 고대 일본 신화에서 유래되었던 3가지 보물이 있다. 이들 세 가지는 검, 주옥, 거울이다. 그중 거울은 “야타- 노-카가미(Yata-no-kagami: 야타의 거울)"로 불리며 왕실을 위한 신사인 ”이세 신궁“에 보관되어 있다. 사실 신의
이름이 성스런 거울 뒷면에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 거울은 매우 성스럽게 여겨지며 보통 누구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백 년 전, 당시 일본의 교육, 문화, 과학 장관이었던 아리노리 모리(Arinori Mori)는 성스런 거울의 뒷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위에 히브리어로 쓰여 있는 것은 신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즉 신
이 모세에게 말했던 이름이다(출3:14).


2차대전 후, 아오야마-가구 대학 교수인 사콘(Sakon) 박사는 거울의 복사본이 왕궁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했다. 그는 히브리어로 그 위에 쓰여 있던 것은 신의 이름 “i AM THAT I AM"이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열렬한 신도의 신자인 유타로 야노(Yutaro Yano)는 그 거울을 보았고 성스러운 거울 뒷면의 패턴을 베꼈다.

야노는 거울을 보여달라고 이세 신궁의 사제에게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그 사제는 야노의 열정에 감동되어, 비밀스럽게 그가 거울을 보도록 허락했고, 야노는 조심스럽게 거울 뒤의 모양을 베꼈다.

이 복사본이 야노의 딸에 의해 운영되는 “신세이-류진카이(Shinsei-Ryujinkai)"란 이름의 신도 단체에 수년 간 보관
되어 왔다. 그것은 그 단체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나중에 그 복사본을 히로히토(Hirohito) 왕의 남동생 미카사노미야(Mikasanomiya)에게 보여주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Showa Tennoh). 신도의 연구가인 와도 코사카
(Wadoh Kohsaka)는 그것을 미카사노미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후, 코사카는 그 진실을 알리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복사본을 그의 책에서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 책은 7년 전 발간 되었다.

그 거울의 글자들을 해석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간지 글씨체계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수입되기 전 고대 일본에 존재했던 일본의 글자로 여겨졌던 “진다이-모지(Jindai-moji)의 하나로 믿어지는 ”히후-모지(Hifu-moji)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이론은 고대 히브리어로 해석하는 것이다. “히후-모지”이론은 야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해석에서 일부 모순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후-모지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히후-모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게다가, 알려진 모든 일본의 고대 “진다이=모지”들은 수직으로 쓰여 있다. 나는 그것이 수평으로 쓰인 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일부에서는 거울의 안쪽 원안의 7글자들이“I AM THAT I AM” 히브리어로 "eheyeh asher eheyeh“으로 읽혀질 수 도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야훼의 빛(Yahweh's light)" 히브리어로는 "또는 야훼”[(“Or"은 빛을 의미함)or  Yahweh"  ("Or" means light)]로 읽혀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 글자들이 ”"야훼의 빛(Yahweh's light)“으로 읽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일본 왕실의 신이 빛의 신 또는 태양의 신을 의미하는 ”아마테라스“로 불리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일본 왕실의 신은 원내 성서의 신으로부터 기원되었을 수 있지만, 나중에 그에 대한 신앙은 ”아마테라스“의 신앙과 뒤섞였다. 사람들은 왕실의 신을 ”아마테라스“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거울에 ”야훼의 빛(Yahweh's light)"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시 36:9, 84:11).


안쪽 바깥의 글자들에 관해서 어떤 사람은 그것들이 고대 그리스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글자들 중 일부는 원 안의 것들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나는 안밖 양쪽의 글자들이 같은 언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자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했던 아람어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글자를 보고 다르게 이해하는 자가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어쨌든, 우리는 야노의 복사본이 실제 성스런 거울 뒷면의 형태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 거울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Arimasa Kubo

출처 : 우자매샬롬하우스
글쓴이 : 예수님 심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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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후손들

조로아스터 2017. 5. 12. 18:33
 

  기원전 722년, 통일국가인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이 사망하고 북이스라엘의 초대국왕 여로보암이 즉위한 지 200년이 지난 이 해에 북이스라엘왕국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때 앗시리아는 사르곤2세의 치세로서 최고의 전성기였으며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였다. 호세아왕은 사마리아에서 끝까지 항전했지만 역부족이어서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 남유다왕국은 저항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었기 때문에 멸망은 면할 수 있었다. 앗시리아는 쓸모있는 사람들은 북동쪽 변방으로 대거 이주시키고 그 대신 타지역 사람들을 북이스라엘 땅에 현지의 하류층들과 뒤섞여 살게 하였다. 이는 앗시리아가 타국가를 점령할 때 현지인들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앗시리아로 끌려간 2만7천여 명의 이스라엘인들은 상류층 인사들이었다. 당시 북이스라엘 인구는 80만, 남유다의 인구는 20만 가량이었다. 이후로 북부 10지파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탈무드에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사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인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진 10지파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의미의 이야기가 있다. ‘10지파의 부족 사람들은 삼바티온강 저편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강은 평상시 무척 강한 급류가 흐르고 있어 건널 수가 없다. 다만 안식일인 샤밧때는 강물이 잠잠해진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샤밧때 여행을 할 수도 없고 무거운 짐도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할 수 없이 이국땅에서 영원한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10지파를 영원히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감추어져 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라진 10지파의 후손으로는 아메리카 인디언, 에스키모, 영국인, 징기스칸 통치 당시의 몽고인, 심지어 일본인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인도 빠질 수가 없겠지. 나도 그런 뜻에서 사라진 10지파 중 레위인의 후손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자칭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사회도 있다. 중국의 사천성, 인도,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미국의 몰몬교도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티오피아사람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왕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스라엘 랍비청에서는 그들을 단지파의 후예로 판정했고, 시방여왕이 낳은 솔로몬의 자식은 예멘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믿어진다.


출처 : ama et fac quod vis
글쓴이 : manofGo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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